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준희
6 months ago

세월
平均 3.8
<세월>은 20세기 중반에서 21세기 초반까지 프랑스 사회의 변화를 일상의 파편에서 건져내려는 야심 찬 문학적 시도다. 작품에서의 인칭은 매우 모호한데 저자는 익명화된 개인의 사적 체험을 아카이빙하면서도 ‘나’가 아니라 ‘우리’ 혹은 이따금 ‘그녀’를 작품 속 주요 대명사로 활용한다. 신자유주의 도래 이후 21세기의 소비 사회에서 “우리는 물건들의 시간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와 같은 진술처럼 말이다. 흥미롭게도 ‘우리’라는 대명사는 안일한 방식의 동질성으로 환원되지 않고 끊임없는 차이를 드러내며 개인의 삶이 타자 및 사회적 시간과 공-구성되는 것임을 드러내는 소설적 장치로 쓰인다. 에르노는 사적 주체들의 추억 속 일상의 단면, 예를 들어 혁명 및 시위, 대중가요, 유행하는 철학자 및 사조, 광고 문구, 사진 등을 세밀하게 배치하며 거대사 이면의 집단적인 문화적 무의식을 추적한다. 이러한 에르노의 작업은 거대사 중심의 서사가 지니는 재현 불가능성을 폭로하고 역사의 이면에 남겨진 잔해들의 성좌를 만들며 시대의 공기를 형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