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세상은 왜 바뀌지 않는가?—5
1장 진보 또는 보수
‘백서’ vs ‘흑서’—15
2장 이익과 손해의 세계
남북단일팀과 가상화폐, ‘서초동 촛불’과 난민 —47
3장 팬덤 정치와 기술자들
속고, 속이는, 속고, 속이는 무한 반복—71
4장 빨갱이 서사와 친일파 딱지
반공과 반일의 정치학—99
5장 진보와 퇴행의 변주
미국의 민주주의—121
6장 한쪽으로 쏠리는 진자 운동
일본 정치가 보여주는 것—149
7장 진정한 변화의 힘
‘반대’가 이미 내포된 체제—177
8장 엘리트주의와 포퓰리즘
‘민주적 통제’는 무엇이었나—201
9장 시차적 관점
문재인 정권의 통치 패러다임—223
10장 체제에 어떻게 도전할 것인가
대안 모델들—249
나가는 글 어떠한 민주주의인 가?—279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
김민하 · 歴史/社会科学
28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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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똑같다…세상은 정말 바뀌지 않는 것일까? 흔쾌히 지지해서가 아니라 저쪽은 막아야겠기에 투표하는 한국 정치. ‘반대의 서사’에 갇힌 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민주주의. 매번 반복되며 지금 또한 마주하고 있는 현실 정치의 근본적 문제 그리고 대안을 담았다.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들 이야기한다. 2017년 현직 대통령을 탄핵했으며 어떤 이들은 이를 ‘촛불 혁명’이라고까지 했지만, 어느새 과거 통치 세력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겪는 이 답답함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정말 거대한 변화로 가는 첫걸음일까? 아니면, 변화의 적임자인 척하는 권력의 생색내기에 휘둘리고 있는 것일까? 실질적 변화를 위해 필요한 것은 단지 시간일까, 집권 세력의 교체일까? 누군가 말한 것처럼 ‘민주 정부 20년 집권’이 실현되어야만 세상이 바뀌는 것일까?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가 지금 확신하지 못하는 것은 단지 성급하거나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기 때문인가? 이 책은 이와 같은 물음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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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目次
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다 똑같다…세상은 정말 바뀌지 않는 것일까?
흔쾌히 지지해서가 아니라 저쪽은 막아야겠기에 투표하는 한국 정치
‘반대의 서사’에 갇힌 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민주주의
매번 반복되며 지금 또한 마주하고 있는 현실 정치의 근본적 문제 그리고 대안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들 이야기한다. 2017년 현직 대통령을 탄핵했으며 어떤 이들은 이를 ‘촛불 혁명’이라고까지 했지만, 어느새 과거 통치 세력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겪는 이 답답함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정말 거대한 변화로 가는 첫걸음일까? 아니면, 변화의 적임자인 척하는 권력의 생색내기에 휘둘리고 있는 것일까? 실질적 변화를 위해 필요한 것은 단지 시간일까, 집권 세력의 교체일까? 누군가 말한 것처럼 ‘민주 정부 20년 집권’이 실현되어야만 세상이 바뀌는 것일까?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가 지금 확신하지 못하는 것은 단지 성급하거나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기 때문인가? 이 책은 이와 같은 물음에서 출발한다.
반대를 위한 반대, ‘반대의 서사’?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여의도 정치의 핵심 언어들은 오로지 상대를 반대하는 것에 맞춰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과거 소위 ‘민주세력’과 자유주의 야당은 ‘보수정권이 독재를 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보수정당도 야당의 처지가 되자 ‘자유주의 정권이 독재를 한다’라며 자유민주주의를 지키자고 주장한다. 서로 독재라고 주장하지만, 각자 집권했을 때는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자기 파벌(진영)을 위해 손바닥 뒤집는 것에 불과한 정권교체 논리를 주장할 뿐이었다. 그 덕에 시스템은 유지되고 ‘있는 사람이 더 버는’ 세상도 바뀌지 않았다. 이 책의 제목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의 요체인 셈이다.
모든 정치 행위가 현 상태에 대한 반대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이러한 반대가 자기 정당화를 위한 집단적 기만에 머무는 데 있다. 반대는 사회적으로 대안을 도출하는 행위로 이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반대의 주장, 논리, 근거가 공론장에 퇴적돼야 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시스템에서 반대는 그저 반대로 끝나고 잊힌다. 상대를 반대하기 위해 동원한 논리가 ‘우리 편’을 겨누게 되면, 그 논리는 다시 반대의 대상이 된다. 양쪽에서 자리만 바꿔 공허한 반대만 반복하는 와중에 기존 사회 시스템은 그대로 유지된다. 시스템이 업데이트되어야 하는데 그냥 리셋되고 마는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이 민주주의라는 외피를 쓰고 진행된다고 책은 말한다.
