
정선교

She Spent So Many Hours Under the Sun Lamps
平均 3.7
실패로 치닫는 연인의 시간을 다루는 가렐적 내러티브의 쇼트들은 가렐이 자크 드와이온, 샹탈 아커만 등의 동료들과 함께 영화 촬영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쇼트(마치 요나스 메카스의 영화에 '출연'한 마리 멘켄, 앤디 워홀과 같이)들과 교차되며 이 영화가 '영화 촬영에 대한 영화'라는 점을 드러내고 있는데, 전자에 해당하는 쇼트에서조차도 역할이 아닌 배우로서의 존재를 현시하는 연인들의 모습이 보여주듯 디제시스 안팎의 경계가 매우 느슨하게 직조되어 있는 것은 그곳이 가렐의 잠재적 침입에 개방된 시공간이기 때문이다. 가렐의 연인들이 상실을 인식하고 고독 속에 자발적으로 침잠하는 멜랑콜리커의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 낯선 일은 아닐 뿐더러 오히려 이는 특징적인 감정 이미지에 닿기 위한 기능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까지 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 연인의 시간에 실패의 가능성이 침투하는 순간은 철저하게 프레임을 향한 가렐의 가시적인 개입을 통해 조성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들이 수행하는 역할이 아닌 그들이 연기자라는 점을 전시하는 등의 메타적 장치를 동원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들이 직면한 상실의 징후와 같이 영화의 구성요소들(대사, 사운드, 내러티브)을 차례로 소각시켜나가는 방식━이러한 점에서 그의 영화는 제거와 소진을 거쳐 얻어낸 것을 보존하려는 문화적 모더니티로서의 '멜랑콜리'를 체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멜랑콜리의 외면적 부동성은 무기력이 아닌 사유를 지시"한다는 벤야민의 말은 가렐적 인물이 아닌 '가렐의 영화'에 적용되는 것이다━, 혹은 재회한 연인이 포옹하는 순간 피사체와 카메라 사이를 가로막는 이물질과 같이 물리적인 조작을 가하면서까지 가렐은 연인의 시간에 실패의 그림자를 채워넣는다. 그러나 그가 실패와 파국의 징후들을 그려넣는 연인의 시공간을 둘러싼 경계란 너무나도 느슨한 것이어서, 그곳으로 연결된 문은 가렐의 출입까지 허락하는 것이다. 마리의 집으로 보이는 공간에 가렐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곳은 곧 마리의 죽음이 예견되는 곳으로, 사랑의 시간이 파국을 맞이할 것임을 예견하는 곳이기도 하다. 가렐은 이 실패한 연인의 공간에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와, 마치 그들의 '외면적 부동성'에 전염된 듯 한참동안 허공을 응시한다. 카메라 앞에 선 그는 이 순간 관계의 실패를 조성하는 지시자가 아닌, 관계의 실패를 맞이한 가렐적 인물이자 상실 속에서만 비로소 발현되는 감정 이미지 그 자체가 된다. 연인 니코와의 결별 이후 일련의 내러티브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가렐에게서 내러티브란 잠재적 폐기를 위해 배치되는 것이다. 자신이 설정한 그 잠재적 폐기 상태의 시공간 속에 들어가 스스로 '실패한 연인의 이미지'가 된 필름메이커는 찍는 자와 찍히는 자, 상실을 초래하는 자와 상실을 대면한 자라는 대립의 항목들을 하나로 통합시킨 뒤 이를 온전히 자신의 육체로 끌어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