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브 뉴 휴먼 009
작가의 말 197
미주 202
브레이브 뉴 휴먼
정지돈 · 小説
204p

은행나무 한국문학 시리즈 ‘시리즈 N˚’의 열일곱 번째 작품은 소설가 정지돈의 《브레이브 뉴 휴먼》이다. 그는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문지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한국문학장에서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다져왔으며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소설 세계를 조형해냈다. 정지돈은 이번에 인공 자궁이라는 소재를 통해 우리에게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가족’이라는 제도를 새롭게 정의한다. 《브레이브 뉴 휴먼》은 인공 자궁이 상용화되어,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일반인’들과 인공적으로 태어난 ‘체외인’들이 공존하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체외인들을 향한 끊임없는 차별과 혐오, 체외인들 사이에서도 재차 나뉘는 계급. 수많은 분열 속에서 가려져 있는 진실을 찾고자 하는 인물들에게서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인간을 인간으로 존재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정지돈은 그 답의 단서를 ‘가족’에서 찾고자 한다. 작가가 그려낸 근미래 한국 사회는 가족제도가 완전히 해체되거나 국가 전체가 가족인 유토피아 또는 디스토피아적인 모습은 아니다. 명확한 대답 대신 작가는 모든 것이 혼재된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독자가 기꺼이 이 실험에 참여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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著者/訳者
レビュー
10+目次
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이제 삶은 하나의 제품에 불과했다.”
미래에 다시 정의되는 인간의 가치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넘어 다다른 정지돈의 신세계
우리는 앞으로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있을까?
대체되고 해체되는 것들 사이에서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
204X년, 대한민국은 유전자 연구의 발전을 통해 체외인을 생성하며 생식의 부담에서 벗어나고 전통적 가족 관계를 해체하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인공적’인 것에 대한 반발이 커지며 자연분만과 ‘가족’의 가치는 더욱 커지게 된다. 일반인과 체외인은 육안으로 구별이 불가능했지만, 사람들은 체외인들을 차별하고 혐오했다.
법이 시행되고 오래지 않아, 체외인은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가 됐다. 생식의 압제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킨 것이다. 그러나 이 사실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인공적으로 인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인간이란 무엇인가. 가족은 왜 필요한가. 그렇게 만들어진 인간을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_16쪽
체외인인 ‘아미’는 생명공학 회사 ‘노르다’에서 일하는 연구원으로, 보통의 체외인들은 누릴 수 없는 혜택을 누리는 “성공한 체외인”이다. 그는 고급 오피스텔에 살며 곧 일반인 승격을 앞두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의 삶도 세계도 갈 곳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남자친구인 ‘철멍’과의 관계도 지지부진하기만 한 가운데 우연히 만난 체외인 ‘애드’의 등장으로 둘은 더욱 동상이몽에 빠지게 된다.
한편 아미의 오랜 친구이자 “가족”인 체외인 ‘권정현지’는 우연한 계기로 자신의 이복형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규정상 이복형제는 셋을 넘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적게는 수십, 많게는 수천 명의 이복형제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권정현지는 체외인 정책과 관련된 끔찍한 비밀에 다가간다.
어느 날 홀연히 사라졌던 권정현지가 아미의 앞에 나타나고, 말도 없이 사라진 것에 대해 원망을 늘어놓기도 전 그는 아미에게 자신이 알게 된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열쇠를 주고 떠난다. 이제 아미는 선택해야 한다. 진실에 다가갈 것인지 아닌지는 오로지 그 자신의 몫이다.
역사를 공부하고 매일 끔찍한 뉴스를 접하면서 그걸 깨닫지 못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피부로 느끼지 못했던 탓이리라. 아미의 곁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거시적인 태도가 가능했다. 그런 아미의 척수에 권정현지는 현실의 주삿바늘을 꽂아넣었다. 더 이상 행동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했다. _137쪽
“저 세계에서 이 세계로 건너오기 위해 필요한 것은
탯줄이 아니라 금속으로 만든 카테터다.”
《브레이브 뉴 휴먼》에서 체외인은 이미 사회의 일부가 되었지만 여전히 일반인들과는 다른 취급을 받으며 살아간다. 유전적 부모를 찾는 것은 절대 금지되어 있으며, 국가에서 공동 양육을 받고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사회로 방출된다. 제한된 권리만 누릴 수 있지만 그 규율을 벗어나지 않는 이상 평생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다. 극히 드문 경우이지만, 일반인으로 승격할 수도 있다. 그들 중에서도 주어진 조건을 극복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려는 체외인은 ‘일인’, 현재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체외인은 ‘이인’이라고 불리며 계급이 나누어진다. 사람들은 그들과 자신 사이 선을 긋고 분리하며 안정감과 우월감을 느낀다. 이는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현재 우리 사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신분제는 없어졌으나 여전히 계급을 나누며 더욱 위로 올라가려는 사람들의 욕망은 소설 안과 밖에서 모두 쉽게 볼 수 있다. 마치 거울처럼 우리 사회의 모습을 비추며 소설은 어쩌면 예정되어 있을 비극까지 멈추지 않고 달려간다.
