レビュー
songeur

songeur

1 month ago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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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공화국 선언

本 ・ 2025

平均 3.4

팔란티어의 CEO 알렉스 카프는 서구 문명에 대한 자긍심, 그리고 약간의 노파심을 가진 채 <기술공화국 선언>을 써냈다. 여기서 '선언'이라는 표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철학 박사 학위를 가진 카프의 배경을 고려해보면 아마도 그는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을 오마주하려 했을 것이다. 즉, 마르크스와 엥갤스가 이론의 상아탑에 갇히는 대신에 실제적인 현실의 변화를 추동하려고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의 필연적 이행을 선언하였듯이 카프는 매너리즘에 빠진 서구 문명에 경종을 울리기 위하여 기술공화국으로의 전환이 요구됨을 선언하고 있다. 한마디로, <기술공화국 선언>은 일종의 선동문이다. 그렇다면 카프는 무엇을 선동하고 있는가? 카프는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구가 위대한 이념을 상실하고, 소비주의와 자본주의에 물들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카프가 찬미하는 20세기 초중반의 미국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이념을 지키기 위하여 공공과 민간의 협업을 바탕으로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하는 기술적 진보를 이루어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소련이 해체되고, 이념적 적수가 사라짐에 따라 미국은 더 이상 자유주의니 민주주의니 하는 이념을 설파할 필요가 없어졌다. 오늘날 다원주의 같은 가치중립적 레토릭(카프에 따르면 좋은 게 좋은 다원주의는 아무것도 지향하지 않으므로 이념이라 부를 수 없다)이 대두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리하여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이념의 빈자리에 소비주의와 자본주의가 틈입하기 시작하였고, 과거에는 위대한 이념을 수호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던 미국의 기술 산업은 오로지 돈만을 밝히며 소비자의 지갑을 여는 방향으로 퇴행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이나 인스타그램이 사용자들을 조금 더 편리하게 만든 것 말고 그보다 본질적으로 인간의 이성을 밝힌다거나 서구의 패권을 공고히 하는 데 도대체 어떠한 기여를 했느냐는 것이 카프의 의문이다. 그렇기에 요약하자면 카프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야욕을 드러내는 상황 속에서 미국의 기술 산업은 더 이상 소비자 친화적인 돈벌이에 천착하지 말고 공공과 긴밀히 협력하여 미국, 나아가 서구의 패권을 강화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사실 <기술공화국 선언>을 읽으면서 뒤로 갈수록 점점 힘이 빠지는 이유는 책의 모든 내용이 앞의 문장에 대한 반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동어반복 속에서 카프는 한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생략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왜 미국, 나아가 서구가 패권을 쥐어야 하는가?’이다. 변방지역에 대한 서구의 이념적 우월성은 너무나도 당연한 상식이기 때문에 카프는 굳이 논증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일까? 만약 미국과 서구의 선한 의도에 대해 불신을 갖고 있는 독자라면 카프가 오만한 파시스트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카프는 세계의 평화를 유지하려면 강력한 군사력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과거에는 핵폭탄이, 그리고 오늘날에는 AI 소프트웨어가 그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하지만 파시즘도 처음에는 공익을 내세우면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와 관련하여 기술 산업의 최전선에 있는 또 다른 인물인 샘 알트먼이 떠오른다. 오픈AI의 CEO이자 카프와 마찬가지로 미국 태생의 알트먼은 AI를 극한까지 발전시켜 세계의 부를 모조리 획득한 다음에 이를 적절하게 재분배하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하여 알트먼은 인류 전체에 봉사하려는 목적으로 설립된 오픈AI를 사실상 영리기업으로 전환시키기도 하였다. 따라서 부의 불평등에 대한 알트먼의 비판의식에 공감한다 할지라도 과연 알트먼이라는 인간을 신뢰할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미국과 서구가 AI 소프트웨어로 비인도적인 행위를 저지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듯이 알트먼이 AI로 부와 권력을 독점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시 카프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그나 알트먼이나 똑같이 위험한 인물이다. 이들은 둘 다 AI라는 절대반지를 손에 넣어 본인의 입맛대로 세계에 질서를 가져오려 한다. 이 지점에서 ‘팔란티어’라는 회사명이 <반지의 제왕>에서 따왔다는 사실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반지의 제왕>에서 절대반지는 세계를 손에 넣을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주지만 동시에 소유자를 욕망의 노예로 전락시킨다. 그리하여 절대반지는 파괴되어야만 하고, 실제로 그렇게 된다. 하지만 소설과 달리 카프나 알트먼은 절대반지를 손에 넣고도 그들이 욕망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렇다면 그 근거는 무엇일까? 없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그들의 선동에 쉽사리 동의하기 어려운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