レビュー
구준홍

구준홍

7 years ago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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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성의 사내

本 ・ 2011

平均 3.6

높은 성의 사나이(필립 K. 딕, 1962) @190721 대체역사소설이 취향에 맞아서 이전에 비명을 찾아서, 당신들의 조국 같은 책을 읽었는데 이 책이 해당 장르의 책 중에 대표작 격인 작품이라 읽어봤다. 세 책 모두 2차대전의 결말이 달라졌다면 역사가 어떻게 흘러왔을까? 를 가정하여 쓴 책인데,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이 앞서 읽었던 두 작품만큼 재미있지는 않았고 다만 이 책들의 원류가 되는 책이라는 점에서 영향력이 큰 책인 것 같다. 세 책 모두 2차대전을 시발점으로 역사를 갈라지게 만들지만 세부 설정과 소설 배경이 다 다르다. 비명을 찾아서(1987년작):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이 실패 ->부상만 입은 이토 히로부미가 대외적으로는 온건책을 펴고 대내적으로는 조선인에 대한 동화작업을 강화함 ->2차대전때 일본이 추축국에 가담하지 않고 미국과 동맹을 맺으면서 승전국이 됨(원자폭탄이 일본이 아니라 독일에 떨어짐) ->일본은 미국, 러시아 다음가는 세력으로 조선을 완전히 동화하고 만주국을 식민지로 삼음 ->작중 1987년 경성을 살아가는 조선인이 주인공 당신들의 조국(1992년작): 2차대전기 독일군의 암호체계를 바꿔서(현실에서는 암호체계가 털림) 독일군 잠수함들이 성공적으로 영국을 봉쇄함+스탈린그라드 전투 승리 ->독일의 유럽 러시아 정복(나머지는 시베리아로 도망감), 영국은 항복 후 괴뢰국화, 미국은 일본에 핵을 떨궈서 이기지만 독일과는 강화협정을 맺음 ->독일의 영토가 러시아까지 넓어짐, 스위스를 제외한 서+남유럽은 괴뢰국화, 시베리아 소련 잔당들의 게릴라와 싸우면서 미국과 냉전 시작 ->작중 1964년 베를린을 살아가는 독일인이 주인공 높은 성의 사나이(1962년작): 1933년 루즈벨트 대통령 암살(현실에서는 실패함) ->뉴딜이 없어서 미국 국력이 시원찮고 2차대전때 유럽에 개입하지 않아서 유럽 전체가 나치에 먹힘 ->미국은 진주만에 몰빵된 해군이 일본에 털리고 일본과 독일이 미국의 서쪽/동쪽을 나눠갖게됨(중부 지역에 중립지대 존재) ->전세계가 일본, 독일의 지배권역과 서로간의 중립지대로 바뀌고 냉전까지는 아니지만 미묘한 관계가 됨. 독일은 슬라브인과 흑인(아프리카 포함) 인종청소를 하고 달, 금성, 화성 개척을 시도함. ->작중 1960년대 일본 식민지 샌프란시스코, 또는 중립 지역 콜로라도에 사는 미국인들이 주인공(여러 인물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됨) 이런 식이다. 대충 보면 대체역사소설들이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있는 것이 보이는데, 1962년에 쓰여진 높은 성의 사나이가 후대 작품들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이런 작품들은 실제와 다른 세상을 그려내야하기 때문에 그 그려낸 세상과 대체역사를 얼마나 개연성, 사실감 있게 묘사했냐가 작품의 재미에 큰 영향을 준다. 당연히 현실 역사랑 다르게 만들다보니 개연성이 좀 떨어지는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이 작품같은 경우는 화성, 금성탐사를 한다거나 아프리카 전체를 인종학살을 했다거나 하는 식으로 좀 스케일 큰 대체역사를 제시해놓아서 사실감이 좀 떨어지는 감이 있었다. 또 하나 책을 읽으면서 어색했던 점은, 옛날 책이라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작중 일본이나 일본인에 대한 묘사가 좀 오리엔탈리즘적이었다는 거였다. 주인공이나 작중 등장하는 일본인들이 맨날 주역으로 점을 치고 있는데, 주역은 애초에 일본 책도 아닐 뿐더러 일본에는 예나 지금이나 주역으로 그렇게 점을 치는 문화가 없다고 한다. 작가가 주역으로 점 치는걸 좋아했다고.. 그 외에도 일본인들의 행동거지나 심리 묘사가 과장돼있다고 느껴졌다. 이렇게 새로운 세계상을 그려내는게 책의 주요한 목표겠지만, 이 책도 나름의 줄거리는 있다. 각각의 인물의 시점에 따라 이야기가 다르게 이어지는데, 하나는 옛날 미국 골동품을 일본인들에게 파는 상인과 이런 골동품을 위조하다가 나중에는 미국만의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악세사리를 만드려는 기술자 시점에서의 이야기이다. 이 사람들이 일본 치하 샌프란시스코에서 일본인들에게 굽실대면서 제품을 팔고, 일본인들에게 열등감도 느끼고, 그러다가 비굴함에서 벗어나 미국 고유의 예술성을 발견하려고 한다는 내용이다. 또 하나는 중립 지역에 사는 한 여성의 이야기인데(앞 이야기 기술자의 전처로 나온다. 작중에서 별로 연관은 없다), 소설 속 소설로 나오는 대체역사소설 '메뚜기 무겁게 가로눕다' 라는 책이 2차대전에서 연합국이 승리한 역사를 그려 중립 지역 및 일본 점령지에서 인기를 끌고(나치 점령지 동부에서는 금서로 지정됐다), 이 책의 작가를 만나러 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일본인에게 굽실거리는 미국인이라는 개념이 참 새롭게 다가오긴 했다. 다른 대체역사소설들에서는 그런 설정은 없었기 때문에 읽는 재미가 있었다. 출판 당시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됐고 미국 SF 소설 관련 상도 받았다고 한다. 지금 기준으론 후대 작품들보다 묘사력이 좀 떨어져보여도(작가 자체가 가난해서 다작을 했고 정신이 안정적인 사람이 아니라 아이디어로 승부했지 글빨로 승부하는 스타일은 아니라고 한다) 이 때는 2차대전 끝난지 20년도 안 됐을 때라 현지 사람들에게 훨씬 충격적이고 생생하게 다가왔을 것 같다. 별개로 이 책 한국어 번역이 영 좋지 않다. 특히 고유명사 번역들이 제멋대로다. 작중 내내 엄청 많이 나오는 주역만 하더라도 '역경'이랬다가 '주역'이랬다가 왔다갔다고, 독일인 이름 번역도 이상하게 된게 여럿 보였다. 소설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소재인 '메뚜기 무겁게 가로눕다' 라는 책 이름도 원제인 'The Grasshopper Lies Heavy' 를 그냥 직역했는데, 이 원제가 성경 구절에서 나온 말이라 제대로 번역하면 '메뚜기는 짐이 될 것이다' 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