ファースト・カウ
First Cow
2019 · ドラマ/西部劇 · アメリカ
122分 · PG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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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部開拓時代のオレゴン州。料理人クッキー(ジョン・マガロ)は、アメリカン・ドリームを求めて未開の地を訪れる。そこで中国人移民のキング・ルー(オリオン・リー)と出会い、成功を夢見る2人は自然と意気投合する。やがて2人は、この地に初めてやってきた“富の象徴”である牛からミルクを盗み、ドーナツで一攫千金を狙うという大胆な計画を思いつ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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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rival

River Dreams

The Separation

The Separation


이동진 평론가
5.0
우정의 거처에서 고쳐 상상하는 서부극의 곡진한 순간들.
JE
4.5
영화 러닝타임을 통틀어, 통상적으로 가장 풍경이라 부를 만한 오프닝 숏을 거대한 배 하나가 느릿하게 움직이며 소음과 함께 덮어 버린다. 가뜩이나 좁은 화면을 가로로 잘라버리는 듯한 거슬리는 움직임에, 현대 문명의 자본을 이끄는 상징물 같은 것이 풍경을 지워낸다는 식의 상투적인 말마저 하고 싶어진다. 그러고 보면 풍경을 지워내는 게 많다. 영화는 좁은 화면비에 그치지 않고 창틀, 문, 창문, 나무 등 온갖 것들로 화면을 더욱 가리고 좁히려 한다. 인물 한두 명만 나오면 꽉 차는 비율에 풍경은 좀체 위력적이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퍼스트 카우>를 보고 있으면 좁은 화면에도 불구하고 더 없는 풍경을 본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물론 숲, 나무, 강물, 하늘 등 이따금의 풍경도 있다. 화면비 때문인지 풍경은 과시적이기보다 소박하게 다가온다. 소박하지만 그만큼 살뜰하다. 일련의 풍경은 서사를 휘두르고 인물을 장악한다던지 보는 이의 시선을 앗을 정도로 위력적이진 않지만, 차마 흘려 보내긴 힘든 평온함을 머금은 정취가 있다. 또 무엇보다, 그런 소중한 풍경의 틈새에 쿠키와 킹루, 두 사람이 있다. 실없는 농담과 (이뤄지지 않을) 꿈을 간간히 뱉는 두 사람의 대화가 자체로 어떤 이상적인 풍경을 그려낸다. 똑같은 이방인이지만 서로 다른 유형인 두 사람이 우정을 쌓는 방식도 거창하진 않다. 그저 우연히 만나고 함께 걸음으로써 유대의 훈풍을 불러올 뿐이다. "새에겐 둥지가, 거미에겐 거미줄이, 인간에겐 우정이" 크레딧 이후의 시구처럼 인간의 터전은, 삶의 풍경은 다름 아닌 우정에 있나보다. 우정(처럼 보이는 것)은 또 하나 있다. 매일 밤 우유를 훔쳐내며 소와 마주하는데, 소를 쓰다듬는 손길이 이상한 교감을 만들어낸다. 실상 일방적이기만 한 관계건만, 둘의 관계를 우정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범죄 영화 같은 순간에 서스펜스보다 이상하리만치 유대적으로 강조되는 쿠키와 소의 숏들은 그 둘에게 바쳐지는 것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결국 일방적인 득과 실이지만서도 쿠키의 손길이 그저 착취는 아니었다고 믿고 싶어지는 이상한 순간이다. 아닌 게 아니라, 더 많은 우유와 더 많은 돈을 꿈꾸는 순간, 하룻밤의 말 없는 유대ㅡ를 가능케 하는 범죄ㅡ를 지켜주던 나무도 우지끈 무너지지 않았던가. 소의 첫 등장을 비롯해 소와의 장면이 짧지만서도 인상적으로 기억되는 게, 비단 제목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따스한 우정의 공기로 기억되는 <퍼스트 카우>의 화면비 얘기로 다시 돌아오면, 양 옆이 좁은 대신 전경과 후경을 곧잘 이용하며 화면의 깊이를 더한 연출로 영화를 풀어간다. 덕분에 마치 풍경 깊은 곳에서부터 인물이 나오거나, 반대로 인물 너머 풍경 깊은 곳으로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라이카트는 풍경 혹은 세상의 너비보다 그것이 지닌 깊이가 더 중요하다고 믿는 걸까. 풍경을 지우더니, 아직 풍경이 숨쉬던 시대로 훌쩍 떠나며 우정을 그리는 <퍼스트 카우>는 마치 서부 개척 시대의 너른 확장을 불신하는 듯, 그 꿈을 잠재우는 쪽을 택한다. 그간 쉬이 청하지 못했을 깊은 잠을 닮은 죽음. 이야기의 폭보다 정서의 깊이랄지, 오프닝부터 예기된 잠든 죽음이 더 없이 온화하고 평온하다. 그동안 느릿하게 멈춰 서곤 했던 라이카트의 영화가 아예 죽음으로 멈춘다. 정체가 아니라 더 이상 나아갈 길 없는 완연한 정지. 그렇다고 비극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외려 멈춤으로써 영원의 순간을 선사하려는 듯한 느낌. 나란히 누운 두 사람은 오프닝으로 돌아가 수백 년이 흘러서야 발견될 테지만, 흙 속에 파묻혀 있던 그들의 유골처럼 그야말로 풍경과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유대건 우정이건, 뭐라고 불러도 좋을 두 사람의 온기가 그 자체로 풍경이 된다. 풍경과 인간을 함께 간직하고 녹여내는 <퍼스트 카우>는 따스하고 시적인 정취를 머금고서 서부라는 (신화 아닌) 동화의 감각을 깊이 새겨낸다.
