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ファースト・カウ
平均 3.9
영화 러닝타임을 통틀어, 통상적으로 가장 풍경이라 부를 만한 오프닝 숏을 거대한 배 하나가 느릿하게 움직이며 소음과 함께 덮어 버린다. 가뜩이나 좁은 화면을 가로로 잘라버리는 듯한 거슬리는 움직임에, 현대 문명의 자본을 이끄는 상징물 같은 것이 풍경을 지워낸다는 식의 상투적인 말마저 하고 싶어진다. 그러고 보면 풍경을 지워내는 게 많다. 영화는 좁은 화면비에 그치지 않고 창틀, 문, 창문, 나무 등 온갖 것들로 화면을 더욱 가리고 좁히려 한다. 인물 한두 명만 나오면 꽉 차는 비율에 풍경은 좀체 위력적이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퍼스트 카우>를 보고 있으면 좁은 화면에도 불구하고 더 없는 풍경을 본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물론 숲, 나무, 강물, 하늘 등 이따금의 풍경도 있다. 화면비 때문인지 풍경은 과시적이기보다 소박하게 다가온다. 소박하지만 그만큼 살뜰하다. 일련의 풍경은 서사를 휘두르고 인물을 장악한다던지 보는 이의 시선을 앗을 정도로 위력적이진 않지만, 차마 흘려 보내긴 힘든 평온함을 머금은 정취가 있다. 또 무엇보다, 그런 소중한 풍경의 틈새에 쿠키와 킹루, 두 사람이 있다. 실없는 농담과 (이뤄지지 않을) 꿈을 간간히 뱉는 두 사람의 대화가 자체로 어떤 이상적인 풍경을 그려낸다. 똑같은 이방인이지만 서로 다른 유형인 두 사람이 우정을 쌓는 방식도 거창하진 않다. 그저 우연히 만나고 함께 걸음으로써 유대의 훈풍을 불러올 뿐이다. "새에겐 둥지가, 거미에겐 거미줄이, 인간에겐 우정이" 크레딧 이후의 시구처럼 인간의 터전은, 삶의 풍경은 다름 아닌 우정에 있나보다. 우정(처럼 보이는 것)은 또 하나 있다. 매일 밤 우유를 훔쳐내며 소와 마주하는데, 소를 쓰다듬는 손길이 이상한 교감을 만들어낸다. 실상 일방적이기만 한 관계건만, 둘의 관계를 우정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범죄 영화 같은 순간에 서스펜스보다 이상하리만치 유대적으로 강조되는 쿠키와 소의 숏들은 그 둘에게 바쳐지는 것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결국 일방적인 득과 실이지만서도 쿠키의 손길이 그저 착취는 아니었다고 믿고 싶어지는 이상한 순간이다. 아닌 게 아니라, 더 많은 우유와 더 많은 돈을 꿈꾸는 순간, 하룻밤의 말 없는 유대ㅡ를 가능케 하는 범죄ㅡ를 지켜주던 나무도 우지끈 무너지지 않았던가. 소의 첫 등장을 비롯해 소와의 장면이 짧지만서도 인상적으로 기억되는 게, 비단 제목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따스한 우정의 공기로 기억되는 <퍼스트 카우>의 화면비 얘기로 다시 돌아오면, 양 옆이 좁은 대신 전경과 후경을 곧잘 이용하며 화면의 깊이를 더한 연출로 영화를 풀어간다. 덕분에 마치 풍경 깊은 곳에서부터 인물이 나오거나, 반대로 인물 너머 풍경 깊은 곳으로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라이카트는 풍경 혹은 세상의 너비보다 그것이 지닌 깊이가 더 중요하다고 믿는 걸까. 풍경을 지우더니, 아직 풍경이 숨쉬던 시대로 훌쩍 떠나며 우정을 그리는 <퍼스트 카우>는 마치 서부 개척 시대의 너른 확장을 불신하는 듯, 그 꿈을 잠재우는 쪽을 택한다. 그간 쉬이 청하지 못했을 깊은 잠을 닮은 죽음. 이야기의 폭보다 정서의 깊이랄지, 오프닝부터 예기된 잠든 죽음이 더 없이 온화하고 평온하다. 그동안 느릿하게 멈춰 서곤 했던 라이카트의 영화가 아예 죽음으로 멈춘다. 정체가 아니라 더 이상 나아갈 길 없는 완연한 정지. 그렇다고 비극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외려 멈춤으로써 영원의 순간을 선사하려는 듯한 느낌. 나란히 누운 두 사람은 오프닝으로 돌아가 수백 년이 흘러서야 발견될 테지만, 흙 속에 파묻혀 있던 그들의 유골처럼 그야말로 풍경과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유대건 우정이건, 뭐라고 불러도 좋을 두 사람의 온기가 그 자체로 풍경이 된다. 풍경과 인간을 함께 간직하고 녹여내는 <퍼스트 카우>는 따스하고 시적인 정취를 머금고서 서부라는 (신화 아닌) 동화의 감각을 깊이 새겨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