현 정권만의 탓인가?
그럼에도 한국 정치에 참여하는 세력들이 그동안 주장해 온 철학, 노선, 가치 등에 의미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주장들을 왜 내세웠느냐는 점이다. 예컨대 문재인 정권의 ‘소득주도성장’을 보자. 소득주도성장이 정권 초기에 이미 흐지부지해져 버린 것을 상기해 보면, 애초에 소득주도성장을 이끌고자 하는 철학, 의지 그 자체가 존재했었다고 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소득주도성장은 왜 채택되었을까? 정권의 핵심 인사가 소득주도성장주의자여서?
“박근혜 정권의 ‘성장론’에 대한 반대의 맥락에서 등장했다고 봐야만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문재인 정권만의 특수성이 아니다. 모든 정권에서 이와 유사한 사례는 끊임없이 일어났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래서 단순히 현 정권이 국민을 속였다든지, ‘내로남불’이라든지 하는 비판으로는 문제의 핵심에 도달할 수가 없다. 정치적 의제가 국민 대중이 아닌, 오직 상대 정파, 세력에 대한 반대의 구실로만 동원되는 구조를 직시해야 한다고 책은 강조한다.
투표는 무용한가?
그렇다면 몇 년에 한 번씩 도래하는 선거와 투표는 무용한 것일까? 저자에 따르면 어느 경우든 투표는 중요하다. 다만 어떤 시스템에서의 투표인지,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오늘날 대의 민주주의 정치에서의 투표는 구매나 투자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정치인들도 자신을 상품에 비유하며 구매해달라거나 자기가 속한 세력에 투자해달라는 논리로 한 표를 호소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장 그 자체가 왜곡되면, 즉 오직 저질상품들만 있다면 소비자의 구매력도 힘을 잃는다. 즉, 구매나 투자로서의 투표는 유권자가 세상의 주인으로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단지 동원 수단에 불과하게 된다는 것이다. 현실 정치에는 주주총회조차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투표는 대중이 세상에 개입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기능해야 한다.
참여민주주의를 여러 방식으로 구현하려고 한 역사적 시도, 사레를 살펴보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책에서는 참여경제 모델의 하나인 ‘파레콘(Parecon)’,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리시(市)의 시민 자치 참여 등 다양한 사례들이 제시된다. 다만 지금까지의 참여민주주의적 시도가 모두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론적으로 완벽한 해법이라도 현실에 적용하면 반드시 곡절, 실패를 겪게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실패가 조금 더 나은 시스템을 위한 발판이 되도록 하는 데 있다. 대안이 실패했으므로 현상유지가 최선이라던가, 무용하다고 말하는 것이 해답이 될 수 없는 이유이다.
미국과 일본은 다른가?
선진국의 정치는 모범적인데 한국의 정치는 여전히 ‘후지다’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저자는 이 비판이 전적으로 맞는지 물으며 미국과 일본의 정치 사례를 역사적으로 비교·분석한다.
미국의 경우 현재 민주-공화당 양당체제의 기원과 과정을 살펴본다. 흔히들 민주당은 상대적으로 ‘진보적’이고 공화당은 ‘보수적’이라는 개념이 과연 타당한가를 꼼꼼히 따져본다. 도널드 트럼프라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탄생이 ‘별종’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 맥락에서 들여다보는 부분은 흥미롭다. 일본의 정치 역시 자민당의 정치 행보가 보수, 극우 일변도였는지, 민주당은 진보, 개혁적이었는지 묻는다. 저자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좌우로만 움직이는 진자운동에 빗대어 이를 설명한다.
이를 통해 한국 정치(역사)와 어떤 유사성을 가지는지 비교한다. 특히 한국과 이 두 국가는 정치제도로서의 대의민주주의, 경제 체제로서의 자본주의, 사회문화적 코드로서의 자유주의라는 근대의 핵심 가치들을 주고받으며 많은 영향을 끼쳤다. 즉 세계적 체제로서의 공통된 기반을 형성하고 있었다는 데 책은 주목한다.
양자택일밖에는 없는가?
