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평화의 상징이 바뀌었다. 비둘기가 아닌 평양냉면이다.”
지난 4월 남북정상회담 직후 외신이 보도한 국내 내티즌들의 반응이다. 아직은 우여곡절이 있어 보이지만 판문점 냉면 만찬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장밋빛 평화 무드는 계속되고 있다. 역사의 물줄기를 돌려놓은 그 어떤 드라마틱한 순간에도 한 가지 음식이 이처럼 세계인의 괌심을 끈 적은 없을 것이다. 4·27 남북정상회담의 주인공은 단연 평양냉면이었다.
냉면이 갑자기 화제의 중심에 선 것은 왜일까? 단순히 역사적인 만찬의 주메뉴였기 때문일까? 냉면은 그 같은 소임을 맡을 만한 문화적 자산과 스토리텔링을 지니고 있다. 우리 음식 문화 가운데 스토리텔링이 가장 풍부한 소울 푸드는 단연 냉면이다.
냉면은 드물게 예술적 완성도가 높은 음식이기도 하다. 꾸미와 고명을 얹은 채 웅숭깊은 냉면 국물 속에 똬리를 튼 면발의 모습은 하나의 예술이다. 공력이 많이 가는 음식임에도 서민이고 양반이고 궁중에서고 두루 즐겼다. 또한 본시 겨울 음식이었던 냉면의 문화 속에는 한겨울의 추위를 이겨내던 역설의 지혜가 담겨 있다.
냉면은 왜 특별한가
냉면은 오랜 역사를 자랑할 뿐 아니라 우리 음식 가운데 가장 먼저 상업화된 음식이다. 18세기 후반의 평양 모습을 그린 〈기성전도箕城全圖〉(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일반 서적 가운데는 이 책에서 최초로 수록 소개) 속에는 흥미롭게도 ‘냉면가冷麵家’가 표기되어 있다. 19세기 초 순조 임금은 냉면을 궁궐 밖에서 테이크아웃해 오게 했다. 평양을 중심으로 한 관서 지방에서 시작된 냉면집은 3차례에 걸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19세기, 20세기초, 그리고 6·25 전쟁기다.
냉면은 오래전부터 식도락가들의 미각을 즐겁게 해준 독특한 음식이다. 그 기록은 이 책 속에 담겨 있다. 다소의 부침은 있었을지언정, 냉면은 많은 사람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평뽕족’이라는 마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다. 냉면 마니아들에게 냉면이란 단연 평양냉면이다.
진정한 평뽕족이 되는 길: 평양냉면의 역사를 꿰뚫는 일부터
이 책은 평양냉면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1부는 김소저와 김남천의 글로 대표되는 평양냉면을 예찬하고 자부심이 묻어나는 글이다. 2부에서는 냉면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냉면이 등장하는 최초의 옛 기록에서부터 최근까지의 글을 통해 냉면이 어떻게 탄생하고 이어져왔는지를 살핀다. 3부는 냉면을 다룬 문학작품을 모았다. 눈길이 가는 것은 1917년에 발표된 유종석의 〈냉면 한 그릇〉이다. 일부 근대문학전집 속에 들어 있다 해도, 음식사 연구에서는 그 존재조차 모르다시피 하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 4부는 일제강점기부터 오늘에 이르는 평양냉면 기행이다. 냉면에 관해 수집할 수 있는 역사적인 이미지를 한데 수집해 보여주는 것도 이 책의 미덕이다. 특히 일제강점기 냉면배달부인 중노미들의 곡예 부리듯한 배달 모습을 담아낸 나혜석과 안석영의 드로잉은 당시 얼마나 냉면 배달이 성업하였는지,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우리 음식 배달문화의 뿌리가 어디인지를 보여준다. 사람이 압출기 위에 거꾸로 매달려 면을 뽑는 모습을 그린 조선 후기의 그림 2점도 눈길을 끈다.
‘평뽕족’들은 '평부심'(평양냉면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면스플레인’(냉면에 대해 가르치려고 하는 자세)을 즐긴다. 이 책은 평뽕족 입문자에서 평양냉면의 역사까지 꿰뚫는 진정한 ‘평뽕족’으로 가는 데 더없이 유익한 책이다. 1차 자료를 중심으로 하면서 그 출처를 명확히 해두었기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의 논쟁점을 정리하는 데도 도움을 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평양냉면을 새롭게 발견하기 시작하였다. 버킷리스트에 ‘평양 가서 냉면 먹기’를 적어두었다면 냉면이 왜 우리의 소울푸드이며,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되었는지 조용히 음미해 볼 일이다.
