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차 적멸을 깨우네

박동춘 · 歴史
38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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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사멸 위기에 처했던 우리 차 문화가 부흥하게 된 배경에는 초의 선사라는 거목이 자리 잡고 있다. 그의 다맥은 범해, 금명, 응송을 거쳐 현재 박동춘 선생에 이르고 있다. 초의 선사의 후인인 응송 스님으로부터 제다법과 차 이론을 배우고 '다도전게'를 받음으로써 '초의차' 5대째 계보를 이은 박동춘 선생은 지난 30여 년 동안 차를 만들고 차 이론을 연구하는 일에만 매진해왔다. 그러다 최근에 '우리나라 다도를 정립한 초의 선사'에 관한 박사 학위 논문을 탈고하고, 초의 선사와 인연이 있는 곳을 답사하며 자신의 다도 인생 30여 년을 둘러볼 기회를 가졌다. 은 그 여정의 결과물이다. 이 책은 '초의차'가 산사를 통해 전해져 내려온 만큼 대흥사, 칠불암, 쌍봉사, 학림암, 기림사 등 산사의 풍경이 주를 이루지만, 그 풍경을 채워 넣는 것은 다름 아닌 차(茶)와 시(詩)로 채색된 문화사 혹은 인연사다. 강진 다산초당에서 청년 시절의 초의에게 시학과 주역을 가르쳐준 다산 정약용과 평생 초의를 후원해준 다산의 아들들, 초의와 동갑내기로서 평생을 지기지우로 지내며 맑은 정신의 세계를 교감했던 추사 김정희, 절창의 시문으로 '초의차'의 웅대한 경지를 묘사했던 박영보와 신위, 황상 등 조선 후기 지식인들이 그 주인공이다. 차를 만드는 명인이자 차이론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외길 인생을 걸어온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그들이 중흥시킨 '차 문화'를 조형하며 한국 전통차의 향방을 되묻고, 옛 선인들이 그랬듯 탁마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다짐을 대중에게 처음으로 공개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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著者/訳者

目次

책을 내며 4 1부 길道 길 위에서 차의 의미와 수행자의 고뇌를 묻다 13 고향 삼향면과 출가지 운흥사, 40년 만에 옛 고향을 찾아 무상을 노래하다 23 궁벽한 땅 해남에서 어진 스승 다산을 만나다 35 대둔사와 월출산, 순연한 자연에서 깊은 선정에 들다 47 수락산 학림암, 불법 물으려 눈길 헤치고 온 젊은 추사와의 첫 만남 57 두 번째 상경과 용문사, 스승의 탑명 구하려 15년 만에 한양에 다시 올라 67 수종사, 백설 휘날리는 산사에서 절친한 벗들과 시를 읊다 77 기림사와 불국사, 불국은 차라리 얻기 쉽지만 추사와 정을 나눔이야 87 2부 만남緣 칠불암 서상수계의 비밀이 『다신전』으로 드러나다 101 장안의 명사들, ‘초의차’의 깊은 맛에 흠뻑 젖다 111 옹방강과 북학파 경화사족, 사대부의 덕목 123 황상의 「초의행」, 세상 그 어떤 차가 초의가 가려 만든 차만 하랴 133 운엄의 『운관축』, 사향 같은 스님의 정혜가 세상 곳곳 절로 퍼지네 143 필사 오류로 『동다행』이 『동다송』으로 바뀐 뒷이야기 155 남종화 대가 소치 허련, 초의가 싹틔운 재능이 추사를 만나 만개하다 165 금강산 유람과 ‘초의차’의 연원 175 제주 유배 길에 오른 추사, 스님과 차 마시던 옛 인연 잊지 못함이 한스럽습니다 185 산천 김명희의 「사차」, 원통 경지에서 덖은 차가 바라밀로 이끄네 197 한림처사 운암 김각, 초의가 석장을 짚고 만중산에서 찾아왔네 207 창암과 만소, 구름과 달 함께 있으니 맑은 바람 적멸을 깨우네 217 ‘초의차’를 사랑한 신위, 차의 맑고 향기로움에 말을 잊었네 227 초의와 추사의 정, 서로 애타게 그리워하고 존경한 지기지우 237 초의의 원력으로 조희룡 등 중인 계층에까지 차 문화 확산 247 초의와 다산가, 보내주신 차의 맑은 향이 폐부까지 스밉니다 257 초의와 추사의 편지들, 차 품평에서 선불교 담론까지 다양 267 초의의 추사 상청 조문, 벗이 세상을 떠나니 슬픔이 용란의 소리처럼 사무치네 277 3부 차茶 ‘초의차’의 원융한 세계, 선가의 차 문화에서 비롯 289 초의의 『동다송』, 고금의 서적 두루 섭렵해 우리 차 이론 정립 299 초의의 차 생활, 차는 물의 신이요 물은 차의 체이다 309 초의의 제다법, 일찍 따면 약성이 안 차고 늦게 따면 신묘함이 없다 319 글을 맺으며: 차의 고매한 가치 되살려 세상을 이롭게 했던 다성 329 인물 목록 339 도판 목록 373 작품 및 문헌 목록 381