“현실 정치의 참여는 대개 자신이 적대하는 상대 진영을 반대하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상대를 반대할 때에는 우리 편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보수정치를 적대하는 자유주의 정치든, 자유주의 정치를 적대하는 보수정치든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양당정치를 반대하는 제3세력 지지자에게도 같은 순간이 찾아올 수 있다. 이때 자기가 지지하는 정파의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 정치가 종교 비슷한 것이 될 우려가 있고, ‘다 똑같다’라며 참여 자체를 포기하면 정치적 냉소주의로 빠져들 수 있다. 이런 파국이 아니라 정치 참여의 정당성을 여전히 모색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참고가 될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특히 양당 모두를 반대하지만,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 퇴행적인 집단에도 가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양자택일의 논리에 둘러싸인 사람들에게 뭔가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자가 이 책을 쓴 가장 큰 이유이다.



이혜원
読書中
1 정치인에 이런저런 장점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지지하는 정치인이기 때문에 여러 장점의 존재가 증명된다는 것이다. 이런 세계관이 전제하는 것은 역시 '모두가 똑같다'라는 현실 인식이다.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이 정치적 이득을 위해 스스로가 주장했던 가치를 배신해도 '팬덤'이 용인하는 것은 애초에 정치인이 자기가 공언한 가치를 끝까지 지키는 정치란 불가능하고, 남는 것은 그 정치인이 얼마나 세속적으로 성공했는가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팬덤'의 첫 번째 결단, 즉 누구를 지지할지는 어떻게 결정되는 것일까? (중략) 어떤 정치인에 대한 '팬덤'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나'를 절대로 속일 수 없는 확정된 기준, 즉 부정할 수 없는 지지 요소가 있어야 한다. 대개 그것은 어떤 '피해'나 '손해'를 동반하는 물리적 차원의 것이다. 예컨대 '문재인 팬덤'에서 이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었다. 검찰과 결탁한 보수-기득권 정치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사망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검찰 및 보수-기득권 정치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대해야겠다는 결의가 '문재인 팬덤'을 구성하는 의미망의 중심이라고 볼 수 있다.(중략) 이러한 '팬덤 정치'의 반대편에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앞서 가치의 추구가 지지 대상의 유불리에 종속되는 게 '팬덤 정치'라고 했으므로, 그 반대편에는 유불리에 얽매이지 않고 타협 없이 가치를 추구하는 정치가 존재해야 할 것이다. 현실의 사례를 놓고 보면 영국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이나 미국의 버니 샌더스같은 류의 정치인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은 정치적으로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고집스럽게 원칙적 주장을 고수한 끝에 비주류로 전락했고, 말년에 가서야 잠시 빛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 정치 담론의 구도는 오히려 이런 원칙주의자들과 '팬덤 정치'를 똑같은 '극단주의'로 분류한다. 이 '극단주의'의 대척점에 있는 것은 정치적 실증주의를 신봉하는 '정치 기술자'들이다. 여기서 '정치 기술자'란 정치의 본질이 어떤 신념이나 열정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이런저런 조작에 있다고 믿는 부류의 사람들이다. 2 반면 트럼프는 후보 시절은 물론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도 온갖 거짓말과 협작을 아무렇지도 않게 동원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품격 있는 엘리트와 속물적 상인의 대립구도다. 정치에도 나름대로 지켜야 할 도가 있다는 매케인의 원칙주의적 태도에, <거래의 기술>이라는 책을 내기도 한 트럼프는 정치적 대회가 아닌 승리를 위한 '기술'만이 가치를 갖는다는 세계관으로 대항한 셈이다. 즉 트럼프가 2016년 실제로 대통령이 된 비결은 엘리트적 고상함을 사익을 추구하기 위한 '위선'으로 규정하고 이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로 일관한 데 있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런 점에서 트럼프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음모론자들은 '미국의 드루킹'쯤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실로 2016년부터 2020년까지의 미국 사회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트럼프식 세계관의 완벽한 승리였다.