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장 폴 사르트르
14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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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 이후 고전적 휴머니즘을 주제로 한 반성적 논의가 활발히 전개된 정황 속에서 장 폴 사르트르가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한 뒤에 그 강연에서 다루어졌던 이야기들을 모아 만든 책. 책의 구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실존주의에 대한 개론적인 이해고, 둘째는 그 당시 실존주의에 가해지던 주요 비판에 대한 반박, 마지막으로는 실존주의를 휴머니즘이라고 정의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이 강연, 그리고 이 저작을 통해 사르트르는 자신의 과거 경향인 안티휴머니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실존주의와 양립할 수 있는, 보다 정확히 말해서 실존주의로부터 도출되는 또 다른 의미의 휴머니즘인 실존주의적 휴머니즘을 제창한다. 휴머니즘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 이에 대한 20세기 한 지적 거인의 견해를 볼 수 있는, 얇지만 긴요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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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次

강연의 상황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토론 이 책을 읽는 데 도움이 될 옮긴이의 실존주의 용어 해설 옮기고 나서

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1945년 당시의 시대적 화두, 휴머니즘 이제까지 인류가 경험하지 못했던 엄청난 전쟁에서 막 벗어난 1945년,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과 독일의 나치즘은 당시의 유럽인들에게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특히 그것은 고전적 휴머니즘의 핵심 주제였던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를 여지없이 무너뜨린 사건이었다. 그동안 인간이 그려왔던 모든 이상이 무너졌으며, 과학적 성과가 보장하는 듯했던 낙관적 세계관 또한 무너지고 말았다. 요컨대 인간적 합리성이라는 것이 오히려 가장 비합리적인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가장 비인간적인 일을 도모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결국 이 같은 시대 상황에서 어떤 형식으로든 인간에 대해, 인간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인간의 미래에 대해, 따라서 휴머니즘에 대해 반성적으로 따져보는 일이 절실했고, 고전적 휴머니즘을 주제로 한 반성적 논의가 당시에 여기저기에서 활발히 전개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사르트르 또한 이 시대적 요구 앞에서는 결코 예외가 아니었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고, 그 강연을 묶어 책을 냈는데, 바로 이 책이 그 유명한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이다.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의 구조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는 그 구조를 단순화시키면 크게 다음과 같은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그것은 첫째, 실존주의를 개론적으로 이해시키는 부분(이 책의 23~56쪽), 둘째, 그 당시 실존주의에 가해지던 주요 비판에 맞서 반박하는 부분(56~83쪽), 셋째, 실존주의를 휴머니즘이라고 정의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83~88쪽)이다. 첫 번째 부분에서 사르트르는 강연의 초반에 청중의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해 그 당시 실존주의에 가해지던 주요 비판을 약식으로 소개한(23~28쪽) 후, 대략 강연의 중반 정도에 이를 때까지 일반 대중을 염두에 둔, 그의 철학에 대한 개론적인 강연을 한다. 즉 그는 기독교적 실존주의와 무신론적 실존주의라는 두 종류의 실존주의가 있음을 설명하고(28~37쪽), 곧 이어 대중을 상대로 한 이 개론적 강연을 위하여 그가 특별히 추려낸 개념인 불안, 홀로 남겨짐, 절망을 간략하게 해설함으로써 무신론적 실존주의에 대한 개요를 대중에게 전달한다(37~56쪽). 두 번째 부분에서 사르트르는 앞에서 행한 개론적 설명에 기대어서 그 당시 실존주의에 가해지던 주요 비판에 맞서 반박한다(56~83쪽). 즉 그는 실존주의의 도덕적 측면이라 할 수 있는 앙가주망의 필연성을 지적하고 강조함으로써 실존주의는 정적주의와 무관하다고 반박하고(56~63쪽), 또 실존주의가 주체주의에 근거한다는 사실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받는 이런저런 비판에 반박한다(63~83쪽). 특히 주체주의 때문에 받는 비판에 대한 반박은 보다 구체적으로, 실존주의적 선택은 독단적이 아니냐는 비판에 대한 반박(70~76쪽), 자기를 기만하는 선택은 어떻게 볼 것이냐는 비판에 대한 반박(76~82쪽), 실존주의에서는 인간의 행동에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 불가능한 것 아니냐는 비판에 대한 반박(82~83쪽)으로 세분된다. 