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세계에서 가장 ‘맑은 차’라 불리는 우리 차는 조선 후기 초의 선사의 구도적 열정으로 완성되었다. 그 길을 박동춘 선생이 따라간다. 한국 차의 역사는 신라 말기 선종과 함께 유입되면서 시작되었고, 고려 시대에는 왕실과 사찰의 주도하에 송나라에 비견될 만큼 차 문화가 융성했다. 그러나 조선 시대로 들어오면서 통치 이념이 변화하고 배불 정책이 실시되면서 쇠퇴기에 이른다. 왕실의 무관심은 당연했고, 다만 음다(飮茶)의 이로움을 인식했던 소수의 문인이나 수행승 사이에서 명맥을 유지했던 것인데, 조선 후기 초의 선사라는 걸물에 의해 중흥기를 맞이하게 된다. 여기에는 그의 차원 높은 선다(禪茶) 정신과 투철한 장인 정신 외에도, 그의 차에 담긴 선미를 알아본 조선의 지식인들이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다. 초의 선사는 조선의 문예 부흥기인 정조 연간 1786년에 태어나 운흥사 벽봉에게 출가했고, 쌍봉사를 거쳐 대둔사로 수행처를 옮겨 완호에게 ‘초의’라는 법호를 받았다. 그가 수행과 함께 참구했던 차는 선종의 대표적인 선다(禪茶) 정신을 이은 것으로 조선 후기 쇠락했던 차 문화를 중흥시킨 토대가 되었다. 그가 인 식한 차는 단순한 마실거리가 아니라 정신적 가치를 내장한 수행 음료이자 나아가 수행 삼매로 이끄는 매개체였다. 그는 이러한 구도 정신을 담아 필생에 거쳐 ‘초의차’를 완성했으며, 그가 터득한 차의 실증적인 증험을 체계화한 ‘초의차’는 우리 차의 효능이 중국차보다 우수하다는 자신감을 드러내기에 충분할 만큼 ‘맑고 시원했다’. 추사 김정희는 ‘초의차’를 마신 후 “심폐가 시원하다”라고 평할 정도였다. 조선 후기 지식인들이 우리 차의 우수성을 인식하게 된 것도 바로 ‘초의차’를 통해서였으며, 이 명칭을 만든 주체도 바로 그들이었다. 즉 초의는 우리 차에 대해 애정과 관심을 가진 이들을 통하여 한국 차 문화를 중흥할 원동력을 얻었고, 그들은 ‘초의차’를 통하여 맑고 고결한 정신의 세계를 음미할 수 있었다. 초의의 후학이자 오늘날 그 차의 품격을 되살려내고 있는 박동춘 선생은 초의 선사의 고향인 전남 무안군 삼향을 기점으로 그가 거쳐 간 운흥사, 쌍봉사, 대흥사, 학림암 등을 잇는 길을 되짚으면서, 옛 다성(茶聖)이 남긴 정신과 인연의 흔적을 좇는다. 전라도의 땅끝 마을 한 산사의 초막에서 선차를 복원하고 우리 차의 기틀을 정립하기 위해 불철주야 탁마했던 한 선사의 삶이 이 후학의 여정위에 겹쳐지며 맑고 담박한 이중주를 들려준다. 보다 품격 높은 차를 완성하기 위해 이론과 실제를 겸비하며 평생 탐구의 길을 걸었던 초의 선사의 족적은 오늘날 이 길을 따르는 후학에게 ‘차란 무엇인가’라는 궁극적 화두를 내주며 오롯이 살아 있는 육성으로 존재한다. 다산, 추사, 초의의 호계삼소(虎溪三笑), 유불선의 회통으로 빚어진 초의차의 인문학 다산은 초의에게 시학과 주역 등 유학을 가르쳐준 스승이었다. 9년의 세월 동안 스승을 찾아 헤매던 초의에게 다산은 궁벽한 땅 해남에서 만난 어진 스승이었다. 그와의 만남으로 초의는 다산가의 아들들과 인연을 맺고 평생지기 추사 김정희를 만나게 된다. 어려서부터 청나라 문물에 밝고 화통했던 추사는 당시 천민 신분이었던 초의의 가치를 바로 알아보고 허물없이 교유 관계를 쌓아갔다. 신분도 다르고 이념도 달랐던 그들이 표면적으로 주고받은 것은 ‘차’와 ‘시’였다. 그러나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이들만이 보유한 차원 높은 정신의 세계가 때로는 언어로, 때로는 차향으로 서로를 강하게 진동시켰다. 또한 초의가 만든 차는 또한 유배지에서 신체의 고통에 시달리는 그들에게 ‘약’ 이상 가는 효능을 발휘했다. 겨우 목숨을 부지한 채 유배지 제주도로 떠난 추사는 「걸명시」를 지어 전하며 ‘초의차’를 부탁했다. 차를 통한 그들의 우정은 선 수행의 경지가 원만했던 추사의 인품이 높아지면서 그 결실도 더욱 빛나고 알차졌다. 추사의 선교(禪敎)에 대한 지대한 관심은 제주도 유배 시절 초의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확인된다. 