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반항인
제2장 형이상학적 반항
카인의 후예
절대적 부정
구원의 거부
절대적 긍정
반항적인 시
허무주의와 역사
제3장 역사적 반항
왕의 시역자들
신의 시역자들
개인적 테러리즘
국가적 테러리즘과 비합리적 공포정치
국가적 테러리즘과 합리적 공포정치
반항과 혁명
제4장 반항과 예술
제5장 정오의 사상
반항과 살인
절도와 과도
허무주의를 넘어서
카뮈 인터뷰 1
- “아닙니다, 나는 실존주의자가 아닙니다.”
카뮈 인터뷰 2
- 상파울루의 『디아리우』 신문 인터뷰
해제 | 유기환
- 카뮈의 사회•정치사상과 반항
카뮈 연보
반항인
알베르 카뮈 · エッセイ/小説
472p

부조리가 존재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반항이 존재한다. “숙명적으로 주어진 부조리 앞에서 과연 어떻게 살 것인가?” ‘반항’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알베르 카뮈가 말하는 반항인은 참을 수 없는 구속에는 ‘아니요’라고 말하며, 본질적 가치인 인간의 존엄성에는 ‘예’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이 본질적 가치는 ‘숙명의 동일화’를 통해 개인적 차원에서 보편적 차원으로 넘어간다. 따라서 카뮈는 말한다. “나는 반항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존재한다.” 『반항인』은 카인의 살인부터 히틀러의 나치즘까지 서양사를 꿰뚫는 ‘반항의 역사’를 빠짐없이 개관한다. 『이방인』과 마찬가지로 『반항인』에서도 카뮈는 지중해의 태양, 즉 헬레니즘 사상의 지배를 받는다. 카뮈는 반항에 한계를 두고 균형과 중용을 중시하는 이른바 ‘정오의 사상’을 역설한다. 그러나 전후 냉전 시대를 살던 좌파 지식인들에게 중용의 사상은 카뮈를 “심약한 모럴리스트”이자 “애매한 휴머니스트”로 비치게 만들 뿐이었다. 하지만 현실이 이념을 압도하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카뮈가 왜 그토록 균형과 중용을 역설했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우리 세계는 또다시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이 벌이는 ‘절대’의 패권 다툼으로 혼란에 빠져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시대를 앞서간 책 『반항인』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 시대의 반항인은 언제,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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レビュー
3目次
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나는 반항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존재한다”
카인의 살인부터 프랑스혁명, 마르크시즘, 나치즘까지
인간의 숙명적 부조리에 ‘반항’으로 답한 서구 저항의 역사
부조리가 존재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반항이 존재한다. “숙명적으로 주어진 부조리 앞에서 과연 어떻게 살 것인가?” ‘반항’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알베르 카뮈가 말하는 반항인은 참을 수 없는 구속에는 ‘아니요’라고 말하며, 본질적 가치인 인간의 존엄성에는 ‘예’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이 본질적 가치는 ‘숙명의 동일화’를 통해 개인적 차원에서 보편적 차원으로 넘어간다. 따라서 카뮈는 말한다. “나는 반항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존재한다.”
『반항인』은 카인의 살인부터 히틀러의 나치즘까지 서양사를 꿰뚫는 ‘반항의 역사’를 빠짐없이 개관한다. 『이방인』과 마찬가지로 『반항인』에서도 카뮈는 지중해의 태양, 즉 헬레니즘 사상의 지배를 받는다. 카뮈는 반항에 한계를 두고 균형과 중용을 중시하는 이른바 ‘정오의 사상’을 역설한다. 그러나 전후 냉전 시대를 살던 좌파 지식인들에게 중용의 사상은 카뮈를 “심약한 모럴리스트”이자 “애매한 휴머니스트”로 비치게 만들 뿐이었다.
하지만 현실이 이념을 압도하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카뮈가 왜 그토록 균형과 중용을 역설했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우리 세계는 또다시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이 벌이는 ‘절대’의 패권 다툼으로 혼란에 빠져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시대를 앞서간 책 『반항인』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 시대의 반항인은 언제,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 것인가?”
