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솜땅3.0키노아이에 대한 정의를 잘 몰라서 그렇지만 어떤 것에 대한 지칭같다. 그걸 표현하는 것이 일상화된 그사람들을 촬영했나보다. 생활양식?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때론 카메라를 거꾸로 감아가며 보여주는, 때론 삶의 한 부분을 보여주는... 약 100년전의 모습들! #20.4.15 (917)いいね45コメント0
지하실5.0지하실 (jihasil.com) | OTT | 2026년 2월 20일 - 2026년 4월 20일 소비에트 영화 집단이 주도한 이론과 실천으로서의 작품. <키노아이>는 당대 현실의 단편들을 조합하며 ‘영화 - 눈’이라는 개념을 집중 탐구한다. 인간 시각을 넘어서는 카메라가 가진 가능성을 실험하며, 도시의 노동과 일상, 기계적 리듬을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조직한다. 단순 기록을 넘어 편집을 통해 의미를 생성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전면에 드러내는 본작은, 다큐멘터리와 아방가르드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로 남는다. 이후 지가 베르토프 영화 세계의 핵심 원리가 응축된 초기 선언문 같은 작업이다. • 내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사고를 경유하지 않고도 결과물을 생성할 수 있다는 것이 사진의 혁신 중 하나라고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가 쓴 바 있다. 그러니까, 카메라 발명 이전에는 예술 작품들이 포착하는 현실이란 작가의 사전 처리를 거치기에 결코 그의 주관적 자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사진도 대상 선정부터 초점이나 구도 등 '작가적 개입'이 들어갈 수 있는 여지는 많다. 허나 현실을 매개하는 가장 앞단의 인터페이스는 카메라라는 기계 장치이기에, 인류는 마침내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된 셈이다. 지가 베르토프와 그의 실험 집단 '키노아이 (Kino-Eye)'가 제작한 일련의 작품들은 어떻게 보면 '트랜스휴머니즘 (Transhumanism)'의 영화적 선언이자, 기계 장치의 이미지를 고찰하는 후대의 다양한 작가들 - 하룬 파로키, 마이클 스노우, 하버드 감각민속지 연구소 등 - 의 사상적 토양으로 기능한다. 한편, 본작과 소비에트 혁명의 접점도 흥미롭다. 개인에서 집단으로 향하는 역사적 과정에서 필요한 비인격화를 예술의 영역에서 수행한 사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いいね3コメント0
프레게4.0키노 아이, 즉 기계 눈이라는 표현은 어떤 대상을 바라본다는 의미의 지향성과, 그것을 창작자의 임의적 자유의 범위 안에 둘 수 있다는 의미의 조작성을 영화의 본질로 설정한다. 우리가 영화를 이러한 방식으로 생각할 때, 영화는 그 지향성으로 말미암아 항상 다큐멘터리적 성격, 리얼리즘과의 친연성을 획득한다. 이 점에서 바라볼 때 영화는 필연적으로 정치적이다. 지가 베르토프가 자신의 작품 속에서 그의 이론을 완연히 실현하고 있다는 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의 영화 이론이 칸트 이후의 미적 자율성에 대한 교의과 본질적인 긴장 관계에 있다는 점, 그리고 베르토프 이후의 영화사적 진행이 '키노 아이'의 '아이' 즉 지향성을 희석시키는 대신, 영화를 하나의 자기완결적인 체계로 구성하고자 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의 이론에 다소 의구심이 가는 것은 사실이다. 갓직히 좀 지루함.いいね1コメント0
ಠ益ಠ2.5<카메라를 든 사나이>의 전조랄까. 필름 역재생, 애니메이션 효과, 파노라마 트랙 등으로 점철된 긍정적 민중 이미지의 병렬적 나열.一番最初に「いいね」してみましょう。コメント0
다솜땅
3.0
