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ack Yoon

휴먼카인드
平均 4.1
책이 스티븐 핑커의 주장을 어느정도 비판하고 있지만, (핑커는 인간의 '고상하지 못한' 야만적 본성을 문명이 교화시켰다고 주장하지만, 이 책은 인간은 본성적으로 조화롭고 선하게 살았으며 문명 이후 폭력과 분쟁이 생겨났다고 본다.) 전체적으로 볼땐 핑커의 영향이 진하게 느껴지는 책이다. 주목받지 못하던 인간의 선한 본성을 조명한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핑커의 고전 '빈 서판' 등과 거의 판박이인 구조를 차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기존의 이론을 과학적, 고고학적 증거들로 하나하나 비판하고 쳐부수는 걸로 시작해서 그 의미를 복기하고, 나아가 후반부에서는 이 발견을 사회 각 분야에 적용하고 이를 자신의 사회학적 주장으로 전개해나가는 책의 구조는 핑커의 방법론과 거의 동일하다. 내가 뒤늦게 핑커의 '빈 서판'을 읽을 때는 이미 그의 주장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져 누구도 유전의 중요성을 무시하지 않던 시기였고, 진화심리학 또한 대중적으로 많이 보급된 이후였기에 그의 무시무시한 '디스전'이 지적 자극을 주었을지언정 새롭다는 느낌을 받긴 어려웠다. 하지만 '휴먼카인드'가 싸우는 상대는 현시대의 우리가 당면해 있는 적이다. 인간에 대한 냉소주의적이고 비관적인 시선, 그리고 타 집단에 대한 맹목적인 혐오. '휴먼카인드'는 인간의 악한 본성이라는 신화를 쌓은 공고했던 증거들, 고고학적, 진화심리학적 근거들과 사회학적 실험과 언론 보도들을 하나하나 비판하고 빈틈을 공격한다. 그리고 그에 반대되는 인간의 선한 본성에 대한 증거들을 제시한다. 이 근거들이 완벽하게 '선한 인간'이라는 방향을 증명하는가, 에 대해서는 저자 자신도 100% 확신하는 기색은 아니다. 하지만 그 회의주의적 자세가 오히려 그의 지적 건전성에 대한 신뢰를 준다. 그리고 그 증거들은 우리가 갖고 있던 공고한 신념들을 의심케 하기엔 이미 차고 넘친다. 이 새로 들고온 선한 인간의 실마리로 저자는 후반부에 사회의 변혁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여기서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비판은 충분히 전문적이지 않게 보이는 부분도 있고, 낙관적 태도로 범죄자나 테러리스트의 교화에 대해 접근하려는 시도는 우리의 감정적인 직관과 어긋나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것이 결과적으로 옳은 방향임을 주장하며 그에 대한 통계적 수치들을 제시한다. 이것들이 확증편향적인 수집일 거란 의심을 완전히 지워내기는 어렵고 반대 주장을 보고 싶은 욕구도 일지만, 어쨌거나 여기에서도 우리의 통념을 뒤집는 설득력있는 목소리가 있으며 이는 충격적으로 사회에 대한 시선을 비틀어 볼 기회를 제공한다. '휴먼카인드'가 책 전체에 걸쳐 비판하고 뒤집어내려는 것들의 이름값은 어마어마하다.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부터 말콤 글래드웰의 '티핑 포인트'로 유명해진 깨진 유리창 이론까지, 너무도 유명하기에 우리의 의식적 무의식적 판단에 끼치는 영향이 지대한 것들을 이 책은 거침없이 의심하게 하고 그 판단을 재고하게 만든다. 이로부터 오는 지적 쾌감도 대단하지만, 더 큰 감동을 주는 것은 이 뒤집는 행위들이 무엇을 공격함으로써 오는 음침한 쾌감이 아니라 긍정적인 것들을 건설하려는 선한 의지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책의 말미에 나오는 저자가 주장하는 삶의 태도 열 가지는 그 계명만 보면 너무 순진해 우스워 보일 지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한 후에 그 계명들을 볼 때, 나는 어떤 (언급하기 낯뜨거운 단어가 돼버렸지만) 희망과 함께 깊은 감동을 느끼게 되었다. 이런 종류의 감정은 요즘에 접하기 어려운 것이기에 더욱 귀하다. 모두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