현대지성 클래식 『이방인』을 가장 카뮈다운 문체로 되살려낸 유기환 교수가 다시 『반항인』의 번역을 맡았다. 모두가 검은 진실을 말하기 꺼렸던 시대, “임금님은 벌거벗었다”라고 부르짖은 카뮈의 양심적 외침이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부조리한 시대 속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좋은 지침이 되어줄 것이다.
20세기 프랑스 최고의 작가 알베르 카뮈가 가장 사랑한 작품 『반항인』
카뮈의 사회·정치사상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반항인』은 내게 친구보다 적을 더 많이 만들어준 책입니다. … 그러나 내가 다시 한 번 그것을 써야 한다 해도 지금과 똑같이 쓸 겁니다.”
1942년 29세 청년 알베르 카뮈는 부조리 소설 『이방인』을 발표하며 단숨에 프랑스 문단의 스타덤에 올랐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카뮈는 프랑스인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 명단에 늘 이름을 올린다. 『이방인』은 프랑스 최대 출판사인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도 꼽힌다.
그러나 카뮈가 항상 평탄한 인생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 특히, 『반항인』 출간 이후 수많은 비판을 받으며 파란곡절을 겪는다. 1951년 『반항인』은 세상에 나오자마자 유럽 지식인 사회를 뜨거운 논쟁의 장으로 만들었다. 『이방인』 출간 당시 카뮈를 극찬했던 장 폴 사르트르를 비롯해 좌파 계열의 지식인들이 그를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결국 사르트르와 10년간 이어진 우정도 무너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카뮈는 『반항인』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책이자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책이라 말하며 변함없는 애정을 보여준다. 도대체 『반항인』은 어떠한 책이기에 카뮈를 궁지에 몰아넣은 것일까? 또 카뮈는 왜 그토록 이 책을 사랑했을까?
카뮈를 이해하기 위한 세 가지 핵심 주제: 부조리, 반항 그리고 사랑
진정한 반항이란 ‘부조리에 맞서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 완전해지는 것’
카뮈의 작품 세계는 부조리, 반항, 사랑이라는 세 가지 핵심 주제로 요약된다. 이 세 주제는 각각 소설, 에세이, 희곡으로 다시 형상화된다. 부조리 계열 작품으로는 소설 『이방인』, 에세이 『시시포스 신화』, 희곡 『칼리굴라』, 『오해』가 있고, 반항 계열 작품으로는 소설 『페스트』, 에세이 『반항인』, 희곡 『정의의 사람들』, 『계엄령』이 있다. 사랑 계열 작품에는 그의 죽음으로 미완성으로 남은 소설 『최초의 인간』이 있다. 따라서 『반항인』을 빼고서는 ‘반항’이라는 주제, 더 나아가 카뮈의 작품 세계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반항은 부조리에서 태동한다. 습관과 타성으로 살아가던 인간이 어느 날 문득 죽음, 생명, 우주, 존재, 무(無) 등을 생각할 때 일어나는 막막하고 아연한 감정, 그것이 바로 ‘부조리 감정’이다. 카뮈에 따르면 부조리는 인간의 숙명이다. 그렇다면 “숙명적으로 주어진 부조리 앞에서 과연 어떻게 살 것인가?” ‘반항’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부조리가 존재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반항이 존재한다.
카뮈가 말하는 반항인은 참을 수 없는 구속에는 ‘아니요’라고 말하며, 본질적 가치인 인간의 존엄성에는 ‘예’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이 본질적 가치는 ‘숙명의 동일화’를 통해 개인적 차원에서 보편적 차원으로 넘어간다. 따라서 카뮈는 말한다. “나는 반항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존재한다.”