초의가 북학파 경화사족 등 유학자들과 교유를 확대하는 데도 차와 시가 매개물이 되었다. 스승 완호의 탑명을 구하기 위해 두 번째 상경한 1980년, 그가 봉례품(奉禮品)으로 공여한 ‘초의차’가 당시 지식인들에게 차에 대한 관심을 애호를 확대하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시에 출중한 재능을 드러냈던 초의는 무애한 불교관이 함의된 선시를 통해 경화사족에게 다가갔다. ‘초의차’를 맛본 이들 가운데 사제지간이었던 박영보와 신위가 주고받은 「남다병서」와 「남다시병서」는 조선 후기 차 문화의 실정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문서다. 이들에 따르면 조선 시대에는 차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으며, 초의가 당대의 명사들에게 존경받은 이유가 시를 잘 지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전해준다. 도가의 양생술에 밝았던 운암 김각과의 인연도 빼놓을 수 없다. 1840년 제주도 적거지로 떠나는 추사가 초의의 일지암을 찾았을 당시 초의는 추사를 전별하기 위해 완도까지 따라나서고 <제주화북진도>를 그려 추사에게 주며 안타까운 마음을 달랬다. 불망지교를 나누던 벗이 영어의 몸이 되어버린 현실을 견디기 어려웠던 초의는 1842년 운암을 찾았고, 당대의 명필 이삼만과도 만나 시를 지으며 화운하고 차향을 나누며 삼매의 경지에 들었다. 초의의 ‘차’를 둘러싼 인연의 계보는 크게 보면 다산과 초의로 이어지는 종적인 만남, 초의와 추사 그리고 당대 문사들로 이어지는 횡적인 만남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이와 세대를 넘고 신분과 이념을 넘으며 유불선이 한데 만나는 이 교유의 네트워크는 고매한 정신의 세계를 공유하며 서로의 자긍심을 키워나갔던 한 국의 미학과 인문학 그 근원을 짐작하게 해준다. 이들의 교유에는 사람의 훈기가 있고 사람이 빚어내는 정신의 무늬가 있으며, 이는 단정한 시 절구를 통해 오롯이 드러난다. 산자수명(山紫水明), 다삼매(茶三昧), 우리 차는 다르다! 추사 김정희는 초의의 차를 ‘다삼매(茶三昧)’의 경지로 표현하며 그에게 ‘명선(茗禪)’이라는 호를 지어주고 글씨를 써서 보냈다. 즉 초의는 삼매의 경지에서, 맛이 있는 육안차(六安茶)나 약효가 좋은 몽정차(蒙頂茶)와 비견될 ‘초의차’를 완성했던 것이다. 차는 동자처럼 젊어지고 팔십 노인의 얼굴에 붉은 빛을 띠게 하는 신묘한 효능을 지녔다. 이런 차는 삼매의 경지에서만 만들어지는 진품이다. 따라서 심혈을 기울여 쓴 추사의 <명선>에는 초의에 대한 고마움과 ‘초의차’에 대한 경외심이 함께 담겨 있다. 박동춘 선생이 만드는 ‘동춘차’는 ‘초의차’의 계보를 잇는다. 그의 차는 고려대 고미술학과 변영섭 교수에 의하면 기운이 좋고 시원한 방향(芳香)이 나는 차, 녹황의 황금비례가 갖추어진 맑은 차다. 특히 그는 차를 우릴 때 열탕(熱湯)을 고집한다. 펄펄 끓인 물을 기포가 막 가라앉는 정도에서 뜨거운 채로 붓는 열탕 법은 그가 응송 스님에게 전수받은 전통이며 그 스스로도 체득하여 중시하는 비결이기도 하다. 이렇게 만들어진 차는 시종일관하여 담박(澹泊)하고 소쇄(瀟灑)하여 맑고 시원한 한국성을 지향한다. 산 높고 물 맑은 고요한 아침의 나라, 산자수명(山紫水明)한 풍토에서 형성된 한국적 ‘맑음’이 박동춘 선생의 차에 고여 있다. “제대로 만들지 않은 차를 마실 바에야 차라리 맹물이 낫다”고 말하는 박동춘 선생은 “한국의 제다란 찌는 방법과 볶는 방법의 중간을 절묘하게 잡아낸 것이다. 자부하건데 차의 차가운 기운 혹은 독성을 중화하면서 차의 효능을 드러내는 기술은 현재 한국, 중국, 일본 중에서 가장 정교하다”고 주장한다. 일본이 찻잎을 찌기만 하고 중국이 찻잎을 볶기만 한다면, 우리는 찻잎을 볶기도 하면서 뚜껑을 덮어 열기로 찌는 공정을 절묘하게 합쳐 차의 맛과 효능을 절정으로 드러내는 방법을 찾아냈다는 것. 더불어 펄펄 끓을 정도로 뜨거운 물, 즉 ‘열탕’에 우려 마시는 것이 한국의 전통 차 문화라고 전한다. 미지근한 물에 녹차를 우려 마시는 방법은 1970년대 후반 일본 유학생들이 차 보급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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