レビュー
윤지

윤지

6 years ago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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ざくろの色

映画 ・ 1968

平均 3.5

2019年03月25日に見ました。

굉장히, 굉장히! 특이한 영화. 이런 영화인 줄 모르고 봤다. 그래서 당혹스러웠다. 일단, 영화의 줄거리가 없다. 컷과 컷 사이의 명확히 이어짐이 없다. 서로 따로 논다. 하지만 이것 모두 감독님의 의도. - 그리고 음악 활용이나 색채 활용이나 모두 난해하다. 기이한 사운드가 나오고, 어떤 동작을 계속 반복하고, 연극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냥 정말 '감독님 취향을 130% 갈아넣은 영화'라고 생각 됐다. 이 어렵고 난해한 영화를 동의대학교 영화학과 '김이석' 교수님의 강연으로부터 조금 이해하게 됐다. - 감독인 '세르게이 파라자노프'의 스타일을 '컷과 컷 사이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라는 그의 말에서 유추할 수 있다. 그는 할리우드가 다져놓은 스토리 구성과 소련 영화가 다져놓은 편집 기술을 모방하지 않고 그 스스로의 '파라자노프'식 영화를 탄생시켰다. - 그가 활동했던 1950년대 중반의 소련은 스탈린 체제가 무너지고 예술계에 대한 검열은 조금은 풀렸던 상황이라고 한다. 아무리 검열이 풀렸어도 여러 국가가 모인 '소련 연방체제'를 위협할 수 있는 작품은 여전히 검열 대상이 되었다. 그 중 이 작품이 있었다. 감독이 생각한 이 작품의 원제는 '사야트 노바'. 아르메이아의 위대한 시인의 전기 영화에 맞춰 그의 이름을 썼다. 그러나 소련의 강력한 제지를 받고선 20분 정도 재편집 되고, '석류의 빛깔'로 제목도 변경하게 되었다. 소련이 내린 명분은 '너무 퇴폐적이다' '지나치게 탐미적이다. 그래서 이것은 소련 인민들에게 교훈을 주지 못한다.' '난해하다' 였다. 하지만 실제론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해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되어졌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아르메니아의 풍속, 위인, 정교' 등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것이 소련 정부의 눈에 난 것. 그래서 이 작품을 찍고선 감독는 평생 소련의 감시를 받는다. - 이러한 제약 때문에 이 당시 소련 영화들의 특징이 두들어진다. 바로 비유와 은유를 많이 쓰는 것. 그래서 영화가 너무 난해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영화는 감독님이 비유와 은유를 많이 넣은 영화는 아닌 것 같고, 단지 그의 스타일 자체가 기존에 우리가 보던 영화와는 다르니 해석하는데 어려움이 느껴졌다. - 사실 영화의 의미를 '해석'하는 관점에서 보면 안 되는 영화인 것 같다. 그저 '감각적'으로 느끼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이 영화의 올바른 관람 자세인 듯. 어찌보면 관객에게 지독하게 불친절한 영화이다. '아르메니아'라는 나라에 대해 더 잘 알고 '샤이아 노바'라는 시인에 대해 더 잘 알았다면 더욱 이해가 됐을 영화 임은 틀림없다. 아는 만큼 보이는 건 맞으니깐. 김이석 교수님께서는 만약 우리나라의 시인 '김소월'에 대한 영화가 있다면, 우리 나라 사람들은 영화에 등장하는 진달래꽃만 보고도 감명을 받을 것이라 했다. 이런 비유를 들으니 더욱 정보를 알고 있었더라면 더 느낄 수 있었을 것이라도 생각했다. 색채가 정말 화려했다. 영화가 아닌 회화를 보는 강렬한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