『반항인』에서 카뮈는 「형이상학적 반항」과 「역사적 반항」에 특히 많은 양을 할애한다. 형이상학적 반항은 인간이 신을 거부하는 반항이며, 노예가 주인을 거부하는 것은 역사적 반항이다. 카뮈는 다시 역사적 반항의 차원에서 혁명과 반항을 구분한다. 카뮈는 일종의 항의에서 시작해 점진적 해방을 추구하는 반항과는 달리, 하나의 이론적 틀에서 출발해 역사를 전복하고 세계를 뒤바꾸려는 혁명을 비판한다. 대신 헬레니즘적 전통에 충실한 한계와 절도(節度)의 사상, 이름하여 ‘정오의 사상’을 강조한다. “인간에게는 인간에게 적합한 중간적 수준에서 가능한 행동과 사상이 있다.” 이 책에서 카뮈는 온갖 초월과 부정에 맞서 관용과 균형이라는 긍정의 몸부림을 친다. 세계의 전복이 아닌 이 지상에서의 삶을 가치 있게 살아가는 것, 부조리에 맞서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 완전해지는 것, 바로 그것이 카뮈에게는 진정한 의미의 반항이었다.
가장 카뮈다운 문체를 그대로 되살려낸 유기환 교수의 번역 개정판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카뮈 인터뷰집과 역자의 논문 요약본 수록
현대지성 클래식 『이방인』을 가장 카뮈다운 문체로 되살려낸 유기환 교수가 다시 『반항인』의 번역을 맡았다. 현대지성 클래식 『반항인』은 1987년에 처음 출간되었던 옮긴이의 번역본과 1993년에 개정된 번역본을 새롭게 다듬고 보완해 개정했다. 『반항인』의 진정한 의미를 밝히고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카뮈의 인터뷰 두 편을 추가했다. 하나는 『카뮈 전집』 제2권에 실린 『시시포스 신화』 해설에 수록된 글로 「아닙니다, 나는 실존주의자가 아닙니다」라는 인터뷰다. 이 글에서 카뮈는 사르트르와 자신의 차이를 강조하면서 부조리와 반항의 관계를 설명한다. 다른 하나는 『카뮈 전집』 제2권에 실린 『반항인』 해설에 수록된 글로 『디아리우』 신문에서 인터뷰한 글이다. 이 글을 통해 독자들은 반항의 필요성에 관한 카뮈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옮긴이가 쓴 논문 「카뮈의 정치사상과 공산주의」를 요약하고 수정한 해제를 수록해 『반항인』의 핵심 주제를 소개한다. 세 편의 글이 독자로 하여금 ‘한계와 균형을 동반한 저항’이라는 카뮈의 지중해 사상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반항인』은 카뮈의 저작 중 가장 길고 내용이 심오한 탓에 결코 읽기 쉬운 책은 아니다. 하지만 이 책만큼 카뮈의 사회·정치사상을 잘 드러낸 책도 없다. 모두가 검은 진실을 말하기 꺼렸던 시대, “임금님은 벌거벗었다”라고 부르짖은 카뮈의 양심적 외침을 통해 오늘날의 독자들이 부조리한 시대 속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고민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이현승
4.5
정리 계몽의 시대는 신을 죽이고 이성을 드높였다. 양차 대전은 다시 이성을 죽였고, 이번엔 허무와 회의가 전 유럽에 번지게 되었다. 좌절된 인간 이상을 목격한 지식인들 사이에서 냉소라는 감정이 일종의 세련된 사상으로 둔갑해 버린 것이었다. 한편 스탈린주의와 파시즘의 잔재는 유럽을 어지럽혔고, 자본주의의 폐해는 여전히 척결되지 못했으며, 아직도 이념의 대립을 청산하지 못한 인류는 냉전에 돌입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카뮈의 <반항인>은 그러한 혼돈의 시기에 출간되었다. 본작에서 카뮈는 합리주의도 허무주의도 결국 낡은 종교적 관념의 형태를 되풀이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공산주의는 합리의 탈을 쓴 채 먼 훗날에 도래할 지상낙원을 약속한다. 허무주의는 가치판단이 전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가치판단을 내리며 내부적 모순을 극복하지 못한 채 허무를 신성화한다. 종교적 예속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장구한 시도가 결국 또 다른 형태의 예속으로 귀결되었다. 소련은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예언적 가치를 섬기는 신성 제국이 되었고, 다른 사람들은 가치의 부재에서 오는 허무 속에 질식해 버렸다. 신을 상실한 인류의 최종적 귀결은 이념 재판에 의해 희생되던가, 혹은 자살하던가 둘 중 하나가 되고 말았다. 카뮈는 <반항인>에서 자본주의는 물론이고 특히 공산주의를 철저히 배격하며 좌우 지식인들에게 동시에 욕을 먹었다. 실제로 책의 상당한 분량이 허무주의적 태도와 공산주의 비판을 담고 있다. 