(중략) 그가 하류 계층에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지지자들이 계급적 위치가 아니라 이미지를 소비하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대중매체를 통해 보여준 자기중심적 화끈함이나 자기 잘못에 대한 기만적 정당화 등은 잘난 척하는 엘리트의 위선적 모습과는 다르게 느껴진다. 대중이 보기에 이것은 '꾸밈없는' 솔직함이다. 또한 트럼프는 특유의 과격성을 이유로 기성 정치로부터 조롱과 멸시, 배척을 당하면서 스스로 '피해자'를 자처한다. 비주류 정치에 포섭된 대중 역시 스스로 엘리트로부터 기만 당한 '피해자'로 믿는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이런 대목에서 트럼프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반엘리트주의가 피해자 서사를 통해 극우 포퓰리즘으로 수렴하는 것이다. 이 맥락 때문에 전통적인 인종주의 비판이나 성인지적 감수성을 향한 호소 등은 이들에게 별 효과가 없다. 효과가 있으려면 일단 자신들이 '다수'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데, 이들은 오히려 '핍박받는 소수'를 자처하며 '역차별'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중략) 21세기의 초입을 장식하는 극우 포퓰리즘은 대게 비슷한 모습이다. 이런 현실을 한탄하는 사람들은 극우 포퓰리스트를 지도자의 반열에 올려놓은 대중을 탓하기도 하고, 사람들의 피해 의식을 활용해 자기 목적을 달성한 포퓰리스트 지도자의 악마성을 공격하기도 한다. (중략) 정치를 통사적으로 파악한다면 결국 어떤 지도자를 만드는 것은 사회적 조건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트럼프가 아니었더라도 오늘날과 같은 시대였다면 비슷한 지도자가 탄생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리버럴' 평론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극우 포퓰리스트 지도자와 그 지지자들의 양식 없음을 탓하기만 해서는 문제의 핵심에 도달할 수 없다. 3 문재인 정권은 사회주의 계열 활동 이력은 별개로 놓더라도 김원봉이 독립운동에 기여했다는 사실 자체는 기릴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서훈 추서를 추진했다. (중략) 이에 대하여 정치권을 중심으로 반발이 커지자 국가보훈처가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했던 인물은 서훈 추서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재확인하면서 논란은 종결되었다. 그렇다면 정권이 애초에 쉽지 않고 정치적으로도 득이 되지 못할 일을 이렇게 추진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떠올릴 수 있는 것이 한일국교 정상화 이후 '반독재-반일', 즉 박정희에 대한 반대로 정체성을 확립하면서 좌익을 용인하게 된 장준하의 전례다. 문재인 정권은 자유주의 정치의 계승자로서 이 같은 움직임을 현재 이르러서도 이어나가려 했던 것이다. (중략) 한국 주류 정치는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반공'과 '반일'이라는 양대 축을 중심으로 한 의미망의 대결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작 자신들이 하겠다는 정치의 핵심을 적극적 방식으로는 설명하지 못하면서, 더 나아가서는 서로 모순되는 가치를 하나의 정치 세력 안에서 각자 주장하는 행태를 보이면서도 보수 정치의 지지자들이 '빨갱이' 서사를 거리낌 없이 쓰고 자율주의 정치의 지지자들이 보수 정치를 향해 '친일파'라는 딱지를 붙이는 현상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계속
노차라
5.0
1번이 싫어서 2번, 2번이 싫어서 1번(둘다 싫어서 3번 아니면 4번)의 방식만으로는 바뀌지 않는 문제들이 있음을 다른 나라와 역사의 관점에서도 잘 설명한 책입니다.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많은 분들이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보국
5.0
정치 흐름의 본질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정치에 관심 있다면 꼭 읽어보시길
재미없는 건 바로 포기
3.0
1장 중간에서 포기. . 현실 정치에서 한발 떨어진 평론일 줄 알았는데, 아니다. 관련 인물들 이름이 모두 등장한다. . 제목을 보고는 우리 정치 현실(감정, 싸움, 편가르기)를 주제로 비판할 것 같았는데, 그보단 개별 사안을 서술하는데 에너지를 쓰는 것 같다. . 33쪽 "이 서사에서 '운동권'들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모금을 했으면서 실제 피해자들을 위해서는 거의 한 푼도 쓰지 않 았다." 라는 문장에서 작가의 의도가 느껴져 포기한다. . 책을 집필할 당시에는 윤미향 전 의원의 재판이 진행 중이었으니 어디까지가 횡령인지 불분명하더라도, 거의 한 푼도 쓰지 않았다. 는 말은 너무 주관적인 표현인 것 같다. . 애초에 정치 비평에 중립이 없을 듯 하다. 이 책에서 중립을 기대한 것도 아니다. 헌데 자신의 주장에 현실을 끼워맞추기 위해 왜곡하는 느낌이 들어 중간에 포기한다. . 중도 포기의 가장 큰 이유는, 너무 밀접한 현실 정치 이야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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