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미인

ハーフ・オブ・イット: 面白いのはこれから
平均 3.6
2020年05月17日に見ました。
80년대, 성소수자의 명칭이 재정립되던 시기. 게이는 본래 긍정적 의미였지만 퀴어란 단어는 그때까지도 멸칭에 가까웠다. 그즈음 비트 세대 최고의 작가인 윌리엄 버로스의 자전 소설 '퀴어'가 출간되었는데 이는 작품이 쓰인지 30년 만의 일이었다. 정말 혼자인 사람은 아무도 없어. 누구나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일부야. 그래도 다른 사람을 보고 '너는 나의 일부'라고 설득하기란 어려운 일이야. 그러니 젠장 어쩌라는 거지? 우리 모두가 무엇의 일부라면 함께 작동할 밖에. 그렇지?" 플라톤의 향연보다는 퀴어의 이 구절로 영화는 시작되어야 했을 것이다. 누군가가 누구의 반절이 되는 일은 없을 테니. 설혹 그것이 퀴어라 하더라도 (이하 스포) 작품을 탓하고 싶진 않았지만 작동이라는 단어에 힘을 얻어 글을 보탠다. 영화 졸업의 마지막 시퀀스. 더스틴 호프만은 교회를 향해 전력으로 뛰었다. 식장에 도착해 한 층 위로 올라간 그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예식을 망치고 신부와 도망친다. 그들이 잡아탄 버스의 승객들은 모두 나이 든 사람들. 젊은 그 둘을 그저 황망하게 바라본다. 영화는 이 지점에서 대담하게 배역을 바꿔 끼우고 기존의 방식을 뒤집는다. 클리셰가 레퍼런스로 바뀌어 작동하는 지점. 더스틴 호프만은 동양 여성이, 뜀박질은, 떠나지 못하는 이가 대신한다. 신부는 함께 오지 않았다. 나이 든 기차의 승객들을 하나하나 비춰주지만 그녀의 새 출발에는 무심할 뿐이다. 영화에서 영화를 말하던 부분. 훌륭한 그림은 대담한 다섯 개의 선을 가지고 있다고. 여기 바꿔 덧칠한 그림에는 덧대지 못한 기존의 선이 있다. 엘리가 애스터에게 한 고백의 말 ‘당신은 고전적인 골격을 가지고 있어요’ 기존의 방식을 뒤집지 못한 고전적인 선. 백인 미녀, 그녀는 상대역으로 기능했지만 스스로 존재하고 작동하지 않았다. 함께 도망가는 신부가 빠진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이 영화는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고 오래전 자신의 커밍아웃 과정에서 헤테로 백인 남사친과의 이별을 극복하려 쓴 시나리오라고 했다. 엘리와 폴은 실존의 모델이 있고 애스터는 가상의 신화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에서 애스터를 걷어내면 모호했던 지점이 사라진다. 로맨스가 아닌 정확한 성장영화로 말이다. 미국의 어느 시골, 동네의 유일한 동양 여성이 기차를 타고 떠난다. 그녀는 훗날 자신의 커밍아웃에 관한 영화를 만들었고 십수년이 흐른 후에야 겨우 다시 한번 이 영화를 만들었을 뿐이다. 우리 영화로 돌아가 그 시작을 축복하자. 수십년 전의 그 소녀를 찾아가 살갑게 이야기를 건네자. 단벌의 겨울 외투를 입고 목도리를 두른 사람에게. 겨울에서 근사한 봄의 근사치로 다가서는 사람에게. 우선 생각한 것은 그녀의 목소리. 당신은 겨울 목소리를 가졌다고. 사람이 차갑다는 뜻이 아니라 더운 숨과 따뜻한 말씨를 가졌다는 뜻이라고. 봄의 언저리에 가서 그 목소리가 더욱 화사해지길 바란다고. 한때는 모든 이야기의 끝은 희망이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살다 보니 안 될 생각이었기에 많이 굽혔고 지금은 그래도 성장 영화라면 그 끝이 씩씩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엘리에게 더 따뜻한 이야기를 해주고 싶지만 가진 게 없어 한강의 소설 구절을 대신 적는다. 꼭 그이가 아니더라도 어떤 사람에게 응원이 되길 바란다. 그이가 씩씩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 꿈 이야기가 끝났을 때 나는 무엇인가를 이해했지만 내가 이해한 것을 은희 언니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녀가 내 꿈을 듣고 이해한 것을 나에게 말하지 않은 것처럼. 그러지 마 라고 그때 말했어야 했다. 그러지 마 우리 잘못이 있다면 처음부터 결함투성이로 태어난 것뿐인걸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게 설계된 것뿐인걸. 존재하지 않는 괴물 같은 죄 위로 얇은 천을 씌워놓고 목숨처럼 껴안고 살아가지마. 잠못 이루지 마 악몽을 꾸지 마 누구의 비난도 믿지마. 그러나 그중 한마디 말도 나는 입 밖으로 꺼내놓지 못했다. 오래전에 단 한번 그랬던 것처럼 어깨를 꽉 안지도 손을 잡지도 않았다. 다만 은희 언니가 제 힘으로 찾아가는 곳의 여행이 그녀를 구할 거라고 믿었다. 내가 할 수 있었을 어떤 말보다 강렬한 열기와 소낙비로. 물을 머금고 생생하게 솟아오르는 열대의 꽃과 나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