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09
2부 103
옮긴이의 말 257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 小説
26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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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 좀 들어봐>, <플로베르의 앵무새>의 작가 줄리언 반스의 장편소설로, 2011년 맨부커상 수상작이다. 「인디펜던트」, 「타임스」 등 영미권 주요 매체들과 평론가들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소개하면서 기억과 윤리의 '심리 스릴러'라는 말을 썼다. 원서로 150페이지 남짓한 이 길지 않은 소설이 독자를 몰아치는 힘과 서스펜스, 섬세하고 정교한 구성력 때문이다. 또한 평론가와 저널리스트들은 소설적 완성도와 비극적 테마가 주는 무게로 따질 때, 반스의 이 최신작이 비슷한 길이의 노벨라(경장편)인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에 필적하는 작품이라고 말한다. 불완전하고 믿을 수 없는 1인칭 화자의 시점에 의존하여 인간의 기억과 시점의 왜곡을 탐색하고, 마침내 진실이 모습을 드러낼 때 묵직한 울림을 전한다는 점에서다. 이 작품의 테마인 '왜곡된 기억'은 줄리언 반스가 논픽션인 <두려워할 것은 없다>에서 철학자인 자신의 형 조너선 반스와의 쉽지 않은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다루었던 주제이기도 하다. 역사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교사의 질문에 에이드리언이 (작가가 만들어낸 소설 속 허구의 역사학자인) 라그랑주를 인용해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라고 대답하는 지점에서 작가의 성찰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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著者/訳者
レビュー
400+目次
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2011 영연방 최고의 문학상
맨부커상 수상작!
영국 문학의 제왕 줄리언 반스 최신작!
타임스, 가디언, 텔레그래프, 영미 아마존, 인디펜던트,
옵서버, 헤럴드 등 주요 23개 매체 선정 ‘올해의 책’
심장을 도려내는 서늘한 통찰력과 지적인 위트가 교차하는
영문학의 찬란한 걸작!
첩보전을 방불케 한 2011년 맨부커상 최종심사
과연 영국 문단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나?
“카펫에 흘린 피 같은 건 일절 없었다. 씩씩거리며 자리를 뜬 사람도 없었다.
우리 모두 친구가 되었고, 결과에 만족했다.”
_스텔라 리밍턴(맨부커상 심사위원장. 소설가. 전 MI5[영국국내첩보부] 국장)
2011년 10월 18일 저녁, 전 영국인들의 눈과 귀는 한 곳에 모였다. 영연방 최고문학상인 맨부커상이 발표되는 순간이었다. 수상자는 영국 소설의 제왕이라 할 수 있는 소설가 줄리언 반스의 최신작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그와 함께, 맨부커 상을 둘러싸고 일었던 2011년 영국 문단의 온갖 잡음도 일거에 사라지다시피 했다. 대체 2011년 부커상을 둘러싸고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일은 2011년 9월, 맨부커상 심사위원장인 소설가이자 전직 MI5 국장인 스텔라 리밍턴이 13편의 예심작 중 6편의 본선작을 추려 발표하면서, 올해의 심사기준을 ‘가독성Readability’에 두었다고 밝히며 시작되었다. 리밍턴은 “우리는 즐길 수 있는 책, 읽힐 수 있는 책을 찾고 있다. 우리는 독자들이 이 책들을 사서 직접 읽기를 바란다. 사지는 않고 그냥 숭배하는 게 아니라”라고 덧붙였다.
그러자 일군의 작가들과 평론가, 문학 에이전트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났다. 전년도 심사위원장이자 시인인 앤드루 모션은 올해 심사위원들이 문학을 ‘단순화’했고, “고급문학과 가독성 있는 책이라는 가짜 경계를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소설가 저넷 윈터슨은 <가디언> 지의 칼럼에 “일상의 재미를 위해 존재하는 재미난 읽을거리들은 많다. 그러나 그것들을 문학이라 할 수는 없다. (그것이 문학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의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과연 작가의 언어적 역량이 독자의 사고와 감각을 넓힐 수 있는가’ 하는 것.”이라는 글을 실었다. 이 논란은 한동안 가라앉지 않았고, 심지어 영미의 몇몇 소설가와 문학 에이전트 등이 모여 새로운 문학상 제정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한편,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소설가인 그레이엄 조이스는 “‘문학이 사람들이 희망하는 것을 바꾸게 하려면, 먼저 높은 산에서 내려와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야 할 것”이라고 응수했고, 후원사인 부커 사의 문학상 감독관 아이언 트레윈은 “재정 당시(1969년)부터 지금까지 모토는 하나다. ‘심사위원들의 눈으로 보았을 때 최고의 작품을 뽑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모든 잡음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가 수상작으로 선정되면서 가라앉았다. <가디언> 지의 기자 마크 브라운은 “반스의 소설이 뛰어난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는 비판가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의 수상에 이견이 없음을 밝혔다.
