レビュー
구준홍

구준홍

5 years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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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관한 생각

本 ・ 2018

平均 4.1

생각에 관한 생각(대니얼 카너먼, 2011) @210527 독서모임에서 읽기로 한 책인데, 양이 엄청 두꺼워서 혼났다. 게다가 심리학쪽 책은 왠지 다른 책들 읽을 때도 그렇고 글이 눈에 잘 안 들어오는 느낌이다. 번역이 문제인지 분야가 문제인지 아니면 걍 내 취향의 문제인지.. 심리학쪽 전문용어들이 일상용어지만 은근 추상적인 뜻으로 쓰여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원래 학문이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심리학 내용 설명이 물리처럼 연역적으로 이루어진다기보다는 주로 실험이나 설문조사 결과를 내놓고 결과를 해석하는 식이라 물리에서 보던 흐름이랑 좀 달라서 그런건지도 모르겠다. 여튼 이 책은 심리학자가 쓴 책인데, 정작 표지 홍보는 경제학 관련된 내용으로 되어있다. 실제로 이 심리학자가 200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라고 한다. 경제학 분야에서 인간을 합리적, 이성적 존재로 가정하고 이론을 만들어 왔었는데, 심리학적 관점에서 이런 인간의 합리성이 부정되는 사례를 (경제학적 예시를 포함하여) 제시하였고, 구체적으로 범주화하여 행동경제학의 기초가 된 모양이다. 하지만 이 사람은 경제학자가 아니라 심리학자인 만큼 이 사람의 연구는 어디까지나 심리학이 베이스이고, 책 내용도 전체적으로 심리학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지 경제학적인 내용이 주요하게 나오지는 않는다. 그래서 표지엔 행동경제학이 쓰여있지만 행동경제학 자체에 대한 설명을 기대하고 읽기에 좋지는 않은 것 같고, 그냥 그 기반이 된 심리학 연구들에 대해 알려주는 책으로 보면 될 것 같다. 책의 번역이 썩 좋지 않은데(아예 단어 단위로 빠진 부분도 있고 뭔가 문장이 애매한 부분도 있다), 제목이 특히 그렇다. 책의 원제는 Thinking fast and slow이고, 이것이 이 책의 핵심 주제이다. 우리의 사고체계는 대략적으로 두 가지 시스템이 공존하고 있고, 이 시스템은 각각 작동하는 속도가 다르며(그래서 fast and slow다), 각각의 시스템들이 가진 한계점이나 두 시스템 사이의 충돌로 인해서 인간이 비합리적인 행동을 할 수 있음을 여러 측면에서 분석한 것이 이 책의 내용이다. 책에서 인간의 사고체계가 지닌 두 종류의 시스템을 각각 시스템1, 시스템2로 부르는데, 시스템1은 우리가 크게 힘들이거나 의식하지 않고 하는 행동들(걸어다니기, 위험한 상황 피하기, 다른사람 표정에서 기분 읽어내기)을 관장하는 시스템이고 시스템2는 그 외에 우리가 의식적으로 일부러 생각을 해야하는 행동들(복잡한 계산 등)을 관장하는 시스템이다. 실제로 뇌가 이렇게 둘로 나뉘어있는건 아니고 그냥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이 이렇게 두 방향으로 갈린다고 한다. 시스템1은 일상의 많은 일들을 힘들이지 않고 매우 빠르게 처리하게 해주고, 시스템2는 속도가 느리지만 좀 더 고등한 일을 정확하게 처리하게 해준다. 대부분의 경우 이 각각의 시스템은 서로 독자적으로, 또는 서로 협업하여 많은 행동들을 성공적으로 처리하지만 종종 오류가 날 때도 있고, 어떤 경우에 어떠한 방식의 오류가 생기는지 책 전체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이러한 오류의 사례들 하나하나가 소챕터를 이루고있어서 모두 다루기는 어려운데, 간단한 예시로 여러 착시현상들, 확증 편향, 성급한 일반화 같은 것들이 있었다. 