키노아이에 대한 정의를 잘 몰라서 그렇지만 어떤 것에 대한 지칭같다. 그걸 표현하는 것이 일상화된 그사람들을 촬영했나보다. 생활양식?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때론 카메라를 거꾸로 감아가며 보여주는, 때론 삶의 한 부분을 보여주는... 약 100년전의 모습들! #20.4.15 (917)
지하실
5.0
지하실 (jihasil.com) | OTT | 2026년 2월 20일 - 2026년 4월 20일 소비에트 영화 집단이 주도한 이론과 실천으로서의 작품. <키노아이>는 당대 현실의 단편들을 조합하며 ‘영화 - 눈’이라는 개념을 집중 탐구한다. 인간 시각을 넘어서는 카메라가 가진 가능성을 실험하며, 도시의 노동과 일상, 기계적 리듬을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조직한다. 단순 기록을 넘어 편집을 통해 의미를 생성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전면에 드러내는 본작은, 다큐멘터리와 아방가르드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로 남는다. 이후 지가 베르토프 영화 세계의 핵심 원리가 응축된 초기 선언문 같은 작업이다. • 내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사고를 경유하지 않고도 결과물을 생성할 수 있다는 것이 사진의 혁신 중 하나라고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가 쓴 바 있다. 그러니까, 카메라 발명 이전에는 예술 작품들이 포착하는 현실이란 작가의 사전 처리를 거치기에 결코 그의 주관적 자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사진도 대상 선정부터 초점이나 구도 등 '작가적 개입'이 들어갈 수 있는 여지는 많다. 허나 현실을 매개하는 가장 앞단의 인터페이스는 카메라라는 기계 장치이기에, 인류는 마침내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된 셈이다. 지가 베르토프와 그의 실험 집단 '키노아이 (Kino-Eye)'가 제작한 일련의 작품들은 어떻게 보면 '트랜스휴머니즘 (Transhumanism)'의 영화적 선언이자, 기계 장치의 이미지를 고찰하는 후대의 다양한 작가들 - 하룬 파로키, 마이클 스노우, 하버드 감각민속지 연구소 등 - 의 사상적 토양으로 기능한다. 한편, 본작과 소비에트 혁명의 접점도 흥미롭다. 개인에서 집단으로 향하는 역사적 과정에서 필요한 비인격화를 예술의 영역에서 수행한 사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말차만두
3.0
‘이렇게 찍는게 맞았다’와 ‘이렇게 찍어선 안됐다’를 오간다
프레게
4.0
키노 아이, 즉 기계 눈이라는 표현은 어떤 대상을 바라본다는 의미의 지향성과, 그것을 창작자의 임의적 자유의 범위 안에 둘 수 있다는 의미의 조작성을 영화의 본질로 설정한다. 우리가 영화를 이러한 방식으로 생각할 때, 영화는 그 지향성으로 말미암아 항상 다큐멘터리적 성격, 리얼리즘과의 친연성을 획득한다. 이 점에서 바라볼 때 영화는 필연적으로 정치적이다. 지가 베르토프가 자신의 작품 속에서 그의 이론을 완연히 실현하고 있다는 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의 영화 이론이 칸트 이후의 미적 자율성에 대한 교의과 본질적인 긴장 관계에 있다는 점, 그리고 베르토프 이후의 영화사적 진행이 '키노 아이'의 '아이' 즉 지향성을 희석시키는 대신, 영화를 하나의 자기완결적인 체계로 구성하고자 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의 이론에 다소 의구심이 가는 것은 사실이다. 갓직히 좀 지루함.
강명성
3.0
사회주의 리얼리즘도 결국엔 리얼리즘
japple
2.0
시장, 농장, 서커스, 철도 등 당시의 일상을 잘 담고 있으며, 필름을 거꾸로 돌리는 등 잔기술도 제법 보여준다..
ಠ益ಠ
2.5
<카메라를 든 사나이>의 전조랄까. 필름 역재생, 애니메이션 효과, 파노라마 트랙 등으로 점철된 긍정적 민중 이미지의 병렬적 나열.
우울한cut과 유쾌한song
0.5
가역성과 연결로서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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