우파인 <텔레그래프> 역시 좌파인 <가디언> 지와 의견을 같이했다. <텔레그래프>의 기자 애니타 싱은 “심사위원들이 본심을 시작한 지 단 31분 만에 전원 일치로 수상작을 선정하는 데 합의를 보았”음을 알렸고, 2011년 맨부커상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이자 <텔레그래프> 출판부 수석기자인 게비 우
드는 지면을 통해 “반스에게 상이 돌아간 데 대해 크나큰 기쁨을 느끼고, 이 순간이 영국 문학사에서 기념비적인 순간이 될 것임을 말할 수 있어 기쁘다”고 밝혔다.
세 번 고배를 마신 무관의 제왕, 드디어 등극하다
“2011년은 필립 로스와 줄리언 반스의 해다.”
_클레어 아미스테드(<가디언> 지 문학에디터)
줄리언 반스의 수상은 작가 자신에게도 남다른 의미이다. 그는 28년 전인 1984년에 『플로베르의 앵무새』로 후보에 올랐으나, 아니타 브루크너의 『호텔 뒤 라크』에 밀려 수상하지 못했고, 1998년의 『잉글랜드, 잉글랜드』로 두 번째에 올랐으나 이번에는 이언 매큐언의 『암스테르담』 때문에 고배를 마셨다. 『아서와 조지』로 세 번째 후보에 오른 2005년에는 존 밴빌의 『그래서 신들은 바다로 갔다』와 경합하였으나, 이때도 실패로 돌아갔다. 가디언 지의 클레어 아미스테드는 ‘내가 보기에 (반스가 세번째 부커상 후보에 올랐던) 그날의 시상식장에서 줄리언 반스만큼 긴장한 사람은 없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유럽의 주요 문학상과 훈장 등을 휩쓸다시피 한, 영국을 대표하는 소설가이면서도 정작 영문학을 대표하는 상에서만은 무관의 제왕이었던 작가 자신도 그간 쓰디쓴 심경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수상하기 전, 부커상을 ‘호화로운 빙고게임’이라 비꼬기도 했다. 그리고 드디어 네 번째 후보에 올라 수상하던 날, 그는 다음과 같이 소감을 밝혔다. “그렇다, 후보에 오르는 것이 네 번째였기 때문에 사실 한시름 놓았다. 무덤에 들어간 뒤에 베릴 상을 받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또한 그는 수상 연설에서 자신과 비슷하게 노벨문학상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던 위대한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언급하기도 했다. “왜 당신이 상을 받지 못하는 것 같으냐는 질문에 보르헤스는 대답하곤 했다. ‘세상 어딘가에 나의 수상을 막기 위해 결성된 가내수공업단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세월 동안, 간간이 약간의 망상이 도질 때마다 나 역시 어딘가에 그 비슷한 사악한 조직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버릴 수 없었다.”
당신이 예감했으나 감히 받아들이지 못했던 이야기의 결말이 다가온다!
결국 기억하게 되는 것은, 실제로 본 것과 언제나
똑같지는 않은 법이다. _본문 11쪽
소설은 1960년대, 고등학교에서 만난 네 소년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1인칭 화자인 주인공 토니 웹스터와 그의 패거리 친구 앨릭스, 콜린, 그리고 총명하며 지적인 전학생 에이드리언 핀. 세 소년은 그를 선망하고, 학교의 모든 교사들은 낭중지추와도 같은 에이드리언의 탁월한 지적 능력과 독특한 시각을 눈여겨보고 그를 아낀다.