현상들 자체는 간단한데 심리학 분야에서 이런 현상들을 증명하기 위해 시도한 실험들이 흥미로웠다. 여기도 과학처럼 실험을 하긴 해야하는데 사람을 가지고 실험을 해야하니 다른 변인을 통제해가면서 원하는 현상의 존재성을 보이기 위해 똥꼬쇼를 많이 하는 것 같았다. 책 내용의 상당 부분이 이렇게 실험으로 보인 여러 현상들에 대한 소개인데, 몇개만 간단히 적자면 아래와 같다. 1. 사람이 어떤 일이 일어나는 빈도를 추정할 때 실제 통계치보다는 내 머릿속에 그 일이 얼마나 잘 떠오르는지에 기반하여 추정한다. 이에 수반하는 현상으로, 드물지만 강렬한 사건(ex)테러 사건)의 경우 실제 비율보다 더 자주 일어난다고 인식한다. 2. 인간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전체적으로 그럴듯한 스토리라인을 만드려는 성향이 있어서, 사실 우연히 일어나는 일들도 마치 인과관계가 있는 것처럼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3. 사람이 확증편향이 있어서 내가, 또는 내 조직이 내리는 판단에 대해 뒷받침하는 근거만 받아들이고 반박하는 근거는 무시하려고 한다. 그래서 어떤 판단이 맞을 확률을 과대평가하게된다(ex)사업 성공 확률). 4. 사람은 내 눈앞에 있는(내가 경험해본) 것만 볼 수 있어서 어떤 판단이나 추정을 할 때 내가 모르는 부분은 과소평가하게된다. 그리고 이러한 오류들이 실제 경제학 이론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만한 부분들에 대해서도 아래와 같이 몇 가지 소개한다. 1. 사람은 손실 회피 성향이 있어서 같은 양의 돈이라도 +1보다 -1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2. 사람은 이익에 대해서는 위험 회피 현상이, 손실에 대해서는 위험 추구 현상이 있다. 기대값이 같은 100% 확률로 90원 얻기vs90% 확률로 100원 얻기 중 사람은 전자를 주로 선택하고, 거꾸로 100% 확률로 90원 잃기vs90% 확률로 100원 잃기 중 사람은 후자를 주로 선택한다. 3. 확률이 극단적으로 0%에 가깝거나 100%에 가까운 경우 사람들이 부여하는 가중치가 달라진다. 0% 확률의 도박과 1% 확률의 도박은 통계적으로 큰 차이가 없지만 사람들은 후자에는 도전을 많이 하려고 한다. 4. 사람은 스토리텔링에 약해서 프레임을 어떻게 짜냐에 따라서 특정 상황에서 경제적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예컨대 불쌍한 사람에게 돈을 더 주려고 하거나, 매몰비용을 무시하지 못한다거나 하는 상황이 있다. 책이 사실 상당히 학술적이라 챕터별로 이런 이론들이 쭉 설명되어있어서, 책에서도 많이 나오는 '스토리텔링'에 썩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눈에 잘 안 들어왔나?..여튼 이런 식의 내용이 많았는데, 마지막 챕터에서 이런 이론들을 기반으로 사람들의 삶의 행복,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썰을 푸는 게 나는 제일 흥미로웠다. 사람의 사고체계가 두 시스템으로 나뉘듯이 인간의 자아도 경험 자아와 기억 자아로 나뉘는데, 경험 자아는 매 순간순간 경험하는 내 자신이고 기억 자아는 나중에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느끼는 내 자신이다. 이 둘도 서로 충돌할 때가 있다고 한다. 상당히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있었는데, 인간이 과거의 고통을 반추할 때(기억 자아) 얼마나 그 일이 고통스러웠는지에 대해 실제 당시의 내가(경험 자아) 겪었던 고통의 총합을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최대지점+제일 마지막 지점의 고통)/2로 계산을 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10분동안 강한 채찍질vs10분동안 강한 채찍질+1분동안 약한 채찍질 을 하면 고통의 총합은 후자가 더 큰데 기억 자아가 기억하는 고통의 총합은 전자가 더 크다고 한다. 