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영見たい2015년 겨울, 국립현대미술관 필립 가렐 회고전 <찬란한 절망>에서 혼자 이 영화를 봤었다. 시간이 없어 반쯤 보고 나오는 길에 어떤 외국인 할아버지를 마주쳤다. 그 외국인 할아버지가 필립 가렐 감독님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いいね22コメント0
과학자見たい내 친구에게, 자네가 우리 집에 남겨두고 간 그 DVD는 아직도 내 서랍 속에서 얌전히 누워 있네. 이상한 일이지. 그날 우린 내 방에서 CDP를 컴퓨터에 연결하며 말했잖나. “우리 지금 이걸 보자.” 그런데 모니터는 끝내 켜지지 않았고, 계획은 산산조각 나버렸고, 우리는 완전히 엉뚱한 이무이를 보았지.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 모니터가 우리를 배신했다고 생각했네. 하지만 훗날 알게 되었지. 그 비극의 원인은 다름 아닌 전원 버튼이 꺼져 있었다는 사실이었다는 걸! 참 가소롭지 않은가. 세상의 많은 재앙들은 결국 사소함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네. 그 후 우리는 둘만의 맹세를 했지. 이 영화를 함께 보기 전에는, 누구도 먼저 보지 않겠다고. 빈, 언젠가 우리가 다시 그걸 꺼내게 된다면, 이번엔 모니터 앞에서 쓸데없이 멍하니 서 있을 일은 없겠지. 전원 버튼이라는 비극의 도화선을 확인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테니까. 그날을 기다리며, 내 서랍은 여전히 자네의 DVD를 품고 있다네.いいね4コメント1
정선교4.5실패로 치닫는 연인의 시간을 다루는 가렐적 내러티브의 쇼트들은 가렐이 자크 드와이온, 샹탈 아커만 등의 동료들과 함께 영화 촬영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쇼트(마치 요나스 메카스의 영화에 '출연'한 마리 멘켄, 앤디 워홀과 같이)들과 교차되며 이 영화가 '영화 촬영에 대한 영화'라는 점을 드러내고 있는데, 전자에 해당하는 쇼트에서조차도 역할이 아닌 배우로서의 존재를 현시하는 연인들의 모습이 보여주듯 디제시스 안팎의 경계가 매우 느슨하게 직조되어 있는 것은 그곳이 가렐의 잠재적 침입에 개방된 시공간이기 때문이다. 가렐의 연인들이 상실을 인식하고 고독 속에 자발적으로 침잠하는 멜랑콜리커의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 낯선 일은 아닐 뿐더러 오히려 이는 특징적인 감정 이미지에 닿기 위한 기능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까지 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 연인의 시간에 실패의 가능성이 침투하는 순간은 철저하게 프레임을 향한 가렐의 가시적인 개입을 통해 조성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들이 수행하는 역할이 아닌 그들이 연기자라는 점을 전시하는 등의 메타적 장치를 동원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들이 직면한 상실의 징후와 같이 영화의 구성요소들(대사, 사운드, 내러티브)을 차례로 소각시켜나가는 방식━이러한 점에서 그의 영화는 제거와 소진을 거쳐 얻어낸 것을 보존하려는 문화적 모더니티로서의 '멜랑콜리'를 체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멜랑콜리의 외면적 부동성은 무기력이 아닌 사유를 지시"한다는 벤야민의 말은 가렐적 인물이 아닌 '가렐의 영화'에 적용되는 것이다━, 혹은 재회한 연인이 포옹하는 순간 피사체와 카메라 사이를 가로막는 이물질과 같이 물리적인 조작을 가하면서까지 가렐은 연인의 시간에 실패의 그림자를 채워넣는다. 그러나 그가 실패와 파국의 징후들을 그려넣는 연인의 시공간을 둘러싼 경계란 너무나도 느슨한 것이어서, 그곳으로 연결된 문은 가렐의 출입까지 허락하는 것이다. 마리의 집으로 보이는 공간에 가렐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곳은 곧 마리의 죽음이 예견되는 곳으로, 사랑의 시간이 파국을 맞이할 것임을 예견하는 곳이기도 하다. 가렐은 이 실패한 연인의 공간에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와, 마치 그들의 '외면적 부동성'에 전염된 듯 한참동안 허공을 응시한다. 카메라 앞에 선 그는 이 순간 관계의 실패를 조성하는 지시자가 아닌, 관계의 실패를 맞이한 가렐적 인물이자 상실 속에서만 비로소 발현되는 감정 이미지 그 자체가 된다. 연인 니코와의 결별 이후 일련의 내러티브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가렐에게서 내러티브란 잠재적 폐기를 위해 배치되는 것이다. 자신이 설정한 그 잠재적 폐기 상태의 시공간 속에 들어가 스스로 '실패한 연인의 이미지'가 된 필름메이커는 찍는 자와 찍히는 자, 상실을 초래하는 자와 상실을 대면한 자라는 대립의 항목들을 하나로 통합시킨 뒤 이를 온전히 자신의 육체로 끌어들인다.いいね3コメント0
Notpirojustformovie4.5무음과 백색소음을 완벽하게 사용한 영화. 국외자들이 가장 세련되고, 5to7 클레오는 따뜻하다면 이 영화는 너무 조용하다. 섬뜩할정도로 고요하고 예쁜 장면들의 집합.いいね2コメント0
이신영
見たい
2015년 겨울, 국립현대미술관 필립 가렐 회고전 <찬란한 절망>에서 혼자 이 영화를 봤었다. 시간이 없어 반쯤 보고 나오는 길에 어떤 외국인 할아버지를 마주쳤다. 그 외국인 할아버지가 필립 가렐 감독님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ygh_光顯
4.5
표면으로부터 진정으로 존재하는 존재의 이미지를 찾아, 메타적으로 아주 깊숙이 파고들어 감각의 잔향으로 고뇌하게 된다
미상
5.0
잘 가요 나의 사랑. 잘 가요 나의 영화. 잘 가요 샹탈 아커만.