토니는 브리스틀 대학에, 에이드리언은 장학생으로 케임브리지에 진학한다. 각종 소요와 문화운동, 성적해방으로 들썩이던 60년대 말. 그러나 아직 그 기운은 당시 대학생이던 이들 사이에까지 미치지 못했다. 데이트는 여전히 구식이었고, 여자친구는 결혼과 미래가 약속되기 전까지 몸을 허락하지 않았다. 베로니카라는 여자친구와 사귀게 된 토니는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가 계급적 격차를 느끼고 위축된다. 그리고 베로니카의 어머니로부터 “그녀에게 너무 많은 걸 내주지 마”라는 묘한 암시 섞인 충고를 듣는다.
성적 불만과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한 토니와 베로니카는 결국 헤어지고, 어느 날 베로니카와 사귀게 되었다는 에이드리언의 편지 한 통이 토니에게 날아온다. 토니는 두 사람의 관계를 용인한다는 내용의 짧은 편지를 보내고 그 일을 잊었다고 믿지만, 사실 편지는 그 한 통뿐만이 아니었다. 미국으로 장기간 여행을 다녀온 뒤, 토니는 친구로부터 에이드리언이 동맥을 그어 자살했다는 소식을 전해듣는다.
40년의 세월이 흐르고, 이제 육십대가 된 토니 앞으로 난데없이 한 통의 유언장이 날아든다. 베로니카의 어머니인 사라 포드 부인이 그에게 오백 파운드의 돈과 함께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을 유품으로 남긴 것이다. 그러나 에이드리언의 일기는 현재 베로니카가 가지고 있고, 그녀는 그것을 토니에게 내주려 하지 않는다. 대체 왜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을 포드 부인이 갖게 되었으며, 그녀는 왜 그것을 토니에게 남긴 것일까? 그리고 베로니카가 ‘피 묻



이고호
5.0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입니다."
권혜정
5.0
기억은 언제나 왜곡되고, 우리는 자신의 틀에 갖혀 세계를 이해한다. 소크라테스가 너의 무지를 알라고 했던 말을 이 소설을 통해 온전히 체험했다. @이동진의빨간책방 27-28회
샌드
4.0
두 번 읽게 되어 총 300장의 책이라는 누군가의 말씀이 정답인 듯합니다. 다시 한번 더 읽었을 때의 느낌은 처음 읽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감상이였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흥미진진하지만 그 끝은 이를 뛰어넘을 정도로 상당히 강렬합니다.
조종인
4.0
기억은 어떻게 왜곡되는가, 그리고 우리가 잊어버린 것들은 얼마나 무책임하게 작용할 수 있는가.
신애필
4.0
소설은 토니의 부정확한 기억(1부)과 불충분한 문서(2부)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자기기만 혹은 회고록)에 관한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을 제외하고 이 작품을 논하긴 힘들다. 기억에는 필연적으로 망각이 뒤따른다. 영화 한 편을 본다고 치자. 아무리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한들 시작부터 끝까지 인물들의 대사, 미장센, 카메라 숏 하나하나를 전부 기억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다만 우리는 인상 깊었던 몇 장면만을 뇌에서 편집해서 기억할 뿐이다. 즉, 무언가를 기억한다는 건 무언가를 망각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소설의 주인공 토니 역시 과거에 자신이 베로니카에게 퍼부었던 악담은 까맣게 잊어버린다. 40년 만에 베로니카와 재회한 토니는 그녀의 심정은 안중에도 없고 그저 철없는 몽상에 빠져있다. 베로니카는 토니에게 말한다. “전혀 감을 못잡네.” 그렇다. 제목과는 달리 소설은 전혀 감을 잡지 못하는 남자에 관한 이야기다. 감을 못 잡는 건 토니뿐만이 아니다. 토니의 시점에서 서술된 소설을 다 읽고 난 독자의 머릿속 역시 모호함과 불확실성이 지배적이다. 롭슨과 에이드리언이 왜 자살했는지, 사라는 토니에게 어떤 의미로 딸에게 모든 것을 내주지 말라고 말했는지, 그리고 토니에게 왜 그런 유언을 남겼는지,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엔 무엇이 적혀있는지 끝끝내 어떤 것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는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실은 ‘뭔가 일어났다는 것 뿐’이다. 바꿔 말하면 뭔가 일어났다는 사실 외에는 주관적인 이야기라는 말이 된다. 토니의 이야기가 그 증거다. 