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향해 온몸으로 써 내려간 시
끝과 시작을 관통하는 이채로운 모험
정제된 언어와 견고한 형식으로 주목받아온 신해욱의 네번째 시집 『무족영원』(문학과지성사, 2019)이 출간되었다. 인칭 없는 고백과 시제를 넘나드는 아이러니로 “신해욱의 웜홀”(시인 김소연)이라는 독특한 균열을 선보인 『생물성』(문학과지성사, 2009), “근원이라 할 만한 것에 나아가기 위한 안간힘”(시인 김사인)을 보여주었다는 평을 받은 『syzygy』(문학과지성사, 2014) 이후 5년 만의 신작이다.
이번 시집에서 신해욱은 지금껏 시도해온 ‘1인칭의 변신술’을 오롯이 체화하여 스스로를 “반원”(「π」)의 형상에 가둔다. 다리 없이, 앞을 내다보는 눈도 없이 땅속으로 깊이 파고드는 무족영원류가 되어 자신만의 웜홀을 통해 “세계의 심장”(「영구 인플레이션에서의 부드러운 탈출」)을 찾아 헤맨다. “채집자나 광부의 마음으로” 시를 쓴다는 한국문학번역원과의 최근 인터뷰에서처럼 심연의 “틈이란 틈을/샅샅이 더듬는 긴 여정”(「완전한 마모의 돌 찾기 대회」)을 감행하는 것이다. 그 끝에서 시인이 발굴하고자 하는 대상은 바로 ‘너’다. “수 세기를 건너뛰지 않으면 잡히지 않는 맥박”(「과자를 주지 않으면 울어버릴 거예요」)처럼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너와의 조우. 그러므로 『무족영원』은 ‘나’에 대한 탐구로 조금씩 ‘너’라는 타자를 꿈꾸게 된 시인이 비로소 실족(失足)이라는 투신의 자세로 써 내려간 과감하고 애틋한 고백이다.
나는 다 소용이 없었다
나는 전혀 무섭지 않았다
―「화훼파」 부분
“나는 단순해지려고 한다. 아름다워지려고 한다”
신해욱은 이번 시집을 하나의 무족영원류로 만들고자 한다. 그것은 뒤쪽에 위치해야 할 3부의 시편들이 1부를 앞질러 놓여 있는 형식이나 ‘시인의 말’을 반으로 나누어 책의 처음과 마지막을 연결시켜놓은 구성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머리와 꼬리를 구분하지 않으려는, 시작과 끝의 경계를 지우려는 시인의 노력은 “지구는 둥글고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았네”(「어디까지 어디부터」)라는 구절처럼 무한한 궤도의 원형을 추구한다. 그렇지만 시인은 자신이 불완전한 “반원에 갇혔다”(「π」)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그래서 다른 반쪽을 찾기 위해 반원의 형태로 전진한다. 마치 “열대에 서식하는 백여 종의 눈먼 생물”(「무족영원」)처럼 온몸으로 이 세계의 내부를 향해 파고든다.
구덩이를 만들고 있다. 서두르자. [……] 구덩이 옆에는 구덩이에서 파낸 흙더미. 흙더미의 흙은 말할 수 없이 곱다. 지렁이는 흙을 먹는대. 구덩이 안에는 구덩이의 모자란 깊이.
―「윤달이 온다」 부분
시인이 파 내려가는 “구덩이”의 이미지는 “단춧구멍”(「단춧구멍」), “열쇠 구멍”(「이렇게 추운 날에」), “햄릿구멍”(「햄릿상자」) 등으로 반복되어 나타난다. 이렇게 “벌어진 틈으로 미지의 액체가 콸콸 흘러”(「파훼」) 넘쳐 시인은 다리 없이도 미끄러지듯 나아갈 수 있다. 마치 자신의 시어처럼 단순하고 아름답게. 그렇지만 세계에 침투하여 너에게 닿으려는 노력은 좀처럼 성사되지 못한다.
“놓고 왔을 리가 없다 나는 뒤를 돌아본다”
시집에서 ‘너’는 언제나 찾아 헤매야 하는 대상으로 “만지면 묻어”(「마술피리」)나거나 “가장자리를 따라 덧나는”(「악천후」) 존재에 가깝다. 이따금씩 너는 “더할 나위 없는 내 자리에서”(「국립도서관의 영원한 밤」) 웃음을 짓기도, “나의 소설 속에서”(「웃지 않는 소설」) 자서전을 쓰는 존재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렇지만 내가 아닌 “그런 피조물의 삶은/도무지 추체험을 할 수가 없”(「레퀴엠」)으므로 시인은 어떠한 노력으로도 타자에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과 직면한다.
여름이 가고 있다 뭐였을까
뭐라도 하며 나는 그의 환심을 사고 싶었지만 같은 시간의 같은 사건 속에 우리가 엮일 수는 없었습니다
―「여름이 가고 있다」 부분
그럼에도 시인은 멈추지 않는다. 합일의 불가능성을 감수하면서 “틀리는 운명. 틀리는 방향./틀리는 만남. 다 틀렸어”(「과자를 주지 않으면 울어버릴 거예요」)라고 울먹이면서도 너를 찾아간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뒤를 돌아본다. 시인은 너를 “놓고 왔을 리가 없다”고 여기면서 “좋은 생각”을 하려고 애쓰면서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여름이 가고 있다」). 어쩌면 너는 먼 곳에서 찾아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내가 떠나온 자리로 돌아가야 만날 수 있는 대상이 아닐까. 웜홀을 통해 과거로 여행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론처럼, 신해욱은 시집의 말미에 이르러 우리가 다시금 처음을 돌아보도록 이끈다. 그러므로 『무족영원』을 읽는 일은 내가 아닌 다른 존재, 그것도 무족영원류가 되어보는 특별한 체험이자 신해욱의 웜홀을 통해 무한히 거듭해보는 사랑의 회고일 것이다.
흰머리수리부엉이
4.0
신해욱은 한국 시단의 광부다
임영빈
2.5
내가 신해욱을 좋아하는 까닭은 정제된 형식 속의 신중함과 깊이가 풍성히 느껴지기 때문인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형식적 측면에선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개별 시가 책으로 묶이면서 가지게 되는 방향성이나 힘 같은 게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함부로 이런 말을 하면 안 되겠지만 매너리즘이 느껴지는 구절이 많았달까. 가뜩이나 빈 공간이 많아 한 줄 한 줄이 명료한 신해욱의 시에서 한 단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무시할 수 없으므로 배치나 행갈이 하나도 신중히 곱씹는 편이라 그런지 이번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곳곳에 등장한 '요정'도 무언갈 묶어주는 느낌은 아니었다. 나중에 읽으면 다른 시집도 꽤 있었으니까 숙성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는데 우선은 영 아니다. 나중에도 아닐 것 같고.
김상아
나는 단순해지려고 한다. 아름다워지려고 한다
들숨
3.5
구멍을 들여다보다가 아득한 한계를 지나면 요정에게서 세계의 심장을 건네받을지도 모른다. 만물의 난반사로 눈이 먼 뒤에야 마침내 추체험이 가능할지도.
라쨔
2.0
무슨말인지모르겠떠염
kiiiwiii
5.0
신해욱의 시는 나에게 연인
이건엽
3.0
다른 신해욱의 시집은 읽을수록 좋아지는 시가 많은 반면 이번 시집은 한번에 확확 꽂히는 시가 몇 편 있었음. 반면 그렇지 않은 시도 많았음... 남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
조은
3.5
신해욱 시인의 시는 다 좋은것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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