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민

Ariel (原題)
1. 로이스 파티뇨와 마티아스 피녜이로의 협업, 셰익스피어 인용 등을 이유로 많은 이들이 <시코락스>와 <아리엘>을 연결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시간이 더이상 흐르지 않는 듯한 외딴 해안 마을/섬마을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는 면에서 <붉은 달의 조류>와 더 가깝게 느껴진다. 2. (영화 보고 2주 만에 메모하려니까 약간 헷갈리는데) <아리엘>에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인물이 두 명 뿐이다. 하나는 아구스티나가 섬에 들어오면서 다른 지인들에게 연락할 때이고, 다른 하나는(내 기억이 맞다면) 항구 매표소 직원들이 한 번 사용한다. 섬 전체가 하나의 연극 무대이고, 매표소는 외부와 연결되는 유일한 창구라고 한다면, 아구스티나가 스마트폰을 더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는 시점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그녀는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연극의 세계에 빠져드는가? 3. <아리엘>의 결말에서 아구스티나는 이렌느에게 이 영화를 끝내지 말자고 한다. 몇 년 전에 봤다면 그저 감동을 받았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감흥이 조금 다르다. 영화는 매체 특성 상(미술관에서 루프 형식으로 상영하지 않는 한) 끝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영화를 끝내지 않기로 인물들이 다짐해봐야 영화는 끝날 것이다. 그러니 오히려 끝을 인정했더라면, 오히려 연극과는 다른 영화만의 끝을 만들었더라면 그 편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4. <아리엘>은 파티뇨와 피녜이로의 협업으로 시작되었으나 피녜이로가 중도에 빠지며 파티뇨의 단독 연출작이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영화에 대사로도 삽입되어있다. 이 영화는 파티뇨의 영화인가, 피녜이로의 영화인가 자문하는 대사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아리엘>에서 이와 같이 노골적으로 언급되는 텍스트들 중에 내게 가장 흥미로운 이름은 사실 파티뇨와 피녜이로가 아닌, 트루에바였다. 아구스티나가 이렌느와 첫 인사를 나누면서 나누는 대화에서 이렌느가 트루에바의 영화에 출연했다는 것이 대사로 언급된다.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쓰는 80년대생 40대 감독 트루에바, 피녜이로, 파티뇨. 이들의 이름이 교차하는 <아리엘>. 어쩐지 셰익스피어를 인용하거나 각색하기보다 지금의 스페인 혹은 남미(그중에서도 아르헨티나) 영화계와 감독들의 지형도를 그리는 작업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