마지막으로 강연의 결론 부분에서 사르트르는 강연의 제목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를 청중에게 재차 확인시킨다(83~88쪽). 즉 그가 자신의 실존주의를 휴머니즘이라고 정의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제시한다. 실존주의적 휴머니스트, 사르트르 사르트르는 그의 이전 작품에서 안티휴머니스트로서의 그의 입장을 강하게 내비친 바 있다. 예를 들어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에서 인간을 대자-즉자 존재가 되고자 하는 욕구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그에 따르면 이 욕구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환상일 뿐이다. 사르트르가 인간을 쓸모없는 열정, 고통, 결여, 존재의 구멍 등으로 표현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따라서 당시 많은 사람이 지적했던 것처럼, 사르트르의 인간관은 인간에게 가치를 부여하는 독트린으로서의 휴머니즘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보였으며, 또 이러한 판단은 분명 일리가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사르트르가 모든 이들의 예상을 뒤엎으며 자기 스스로를 가리켜 휴머니스트라고 칭하는 일이 일어난다. 사르트르가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라는 강연을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며 성황리에 마치면서, 아주 강력한 실존주의적 휴머니스트로 등장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연스레 묻게 된다. 사르트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도대체 무엇이 사르트르로 하여금 안티휴머니스트의 입장에서 공개적으로 자신을 가리켜 휴머니스트라고 주장하는 입장으로 나아가게 한 것일까? 물론 사르트르에게는 휴머니즘이라고 하는 이 시대적 논의에 직접 뛰어들고자 하는 의도가 분명히 있었다. 왜냐하면 앞에서 이미 이야기했듯이 그 당시에는 휴머니즘을 거론하지 않고서는 지적, 정치적 논의의 장에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휴머니즘을 거론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 하더라도 단순히 의도만 가지고서 그렇게 할 수는 없는 법이다. 특히 사르트르처럼 이전에 안티휴머니즘의 입장을 견지했던 사람이 휴머니즘을 주장할 수 있으려면 그에 합당한 충분한 이유가 있어야만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사르트르와 휴머니즘을 연결하는 두 고리 첫째, 전쟁 기간 동안 사르트르 자신이 포로수용소(스탈라그)에서 겪었던 경험이 이러한 입장 변화에 크게 작용했다. 특히 이 경험은 우리가 『구토』의 주인공 로캉탱에게서 볼 수 있는, 어찌 보면 니체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개인주의적 입장을 이후에 사르트르가 부분적으로 포기하게 되는 배경이 된다. 사르트르는 스탈라그에서 인간 공동체를 경험했다. 『구토』의 로캉탱과 반대로 개인은 공동체에 맞서는 존재가 아니라, 타인들과 더불어, 공동체와 더불어 사는 존재라는 것을 경험한 것이다. 이 인간 공동체에 대한 경험은 분명히 다수의 개인을 가로질러서 그 어떤 공통된 인간-존재를, 따라서 그 어떤 휴머니즘의 가능성을 사르트르에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둘째, 사르트르는 이 강연에서 휴머니즘의 두 의미를 구분하는데, 바로 이 두 의미 구분이 휴머니즘에 대한 사르트르의 입장 변화가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논리적으로 뒷받침해준다. 우리는 이 점을 이 책의 끝부분(83~88쪽)에서 분명히 볼 수 있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우선 고전적 휴머니즘이 있다. 그런데 이 고전적 휴머니즘은, 그것이 인간 본성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점에서, 또 그것이 인간(인간의 본질 또는 본성)을 최상의 목적으로 취한다는 점에서, 애초부터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고 주장하는 실존주의와는 양립이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구토』에 나타난 사르트르의 안티휴머니즘은 바로 이 고전적 휴머니즘을 겨냥한 것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실존주의와 양립할 수 있는, 보다 정확히 말해서 실존주의로부터 도출되는 또 다른 의미의 휴머니즘이 있다. 그것은 인간을 부동의 가치 속에 새겨진 존재가 아니라 만들어가야 할 존재로 보는 휴머니즘, 인간을 가치 만들기라는 멈추지 않는 기도로 보는 휴머니즘, 따라서 고전적 휴머니즘과 달리 인간의 본질이나 본성을 결코 목적으로 취할 수 없는 휴머니즘이다. 사르트르가 주장하는 실존주의적 휴머니즘 또는 휴머니즘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바로 이것이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인간은 끊임없이 가치를 만드는 기도이자, 그 자신을 통해서 가치가 발생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해서 인간은 이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특별한 존엄성을 부여받게 된다. 즉 새로운 의미의 휴머니즘, 실존주의적 휴머니즘이 탄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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