책을 펴내며
우리 음식 문화 가운데 소울 푸드를 하나만 들라 하면 주저 없이 냉면을 꼽겠다. 냉면은 우리 음식사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무엇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천여 년의 역사를 꼽는 연구자들도 있다.
냉면은 우리 음식 가운데 가장 예술적 완성도가 높은 음식이다. 꾸미와 고명을 얹은 채 웅숭깊은 냉면 국물 속에 똬리를 튼 면발의 모습은 하나의 예술이다. 본디 국수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냉면은 국수보다 더한 공력을 필요로 한다. 형언할 수 없는 수고로움을 딛고서야 마침내 냉면 한 그릇의 소중함은 의미를 얻는다.
시인 백석은 ‘겨울밤 쩡하니 익은 동치밋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는 ‘희스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이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사리워’ 온다고 노래했다. 이토록 공력이 많이 가는 음식을 서민이고 양반이고, 궁중에서고 두루 즐겼다.
냉면은 본시 겨울 음식이었다. ‘함박눈이 더벅더벅 내릴 때 ‘꽁꽁 언 김치 죽을 뚜르고 살얼음이 뜬 진장김칫국에’ 만 냉면을 ‘풀어 먹고 우르르 떨려서 온돌방 아랫목으로 가는’ 정경이 지금이야 낯설 수밖에 없지만, ‘혀를 울리는 쩌르르한’ 냉기로 한겨울의 추위를 이겨내던 역설의 지혜가 냉면의 문화 속에는 담겨 있는 것이다.
18세기 후반의 평양 모습을 그린 〈기성전도〉 속에는 매우 흥미로운 글귀가 보인다. 다름 아닌 ‘냉면가’ 표기다. 대동문, 부벽루 등의 명승지와 함께 냉면집이 뚜렷이 표시되어 있다. 같은 시기에 평양을 여행한 실학자 유득공은 가을이면 평양의 ‘냉면과 돼지 수육 값이 오르기 시작한다’고 적었다. 그만큼 냉면이 널리 유행하였고, 겨울에 즐겨 먹었음을 알 수 있다. 19세기 초 순조 임금은 냉면을 궁궐 밖에서 테이크아웃해 오게 했다.
냉면이 우리 음식 가운데 가장 먼저 상업화된 음식임을 알 수 있다. 냉면집은 평양에 제일 먼저 들어서고, 이어 서울로 진출하였다. 평양을 중심으로 한 관서 지방에서 시작된 냉면집은 서서히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도시화가 촉진됨에 따라 1910년대 후반 무렵 평양에는 큰 규모의 냉면 거리가 형성되었다. 더불어 다시 한 번 평양냉면은 경성을 비롯한 다른 지역으로 진군해 가기 시작한다.
우리나라는 배달 음식의 천국이라 일컬어진다. 그 뿌리는 20세기 초반 평양과 경성에 들어선 냉면집이었다. 중머리라 불린 냉면 배달부들이 한 손에 배달 음식이 담긴 큰 목판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곡예하듯 자전거를 운전하는 이색적인 모습은 나혜석과 안석영의 드로잉으로 남아 있다.
수천 년, 수백 년을 이어온 음식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담겨 있다. 음식은 곧 그 문화를 배태해 낸 민족의 삶과 문화의 젖줄이다. 우리의 혼이 깃든 음식이자 가장 오랫동안 밥상의 주인공이었던 밥이나 김치는 다른 음식과 어우러져야 비로소 빛을 발한다. 밥은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먹는 음식이다. 또 아무리 우리 문화의 정수를 담고 있다 할지라도 김치만으로 끼니를 해결할 수는 없다.
냉면은 주식의 대용이 되면서도 즐거움을 주는 음식이다. 냉면이 오래전부터 식도락가들의 미각을 즐겁게 해주었음은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다소의 부침은 있었을지언정, 냉면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삼십대 젊은 층에도 냉면 마니아들이 적지 않다.
냉면 마니아들에게 냉면이란 단연 평양냉면이다. 평양냉면 마니아들은 스스로를 '평뽕족’(‘평뽕’이란 평양냉면의 중독성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부르며, 냉면집 순례를 멈추지 않는다.
이들에게 새로운 도전이 주어졌다. 지난 4월의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만찬장에 등장한 옥류관 냉면 때문이다. 거무스름한 면의 빛깔과 다진 양념을 보고 아연실색한 평뽕족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자연스레 ‘정통’ 논쟁이 불붙게 되었다. 남한의 평양냉면집들이 평양냉면의 전통을 지켜오고 있으며, 북한의 평양냉면은 그 원형을 상실했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