レビュー
조씨

조씨

10 years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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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々と男たち

映画 ・ 2010

平均 3.1

"We're the birds. You're the branch." (Raouia as the villager) 1996년 알제리 반군에 목숨을 잃은 수도사 8인의 실화. 어떤 자세로 세상을 살고 또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지, 그 안에서 종교는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울림을 주는 영화. 영화는 구약성경의 시편 말씀으로 시작한다.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그러나 너희는 사람처럼 죽으며 고관의 하나 같이 넘어지리로다 - 시편 82:6-7 이 말씀은 보통 두 가지로 해석된다. 우선, 흔히 이단 혹은 사이비라고 알려진(그리고 알려지지 않았을지라도 그러한 행태를 보이는) 곳에서는 이렇게 해석한다.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면 인간도 신이 될 수 있다고. 그래서 진리를 통달한 교주는 메시아 혹은 재림 예수가 되며, 그 논리로 신도들에게 과도한 헌신과 헌금을 요구한다. (일반적인) 바른 해석은 이렇다. 시편이 기록된 시절 '신들'로 일컬어질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가진 재판장들 역시 보통 '사람'과 같이 죽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주어진 힘과 능력을 의롭게 사용하지 않을 경우 엄중한 심판이 임한다는 경고인 것이다. 영화 속 수도사들도 죽었다. 그렇다면 이들의 죽음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의롭게 살지 못한 대가로 받은 심판인가? 영화에서(매체를 통해 알려진 바에 의하면 실제로도) 이들은 참된 그리스도인이었다. 종교와 진영을 떠나, 배고픈 자는 먹이고 아픈 자는 치유했다. 이슬람 국가인 알제리에서 일방적인 선교가 아니라, 삶과 기도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이들이었다. 행위의 의로움만 따진다면, 인간보다는 오히려 신적이었다 감히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도 인간이었다. 애초에 순교자로 알제리에 간 것은 아니었다. 테러의 위협 앞에서 죽음을 두려워했고, 알제리 땅을 떠날까 고민했다. 그때 이들을 머물게 한 것은 마을 사람들과의 대화였다. - 우리는 떠날지도 모릅니다. - 왜 떠나시는 거죠? - 가지에 앉았다 떠나는 새들처럼 이유가 없습니다. - 새들은 우리예요. 수사님들은 가지입니다. 가지가 없으면 새들은 어디에 앉죠? 그렇게 이들은 알제리에 남아 죽음을 맞이했다. 정부군도 반군도 아닌 자신들을 믿고 의지했던 마을 사람들을 위해 '가지'로 남은 것이다. 영화의 백미는 수도사들이 죽음을 앞두고 가진 최후의 만찬 장면. 포도주를 나눠 마실 때 흐르는 음악은 찬송가가 아니라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눈물이 흐르고, 웃음이 피어났다가, 다시 눈물이 흐른다. 이들의 얼굴 위로, 예수가 보인다. 신이지만, 인간의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한 예수. 그래서 수도사들의 죽음은, 마치 예수의 죽음처럼, 비참하지만, 동시에 아름다웠다. 앞서 이야기한 시편 말씀에 대한 영화의 해석은 이런 것이다. 비록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이지만, 신적인 존재로 살아가라는 것이다. 심판에 대한 엄중한 경고가 아니라, 애정 어린 권면에 가깝다.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렇게 살아갈 때, 교회는 비로소 이웃을 위한 '가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