그에 따르면, 역사에 의해 유토피아가 필연적으로 도래할 것임을 믿는 공산주의는 세상에 대한 절대적 긍정이고, 반대로 허무주의는 세상에 대한 절대적 부정이다. 인류가 이러한 ‘절대성’을 논하는 순간 모순과 자가당착은 필연적이다. 카뮈의 말마따나 인류는 역사 안에 존재하기 때문에 역사를 파악할 수 없고, 세계 안에 존재하기 때문에 세계를 온전히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절대성은 황당한 개념이기까지 하다. 그건 신의 영역이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절대성을 논하는 순간 인류는 전근대로 회귀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절대성을 표방한 새로운 사회 건설’은 말 자체가 모순이다. ‘절대적 가치를 내건 혁명’이라는 모순적 명제를 대신해 카뮈가 내놓는 대안은 바로 ‘반항’이다. 카뮈는 여러 역사적 예시(사드와 랭보, 니체, 그리고 레닌에서 히틀러까지)를 들며 반항과 혁명의 차이를 강조하고, 절대성에 반한 상대성과 중용의 정신(이른바 지중해 정신)을 설파한다(물론 그가 혁명 정신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다만 1950년 당시 인류의 혁명은 그 ‘반항적 기원’으로부터 너무 멀어져 논리적 당착에 빠졌음을 지적하고 있을 뿐이다. 반항은 억압자에 대한 피억압자들의 연대적 존엄성에 기초하는데, 혁명적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억압자의 편에 서서 피억압자들에 대한 박해를 정당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카뮈는 오늘날 혁명이 그 기원을 기억하고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촉구한다.). 어쩌면 카뮈 본인조차 그가 맑시즘에 행했던 추상성의 비판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카뮈가 맑스와 사회주의의 언어를 비판했듯, 그가 반항을 표현하는 언어 역시 추상적이고, 어떤 면에선 미학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유럽의 지성사를 종횡무진 누비는 서술과 미학적 문장의 결합이 내뿜는 강렬함은 알베르 카뮈 그만의 독창성이기도 하다. ‘반항’이라는 개념에 대해선 오랜 시간 숙고가 필요하겠지만, 책 자체의 태도와 완결성은 흠잡을 구석이 없다. +알베르 카뮈나 사르트르의 글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그 태도에 있는 것 같다. 둘 모두 전후 사회의 피폐해진 모습에 대한 동일한 심려와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으며, 합리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당대에 만연했던 수동적 허무주의를 완고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신이 없는 세상에서 인류의 진정한 특권은 절망이 아닌 주체성임을 강조한다. 그건 아마 이성의 함정과 전후 사회를 갉아먹는 허무주의의 늪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하고자 한 ‘지성’의 책임감을 반영하는 것이리라.
조주니
3.5
니체가 말하는 힘에의지. 카뮈의 반항, 사르트르의 기투.. 다른 언어지만 결국 그 속에 든 것은 ’개인이 정의내린 정의‘ 이지 않을까. 동양 사상에서는 이것을 인, 의.. 혹은 '어질다'의 표현으로 쓰는 듯 하다. 아무튼 '어떻게 살 것인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중요한 물음이다. 그 중에서도 카뮈는 내가 참 좋아한다. 카뮈의 정의, '반항'은 한글로 번역했을 때 '주저하다' 혹은 '머뭇거리다'. 번역의 어려움이 존재하겠지만, 정확하게 해석하자면 그렇다. 카뮈는 내가 살고 싶은 태도를 말한다. 헨리 조지의 개혁적 태도와 소로의 초월적 태도의 중간 정도의 사회개입의 여력을 두는 삶. 그리고 맹자가 측은지심을 말하듯이, 사람에게는 선한 것이 있다고 감히 믿는 삶. 그런 의미에서 카뮈는 동양사상과 꽤 밀접하다. 나는 중간지점의 사람이 좋다. 지키는 삶은 버겁고 힘에 부치면 나는 결국 그런 사람인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중간이 좋다. 무 념 무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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