토니는 1부에 걸쳐서 자신의 과거를―현재의 정신 상태를 근거로 판단 혹은―회상하지만 2부에선 그 모든 것들이 토니가 스스로 미화시킨 기억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렇다면 토니의 기억이 잘못되었다고 일깨워주는 베로니카의 주장은 전적으로 옳은 것일까? 나는 그녀에게도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냉정하게 말해서 토니에게는 직접적인(법적인) 책임이 없다. 토니는 감정에 휩쓸려서 악담을 퍼부었던 것뿐이고, 실제로 행동한 사람은 에이드리언과 사라, 두 사람이다. 그러나 베로니카의 기억도 100% 틀렸다고 단언 할 수는 없다. 그녀가 토니를 전적으로 원망하기엔 무리가 있을지 몰라도, 토니가 그들에게 저주를 퍼부었던 건 사실이니까. 토니도 베로니카도 100% 틀린 게 아니라면 누구의 말을 신뢰해야 할까. 사실 그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토니가 처음으로 사실과 마주한 순간 그가 느낀 감정은 회한이다. 그리고 회한 뒤에 찾아온 건 더 큰 혼란이다. 바꿔 말하면 그는 전혀 감을 잡지 못할 때 오히려 명확한 삶의 자세를 유지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억이 아닌 망각에 초점을 두고 작품을 감상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억은 주관적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유리한 쪽으로 기억을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묘히 가지를 쳐낸다. 그러나 기억을 신뢰하고 말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건 인간은 기억을 윤색하지 않고는 존속하기 힘든 존재라는 거다. 이 사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다. <올드보이>에선 모든 진실을 알게 된 오대수가 최면술사에게 자신의 기억을 지워달라고 부탁한다. 기억을 지우는 데 실패했는지 성공했는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건 오대수가 스스로 망각하기를 자처했다는 점이다. 오대수와는 달리 토니는 그저 그 순간 느끼는 깊은 회한에 대해 서술한다. 사실을 알게 되어도 상황이 더 이상 나아질 수 없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데서 오는 회한과 무력감을. 사실 이 작품의 주된 정서는 망각보다는 회한에 가깝다. 하지만 내가 끝끝내 회한하기를 거부하고 망각에 쟁점을 두었던 건 나라는 사람이 시간의 지배를 받기 때문일 것이다. 나뿐만이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시간 속에 살고 있다. 우리는 시간을 통해 기억을 측량하지만, 시간은 유동적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인간을 제한하고 규정한다. 그렇기에 코앞에서 벌어지는 역사는 가장 분명한 동시에 가장 가변적이다. 인류가 시간을 지배하지 않는 한, 망각하고 자기기만에 빠지는 행위는 어쩌면 인간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미화시킨 끝에 회한과 혼란을 느꼈던 토니처럼. 토니는 역사를 두 번 규정한다. 젊었을 땐 ‘승자들의 거짓말’로, 노인이 되어서는 ‘승자도 패자도 아닌 살아남은 이들의 회고록’으로. 나는 여전히 하나로 규정하기 힘들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가, 우리의 기억이 가변적인 거라면, 그래서 ‘뭔가 일어났다는 것’ 말고는 설명할 재간이 없다면 ‘history’라는 말은 ‘his story’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
강중경
4.0
"각자의 기억은 그의 사적인 문학이다." 나는 그동안 한줌도 안되는 추억으로 얼마나 많은 해피엔딩 소설을 써내려왔는지 곱씹어보았다. 등단해도 되겠다 싶었다... 읽자마자 다시 읽어봐도 좋을 책일 것 같다. 아니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작품이다.
Movie is my Life
3.5
무엇을 예상하든 그걸 뛰어넘는 충격적인 결말. 마지막 책장을 넘기는 순간 다시 처음부터 읽게된다는 말이 진짜였다.
제이달
5.0
사람은 자기가 믿고 싶은것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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