황재윤
4.5
주류로 통하는 시대상에서 비주류의 인간과 자연을 조명하여 우정의 시로 녹여낸 켈리 라이카트.
pilon
5.0
대안 서부극 good 총질대신 빵튀기고 꿀바르고 냠냠굿
Camellia
4.5
서툴게 장작 패고 조용히 비질하던 온기가 깃든 호텔에서, 버섯과 들꽃을 알아보는 사람의 빵을 먹어보고 싶었어. 안타깝지만 거기도 꽤 아늑하고 좋은 곳이겠지. 고마워. 이 얘기가 소중해진 건 나란히 곁에 누운 마음들로 반죽한 덕분이야.
서영욱
2.0
10분 후 떡실신 오리온 리 ASMR 2:00:00 평론가들이 별 다섯개 주는 영화는 함부로 보면 안된다
손영규
4.5
서부 영화 속 모든 사람은 결국 죽는다는 사실에 대해, “데드맨”은 궁시렁거리고, “헤이트풀 8”은 발악하고, “용서받지 못한 자”는 타오르며, “퍼스트 카우”는 수줍게 미소짓는다.
정환
5.0
잠시 눈을 붙이며 기다렸던 배가 너무 늦었는지도 모르겠지만, 평생을 기다렸던 시간보다도 그 시간 동안 머물렀던 곳이 더 소중한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제야 기다림에 있어 중요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내가 머무른 자리의 풍경이라고 믿는다. 시간보다 중요한 건 풍경일 거고, 내 풍경을 채우는 건 시간이 아니라 사람이니까. . 영원하고 싶은 시간과, 영원일 것만 같은 시간.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은 순간과 영원만큼 가늠하지 못할 시간들. 이것들을 미리 가늠하거나, 상상하거나 부담하기엔 너무도 벅찬 순간들. 과연 이 모든 것이 언제 끝이 나게 될까. 떠오르고 싶지 않더라도 정해진 우리 운명의 최후를 불현듯 상기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입장이 참 볼품없고 작게만 느껴졌다. 곱씹을수록 신비로우면서도 두려운 순간들을 이렇게나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야. 이 영화의 순간들처럼. 영원하고 싶은 영화. 영원일 것만 같았던 영화. 영원에 가까운 긴 시간의 무료하고 지루한 부담과 두려움을 지우고, 내게 안식을 안겨준 이 영화처럼. 다가오는 것들에게 헤엄쳐 발버둥치는 대신 눈을 감을 줄 아는 저 여유를 일깨운다. 매번 도망쳐 다닌 우리가 무언가에게 쫓기는 대신에 스스로 찾아 나선건 함께할 서로가 아니었나. 무료함이나, 두려움이나, 그것이 권태건, 사랑이건, 죽음이건. 모두 시간을 견뎌내는 훈련을 요하는 것들이다. 늘 도망쳐 살기만 했던 우리 시간의 특성은 참 잔인하다. 영원에 가까운 시간들을 기다리는 것이 끔찍할 만큼 무서울 나에게는 역설적이게도 시간이 필요한 법이었다. 우리가 시간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시간이 너무 소중해서가 아니라 시간을 많이 써보질 않아서. 시간을 잃어버린 적이 없어서. 왜냐하면, 시간을 귀하게 여길 때는 시간을 쓰기 전보다 시간을 다 쓴 후라는 시간을 대하는 인간의 특성 자체가 그러하니까. 어딘가에 쫓겨 불안에 떨고, 수많은 사람들의 배가 떠나는 것을 묵묵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것들이 쌓이고 쌓여 시간의 고통에 익숙해진다면, 그제서야 내겐 시간보다 중요한 것이 눈에 들어올 거라 믿는다. 떠나는 누군가의 배를 바라보는 일이 익숙해질 때. 언젠가는 떠날 내 시간에 초조함 대신 잠시 눈을 붙일 여유가 생길 때. 살았던 날을 기억하는 것보다 오지 않을 죽을 날이 더 선명하다던 나의 어느 어르신의 담담했던 말씀처럼, 기약 없는 기다림이 익숙해질 만큼 시간이 오래 흐른 사람에게, 그것이 언제 도착하는지는 어느덧 중요하지도 않아 보였다. 어떻게 그 만 년같은 하루들을 견뎌내셨냐고 물었을 때, 기다림에 중요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는 내 어르신의 옛 말씀이 요즘에서야 이해가 간다. 웃으면서 담담히 마지막을 기다리는 내 사람을 영원하게 담고 싶었던 개인의 생각이 왜인지 다시 한 번 들게 만들었을 만큼 영원을 담아낸 영화의 평온한 태도가 참 좋았다. 잠시 눈을 붙이며 기다렸던 배가 너무 늦었는지도 모르겠지만, 평생을 기다렸던 시간보다도 그 시간 동안 머물렀던 곳이 더 소중한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제야 기다림에 있어 중요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내가 머무른 자리의 풍경이라고 믿는다. 그때와 지금 내 곁에는 누가 있더라. 시간보다 중요한 건 풍경일 거고, 내 풍경을 채우는 건 시간이 아니라 사람이니까. 사랑은 시간을 선물하는 일 이랬나. 그건 유한하지만 무한에 가까운 우리 각자의 시간 동안 쉼터가 되어줄 사람을 찾는 일이겠지. 내 인생의 마지막 배를 기다리는 동안, 기꺼이 같이 머무르고 싶은 사람. 그 시간이 거의 영원에 가까워도 좋을 만큼. 함께 있는 순간만큼은 영원해도 좋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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