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지구

길리아드
平均 3.2
죽음을 앞두고 7살 아들에게 남긴 목사 아버지의 편지가 이 소설의 전부다. 사랑하는 이로 말미암은 존재의 기쁨, 그것을 나는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읽는다. 당신이 나를 얼마나 기뻐하였는지. * 존 에임스 보턴의 존재로 인해 이 책을 기억하는 내 감상이 한층 다정해진 것을 느낀다. 그가 나의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혼자 뚜벅뚜벅 걷는 것처럼 쓸쓸한 그에게 하나님이 축복하시기를. 무엇보다 용기를 주시기를. “미루어 둔 소망도 여전히 소망”이니까. —— 다 좋지만,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네 존재야. 내게 있어 '존재'란 상상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비범한 것이란다. 이제 난 불멸하는 체 해야겠다. 한순간, 한 눈의 반짝임 속에서. 한 눈의 반짝임. 더할 나위 없이 멋진 표현이구나. 가끔 그것이 삶에서 최고의 것이란 생각이 든다. 무엇의 매력에 빠지거나 유머를 본 사람의 반짝임… ‘눈빛은 마음을 기쁘게 한다'고 했지. 그건 사실이란다. 네가 이 글을 읽는 동안 난 죽지 않는 존재가 되는 거고, 어쩌면 젊을 때의 힘 속에서 사랑하는 이들을 곁에 두고, 살아생전보다 더 살아있게 되겠지. 너는 조바심 내고 정신이 몽롱한 노인의 꿈들을 읽고, 나는 어떤 꿈보다도 근사한 빛 속에서 살지. 하지만 널 기다리지는 않겠다. 네가 물리적인 삶을 오래 누리기를, 네가 물리적인 세상을 사랑하기를 바라니까. 내가 이 세상을 몹시 그리워하지 않으리라고는 상상할 수가 없구나. pg.80 새벽이 오는 광경을 보는 게 참 좋았지만, 가끔은 밤이 끝나는 게 아쉽기도 했지. 밤에는 나무들이 다른 소리를 내고 냄새도 다르거든. 네가 나를 기억한다면, 지금 내가 하는 말 때문에 기억과 약간 다르다고 여길 것 같구나. 네가 어른으로서 날 볼 수 있다면, 내게서 황혼의 특징을 보게 되겠지. 네가 이 글을 읽으면서 이걸 알아주면 좋겠다. 나는 행복을 얻기 이전의 긴 밤에 대해 말하면서도 슬픔과 외로움보다는 평온과 위로를 기억한단다. 슬픔에는 위로가 없지 않고, 외로움에는 평온이 없지 않거든. 거의 그렇지. pg.103 엊저녁, 보턴은 평소처럼 오른쪽으로 누워 잤지. 주님의 품 안에서 잤을 거야. 내가 깨우면 그는 겟세마네로 돌아오겠지만. 그래서 잠든 그에게, 내가 대신 존을 축복해 줬다고 말했어. 아직도 존의 이마를 짚던 느낌이 그대로 남아 있다. 나는 “자네가 바라던 것처럼 난 존을 사랑하네”라고 말했지. 마침내 자네 기도가 응답을 받았네, 이 친구야. 내 기도도 마찬가지고. 우린 참 오래 기다렸군, 안 그런가? pg.326-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