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밥

소설 보다 : 가을
平均 3.4
나는 핑크퐁 할아버지처럼 사느니 그냥 죽을래. 마침 멀리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에 귀 기울이는 척하며 나는 표정을 감췄다. 하지만 잘 감춰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건 지금까지 연두가 한 모든 말 중 가장 웃긴 말이었으니까. 아아 귀여운 연두, 멍청하고 불쌍하고 귀여운 연두. 두정에서 태어나 두정대에 다니고 두정대 남자와 씨씨를 하고 두정에서 유일하게 두정대 앞에 딱 하나 있는 롯데리아에서 데리버거 세트를 사먹으며 맛있다 말하는 연두. 연두야, 나도 너처럼 사느니 그냥 죽을래. 너는 실패했지만 나는 아직 성공도 실패도 하지 않았어, 그치만 내 미래가 너라면 나는 그냥 이만 여기서 죽을래. p. 74 -어릴때 내가 하던 생각과 똑같아서 놀랐다. 대단한 사람이 되지 못할 거라면 그냥 죽고 싶었다. 아무 대학이나 가고싶지 않았고 꼭 내가 선택한 곳에 가고 싶었고, 나는 다시는 그곳에 갈 수 없다는 걸 깨달았고, 죽고 싶었고, 죽고 싶지 않아서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고 모든 것을 가능성으로 남겨두었다. 성공도 실패도 하지 않은 상태는 가능성 때문에 달콤하고 중독적이니까. 그러나 세상은 대단한 사람이 되지 않아도 괜찮은 곳이다. 별볼 일 없게 존재해도 괜찮다. 비교는 즐거움의 도둑이고 내가 만족할 수 없다면 나를 밀어붙여도 되지만 그게 타인을 지표로 삼아서는 안된다. '그러니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음' -미래를 유예/유보/연기하며 내가 고작 이것밖에 안 되는 인간이라는 게 두려워, 부끄러워, 나를 가둬버린다면. 끝없는 정신병의 굴레에 빠지게 된다. 왜냐하면 미래가 오는 걸 막을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난 억지로 스무살에 머무며 나이만 들어갔다.. 핑크퐁 할아버지에게도 뭔가가 될 수 있던 시절이 분명 있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시절은 언제, 어떻게 끝났을까. 그 끝남을 어떻게 눈치챌 수 있을까. 끝은 분명히 있는데 그 시기와 형태는 알 수 없고 한번 끝나고 나면 정말로 돌이킬 수 없다니, 그리고 그 모든 게 단 한 번뿐이라니. p. 78 이윽고 아주 천천히, 어떤 깨달음이 찾아왔다. 나는 그다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남다르게 뛰어나지 않았다. 내 미래는 빛나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런 행운이 꼭 내게 찾아올 이유는 없었다. p. 84 -내가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살면서 언젠가 한번쯤은 깨닫게 되리라고 생각되는데, 나는 그걸 깨달았을 때 자아가 붕괴해서 아주 많이 괴로웠다. 안 죽어. 안전 바가 있잖어. 안 죽을 거 알면 그냥 재밌는 거지. 몇 번이고 떨어져도 안 죽는다고. 그러니 얼마나 재미있어? p. 89 -인생은 몇 번이나 나를 땅바닥에 처박는데, 정말 예고도 없이 그러해서 힘들지만, 안전바가 있는 사람은 죽지 않을 수 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소리 지르면 정말로 뭔가 나올 것 같았다. 미끈하고 끔찍한, 다시는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놓을 수 없는 무언가가... 거봐, 안 죽었지? 재미있지? -주인공이 토해내려던 건 여태까지 본인이 가지고 있던 열등감, 질투, 분노, 허망함일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의 자아. 개인적으로 연두가 "애는 일찍 낳는 것도 나쁘지 않대. 키울때는 힘들지만 키우고 나면 편하대." 라고 말했을 때 아주 화가 났다. 누가 편한데? 본인의 노후가? 아이를 낳는 건 내 배에서 나온 내 아이가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하고 아이의 인생을 통제하지 않되, 그 아이가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해주는 일이다. 그리고 그 아이가 살인자가 되더라도/아무것도 되지 않더라도 기꺼이 사랑해주리라 하는 마음으로 보듬는 것이다. 내가 쉬고 싶을 때 쉬지 못하고 당장 죽고싶어서 자살 방법을 고민하고 있을 때에도 아이가 기저귀에 똥을 싸면 당장 기저귀를 갈아주고 엉덩이를 닦아줘야 하는 일이다. 친구들과 밤늦게 술을 마시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고 최선을 다해도 내 아이가 내가 상상한 대로 자라지 않는다는 걸 좌절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일이다. 나만의 생각에 빠져들고 있을 때 아이가 배가 고프다고 하거나 놀아달라고 하면 다 제쳐두고 챙겨줘야 하는 일이다. 또한 그 아이가 커서 다시는 나를 보지 않겠다고, 내가 너무 밉다고, 날 왜 낳았냐고 날 원망해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일이다. 그래도 널 키울 수 있어 행복했고 널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일이다.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는 자신이 있을 때 아이를 낳아야 한다. 사람들은 대개 비슷하고, 저이는 좀 다르다 싶었던 사람들도 의외로 아무것도 없어, 특별함에 대한 믿음은 언제나 시간의 흐름에 삼켜지고 말았다. p. 112 히데오, 두정랜드, 공부를 하자 그리고 시험을 보자 각각의 단편들이 모두 매력있었다 특히 공부를 하자 그리고 시험을 보자 는 읽기 싫었는데, 제목이 재미없어서 그랬다 그런데 인물들의 묘한 감정과 권력감, 욕망을 포착하는 방식이 좋았다. 특히 난 마지막 장면에서 승주가 아주 많이 걱정되었는데 작가가 그건 승주가 처음으로 계산없이 자신의 행복한 상상에 몰두한 순간이며 승주의 삶은 앞으로 더 넓어질 거라고 말한 인터뷰를 읽고 작가님이 좋아졌다. 히데오는 어떤 순간의 사랑에 대한 포착을 주제로 쓴 글 같다고 생각했다 그 시절은 지났지만 그때의 당신은 여전히 당신인가? 라는 질문을 하고 싶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