내 인생 전체를 돌이켜볼 때도 마찬가지 공식이 적용되어서, 삶 전체를 돌이켜봤을 때 스스로 부여하는 삶의 의미는 단순히 실제 겪었던 경험들의 총합이 아니라 전체 스토리에서 중요한 몇몇 지점들, 그리고 결말이 어떻게 되었는가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행복에 관한 챕터도 내용이 재밌었는데, 행복도도 실시간으로 내가 느끼는 행복감(경험 자아)과 과거를 돌이켜봤을 때 느끼는 만족도(기억 자아)가 다르게 측정된다고 한다. 이들에 대해 인상깊었던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빈곤, 질병은 행복감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만 연소득 75000불을 넘어가면 부유함은 행복감을 늘리지 못한다. 반면 이 경우에도 만족도는 늘려줄 수 있다. 2. 행복감이든 만족도든 유전적 기질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3. 결혼은 행복감/만족도에 장기적 영향을 주지 못한다. 연구 데이터가 있는데, 결혼 전후 1~2년만 만족감이 상승하고 나머지는 똑같다. 결혼 5년차 이상에는 오히려 결혼 전보다 만족감이 떨어졌다. 4. 사실 결혼 뿐만 아니라 인생의 어떤 일들이든 특정한 일 하나가 인생의 행복감/만족도를 좌지우지할 수 없다. 인생은 수많은 일들의 집합이기 때문이다. 5. 인생 만족도는 본인이 인생에 있어서 어떤 목표를 세웠느냐에 영향을 받는다. 목표 대비 얼마나 성취했느냐가 인생 만족도에 영향을 준다. 인생에 관련된 내용들은 뭔가 심리학 연구가 철학적인 방면으로도 확장되는 느낌이 있고, 내 관심사에도 맞닿아있어서 생각할 거리들을 주어었다 1~5번 모두 나에게는 꽤 깊은 인상을 준 내용이었다. 특히 4번같은 내용은 막연하게 철학적으로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는데, 이게 실험적으로 분석될 수 있는 내용일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정말 사실이라니 느낌이 새로웠다. 이 책의 내용을 보다보면 인간의 사고능력에 이러이러한 오류, 한계가 있으니까 이런 것들을 배워두면 오류를 피할 수 있겠지? 라는 생각이 드는데, 재밌게도 저자는 꿈 깨라고 한다. 이런 책을 읽어도 시스템 2의 기능으로 '배워 둘' 수는 있겠지만, 오류는 애초에 시스템 1과 2의 긴장관계에서 오는 것이므로 같은 상황이 오면 피하기 거의 어렵다고 한다. 미약하게나마 오류를 회피할 수 있도록 상황을 잘 설계하는 방식도 간간히 언급되긴 하는데, 전체적으로는 그냥 받아들이고 살라는 식에 가까운 다소 체념적(?)인 어조다. 책은 정말 교과서처럼 오류를 소개해주기 위한 것이지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내놓은 책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인간 사고에 대한 분석을 기반으로 이런저런 철학적 사고를 하는 데에는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일단 인간 자체의 불완전성에 대해 인식할 수 있고, 경제적 측면에서도 빠지기 쉬운 함정에 대해 사고할 수 있으며(존 보글 책에서 보았던 평균 회귀 원칙을 이 책에서도 볼 줄은 몰랐다), 무엇보다 인생의 의미와 행복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에 대한 실험결과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볼 거리를 많이 준다. 내용이 워낙 방대하고 다소 장황해서 아직 생각을 다 정리하지는 못한 것 같지만, 그만큼 정보가 많이 든 책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