과학자
見たい
내 친구에게, 자네가 우리 집에 남겨두고 간 그 DVD는 아직도 내 서랍 속에서 얌전히 누워 있네. 이상한 일이지. 그날 우린 내 방에서 CDP를 컴퓨터에 연결하며 말했잖나. “우리 지금 이걸 보자.” 그런데 모니터는 끝내 켜지지 않았고, 계획은 산산조각 나버렸고, 우리는 완전히 엉뚱한 이무이를 보았지.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 모니터가 우리를 배신했다고 생각했네. 하지만 훗날 알게 되었지. 그 비극의 원인은 다름 아닌 전원 버튼이 꺼져 있었다는 사실이었다는 걸! 참 가소롭지 않은가. 세상의 많은 재앙들은 결국 사소함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네. 그 후 우리는 둘만의 맹세를 했지. 이 영화를 함께 보기 전에는, 누구도 먼저 보지 않겠다고. 빈, 언젠가 우리가 다시 그걸 꺼내게 된다면, 이번엔 모니터 앞에서 쓸데없이 멍하니 서 있을 일은 없겠지. 전원 버튼이라는 비극의 도화선을 확인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테니까. 그날을 기다리며, 내 서랍은 여전히 자네의 DVD를 품고 있다네.
정선교
4.5
실패로 치닫는 연인의 시간을 다루는 가렐적 내러티브의 쇼트들은 가렐이 자크 드와이온, 샹탈 아커만 등의 동료들과 함께 영화 촬영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쇼트(마치 요나스 메카스의 영화에 '출연'한 마리 멘켄, 앤디 워홀과 같이)들과 교차되며 이 영화가 '영화 촬영에 대한 영화'라는 점을 드러내고 있는데, 전자에 해당하는 쇼트에서조차도 역할이 아닌 배우로서의 존재를 현시하는 연인들의 모습이 보여주듯 디제시스 안팎의 경계가 매우 느슨하게 직조되어 있는 것은 그곳이 가렐의 잠재적 침입에 개방된 시공간이기 때문이다. 가렐의 연인들이 상실을 인식하고 고독 속에 자발적으로 침잠하는 멜랑콜리커의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 낯선 일은 아닐 뿐더러 오히려 이는 특징적인 감정 이미지에 닿기 위한 기능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까지 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 연인의 시간에 실패의 가능성이 침투하는 순간은 철저하게 프레임을 향한 가렐의 가시적인 개입을 통해 조성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들이 수행하는 역할이 아닌 그들이 연기자라는 점을 전시하는 등의 메타적 장치를 동원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들이 직면한 상실의 징후와 같이 영화의 구성요소들(대사, 사운드, 내러티브)을 차례로 소각시켜나가는 방식━이러한 점에서 그의 영화는 제거와 소진을 거쳐 얻어낸 것을 보존하려는 문화적 모더니티로서의 '멜랑콜리'를 체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멜랑콜리의 외면적 부동성은 무기력이 아닌 사유를 지시"한다는 벤야민의 말은 가렐적 인물이 아닌 '가렐의 영화'에 적용되는 것이다━, 혹은 재회한 연인이 포옹하는 순간 피사체와 카메라 사이를 가로막는 이물질과 같이 물리적인 조작을 가하면서까지 가렐은 연인의 시간에 실패의 그림자를 채워넣는다. 그러나 그가 실패와 파국의 징후들을 그려넣는 연인의 시공간을 둘러싼 경계란 너무나도 느슨한 것이어서, 그곳으로 연결된 문은 가렐의 출입까지 허락하는 것이다. 마리의 집으로 보이는 공간에 가렐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곳은 곧 마리의 죽음이 예견되는 곳으로, 사랑의 시간이 파국을 맞이할 것임을 예견하는 곳이기도 하다. 가렐은 이 실패한 연인의 공간에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와, 마치 그들의 '외면적 부동성'에 전염된 듯 한참동안 허공을 응시한다. 카메라 앞에 선 그는 이 순간 관계의 실패를 조성하는 지시자가 아닌, 관계의 실패를 맞이한 가렐적 인물이자 상실 속에서만 비로소 발현되는 감정 이미지 그 자체가 된다. 연인 니코와의 결별 이후 일련의 내러티브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가렐에게서 내러티브란 잠재적 폐기를 위해 배치되는 것이다. 자신이 설정한 그 잠재적 폐기 상태의 시공간 속에 들어가 스스로 '실패한 연인의 이미지'가 된 필름메이커는 찍는 자와 찍히는 자, 상실을 초래하는 자와 상실을 대면한 자라는 대립의 항목들을 하나로 통합시킨 뒤 이를 온전히 자신의 육체로 끌어들인다.
키리키리
5.0
유령들의 윤곽들이 겹치고 쌓이고 무너진다
Notpirojustformovie
4.5
무음과 백색소음을 완벽하게 사용한 영화. 국외자들이 가장 세련되고, 5to7 클레오는 따뜻하다면 이 영화는 너무 조용하다. 섬뜩할정도로 고요하고 예쁜 장면들의 집합.
cinemada
5.0
All Time TOP 10 필립 가렐의 찬란했던 시대의 마침표. 그리고 시네마뽕의 모든 것과 미레일 페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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