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겨울, 장편소설 <고래>로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하며 비범한 신인의 등장을 알린 작가 천명관. 이후 3년, 그의 첫 단편집이 출간되었다. <고래>가 끝없이 확장되고 뻗어나가는 환상적 이야기였다면, <유쾌한 하녀 마리사>는 일상 속에 숨겨져 있는 삶의 비의를 무심하게 건드리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작가의 데뷔작이자 2003년 문학동네신인상 수상작인 '프랭크와 나'를 비롯, 지금까지 발표한 열한 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다. 이 소설들에서 작가는 현실과 인간관계에서 한 개인이 부딪히게 되는 곤경이나 사소한 소동과 갈등들 그리고 그와 연루된 곤혹이나 회환과 같은 심리적 양태들에 주목한다.
『고래』가 소설 바깥에 존재하는 소설 이전과 소설 이후의 것들, 예컨대 온갖 기담과 민담, 영화와 무협지 등 키치와 대중문화의 파편들을 한데 그러모아 한바탕 이야기의 장을 펼쳐 보이면서, 그 '이야기'의 힘으로 기존 소설의 문법을 통렬하게 일탈하고 소설의 서사에 대한 새로운 사고를 유도했다면, 『유쾌한 하녀 마리사』는 비교적 개연성과 핍진성, 리얼리티를 갖춘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고래』에 출몰했던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은 그 형태를 바꿔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것은 이를테면 '짐작할 수 없는 일들'이다. 운명과 그 운명에 의해 지배되고 조종되는 인생이라는 것 자체가 무력한 개인으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부조리와 아이러니로 가득한 법. (도대체 이놈의 인생살이가 내 뜻대로 된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더란 말인가!) 천명관의 단편들은 '저 짐작할 수 없는 일들', 내 뜻과는 정반대로 움직이는 일들의 아이러니에 대한 유머러스한 보고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