“우리가 필요에 의해 창조되었다면 우리를 살아 있는 존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죽음도 삶도 대체될 수 있다면 정신은 어디에 머무를 수 있을까.”
정지돈은 그의 전작 〈언리얼 퓨처: 22세기 서울〉과 〈가족의 방문〉에서 이미 인공 자궁과 가족제도에 대해 써왔던 바 있다. 작가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 작가는 인간성의 근거를 ‘가족’에 두고 이를 계속해서 추궁한다. “인공 자궁이 현실화되면 재생산을 위한 가족이라는 단위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의문에서 파생된 소설은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도 아닌 또 다른 형태의 근미래 사회를 실험한다. 《브레이브 뉴 휴먼》의 배경은 꿈속의 다른 세계가 아닌 “꿈의 일부”인 우리의 “현실”이다. 이제는 변화를 모르는 체하거나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할 수 없다. 이 소설은 계속해서 행동하고 움직일 것을 요구한다. 자연스럽게 생각해왔던 것이 사실 고도화된 이데올로기였다면? 평생 진실이라고 믿어왔던 것이 사실이 아니었다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우리를 시험한다. 그러나 이 소설을 끝까지 읽고 난 뒤 우리는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진실한 가치를 찾을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김시월
0.5
💬 언제부터 문학이 전여친 사생활 울궈먹기의 다른 이름이 되었나? 창작의 자유는 물론 중요하지만 절대 허용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자기 돈 벌고 자아실현 하자고 쓰는 작품에 살아 숨 쉬는 실제 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일이다. 심지어 처음도 아니고 이전 작품(ㅋㅋ)에서는 'h' 어쩌구 하면서 은근슬쩍 간 보다가 괜찮겠다 싶으니까 실명까지 쓰게 된 것 같은데, 작가 본인은 이런 행위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걸까? 자신과 더 이상 아무 관계 없는 타인의 이름과 이야기를 자극적인 방식으로 가져다 써도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런 게 창작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정말로? 만약 그렇다면 본인의 잘못된 가치관을 문학으로 포장해서 유포하지 말고 차라리 절필하시길. 비도덕적인 걸 넘어서 야비한 짓이고 야비한 걸 넘어서 멍청한 짓이다. "문학적 허용 개 신발것, 포스트모더니즘 개 신발것." 작가 이름 달고 글 쓰기 전에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품위부터 가지도록 합시다.
134340
3.5
가족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나란 무엇인가 모든 질문을 하나로 아우른다
(。◝‿◜。)
0.5
남의 이름, 남의 이야기를 그대로 가져다 쓴 게으르고 얄팍한 책. 이런 책을 읽었다는게 짜증이 난다.
COZYBOY
3.5
가족이라는 가치에 대한 의문. 발칙하다.
켠김에엔딩까지
0.5
제가 정말 이런 일에 왈가왈부 안하는 스타일인데 진짜.. 아니 어떻게 사람이 그래요…? 사랑을, 신의를, 믿음을, 의존을, 배려를 무시한 파렴치한… https://m.blog.naver.com/pasilda/223488600534?referrerCode=1&fbclid=PAZXh0bgNhZW0BMQABptP2t84wYA-WPWU-Hiyyn7EKLIw9tlbcWYiVd0lEwTm-UacfXOE1Yy2H_A_aem_R-50Te58kYf5tfeUPOJ92Q 두 권의 소설에 교제했던 연인의 아픈 사연을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위는 해당인물의 본문이고 읽어 보시면 누구나 '의혹'이 아닌 '사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더불어 그를 대하는 작가의 태도 또한 가감없이 당사자의 메일로 드러납니다…
김냐냥
https://m.blog.naver.com/pasilda/223488600534 이 책에 대한 이야기.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최일섭
3.0
인구 감소를 해결할 방안으로 과학기술(인공 자궁을 통한 생산)이 적극 도입된 세계를 상상한다. 흥미로운 주제를 가져왔지만, 충분히 설득되는 세계는 아니었다. 가족의 문제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좌초하기 마련이다.
알량한
1.5
가부장제 가족제도와 이성애 섹스로부터 자유로워지자고 목청 높이는 이 소설은, 어떤 소설보다 아버지에 집착하고, 자궁과 정자에 집착하고, 생물학적 부모와 섹스에 집착한다. 이전 체제에서 벗어나는 데에 몰입하느라 자신이 얼마나 이전 체제에 물들어 있는지 간과하고 있는 건 아닐까. ‘정상 가족 수호’와 ‘모든 형태의 가족 거부‘라는 대립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현실은 그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사회는 이미 여러가지 대안 가족 형태를 고민하고 여러 실험을 진행 중이다. 당연히 SF 장르는 훨씬 진보적이고 앞선 문제를 진행시키고 있다. 그에 비하면 이 작품은 상당히 낡고 지루한 질문들로 이뤄져 있다. 작가의 현실은 아직 '전통 가족 해체' 단계를 못 벗어난 것 같다. 현실반영으로 봐도 너무 늦고 SF로 보면 더 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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