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빈4.0역사 과목 교과서는 해방 전후의 상황을 ‘이념 대립이 극심했다’는 식으로 담담하게 기술한다. 여기서 주로 다뤄지는 것은 이승만, 김구, 김일성, 여운형, 김규식 등과 같은 ‘중앙’의 ‘굵직’한 인물들이다. 이름있는 자들에 대한 기억은 ─ ‘영웅’ 혹은 ‘악마’로 ─ 선거나 정당, 공식조직, 전쟁 지휘권 등을 경유해 공식 기억으로 남는다. 이는 교과서 혹은 <백범일지>와 같은 이른바 ‘베스트셀러’를 경유해 대중기억으로 재생산 ─ 푸코의 표현을 빌리자면 “재프로그램화” ─ 된다. 지역적으로 중앙, 그리고 스케일 차원에서 국토는 공식 역사와 대중기억의 장소가 된다. (몇몇 예외를 제한다면) 해방전후 민간인 학살이 공식적으로 다뤄진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이 작품에서도 다뤄지는 것처럼 반공 이데올로기와 국가보안법은 (이 영화가 나온 2000년대, 그리고 이후 박정근 씨 사건처럼 2010년대에도 그 영향력이 상당부분 유지될 정도로) ‘대한민국사’에 있어 강력한 기제였기 때문이다. 민간인 학살의 90퍼센트 정도가 우익에 의해 행해졌다는 지점에서 가해자는 국가권력을 매개로 숨겨왔음은 물론이고, 연좌제 등에 의해 피해자조차도 “쉬쉬”해야 하는 문제였다. 그리고 그 장소는 대부분 지방-로컬이었다. 한국의 로컬은 (지역으로서의 서울, 인천, 부산 정도를 제외한다면) 역사에서 ‘찢겨나가기’ 이전에 채 기록되지 못했던 장소에 가깝다. 한국에서 ‘지방’은 인문지리적 변두리로 인식된다. 그런데 <할매꽃>은 로컬, 특히 남한 사회에서 ‘지방’ 중 ‘지방’이었던 호남 농촌을 작품 전개의 주 장소로 한다. 양반-지식인-좌익과 상민-기독교-우익의 대립. 영화에서 이 ‘지난 시대’ 대립의 ‘중심’이 되는 곳은 전근대적 계급과 해방전후의 이념 대립이 교차하던 장소는 상대/중대/풍동 마을이다. 그리고 이 대립은 오늘날까지 암암리에(사실은 공공연하게) 지속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 “여느 시골”처럼 평화로워 보이는 나주의 ‘마을’에서 지역 주민들은 여전히 반목한다. 인터뷰, 이미지 활용을 비롯 <할매꽃>은 자기 로컬을 ‘여느 시골’처럼 다룬다. 덕분에 영화가 제기하는 논의의 스케일은 미시에서 다시 거시로, 특수성에서 보편성으로 향한다. 이를테면 이 영화는 옆 마을 당숙의 동네에도 민간인 학살이 이루어졌음을 언급한다. 이는 ‘여느 시골’들로 이루어진 한국의 ‘국토’ 단위의 감추어진 기억에 대한 의문을 표한다. 그러나 그 질문의 장소는 여전히 미시 영역으로서의 로컬이다. 그렇다면 <할매꽃>의 시선은 다중 스케일multiscalar적이다. 로컬은 단독지가 아니다. 한반도 근현대사가 거시적으로 국제관계와 지정학의 영향에 놓여있다면 미시사 역시 예외가 아니다. 함께 본 영화 <비념>(임흥순, 2012)의 시선이 오사카로 향했던 것처럼, <할매꽃>의 감독은 외할머니 남동생의 아들, 자신의 ‘삼촌들’이 살고 있는 도쿄로 향한다. 그런데 영화 촬영을 위해 비교적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던 감독의 모틸리티motility와 달리,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여전히’ 모틸리티는 확보되지 않는다. 이들의 모빌리티는 자의적인 것처럼 보일 때조차도 타의적이(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일본으로, 해방후 일본에서 한국으로 향했던/향하려했던 이들은 ─ 그리고 “3세대”인 후손들도 ─ 결국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그리고 이 미시사는 조총련 간부를 지냈던 ─ 그로 인해 남과 북의 체제선전의 ‘희생양’이자, 동시에 그 극복을 위한 가정 내에서의 ‘가해자’로 중첩되었던 ─ 외할머니 동생의 삶을 통해 거시사와도 다중스케일적으로 전개된다. 그런데 상대적 모틸리티를 갖춘 것처럼 보이던 감독의 카메라 역시 ‘희미 이모’가 살고 있는 북한을 카메라로 담지는 못한다. 이미 와있던 사진과 편지로 담을 수 있을 뿐이다. 이 모빌리티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워 ‘보이는’ 지금의 체제에 대한 비판이 전개된다. “자유민주주의”를 명분으로 반공 이데올로기를 국시로 삼았던 체제의 당위성일 ‘자유’마저 실은 허울뿐이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자유’가 외부자로 여겨지는 이들은 물론 내부자에조차 온전하지 못하다는 문제의식은 ─ (여전히 지속되는) 국가보안법이나 연좌제 등에 대한 비판과 함께 ─ 지금-여기를 향한다. 로컬이 미시사라면, 로컬에서의 여성사는 미시사 중에서도 미시사다. 역사의 이름을 달지 못한 ─ 많은 경우 기록되지도 못한 ─ 기억이다. 외할머니로부터 로컬기억에 대한 접근을 시작한 이 영화는 여성사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최종심급은 어머니-외할머니-이모(들) 등의 여성 인물들이다. 물론 남성 인물들 역시 중요하게 다루어기는 한다. 가족사의 비극은 아버지, 외할아버지, 그리고 외할머니의 남자형제들로부터 ─ 정확하게는 이들을 둘러싸고 거시로부터 미시로 들이닥친 한국 현대사의 비극으로부터 ─ 시작된다. 구조와 갈등은 현재까지도 상당부분 지속된다.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중요한 것은 단독작품으로서 <할매꽃>이 종결되는 지점이다. 이 영화는 북한에 ‘살게 된’ 먼 이모의 편지로, 외할머니의 죽음과 장례로, 그리고 고민 끝에 ‘숙자 아주머니’를 만나러 간 어머니의 엘리베이터를 따라 오르지 않음으로 끝맺는다. 영화의 전반에 걸쳐 남성 감독은 (가령 어머니가 숙자 아주머니를 만나는 것 자체에도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는 내레이션과 함께) 점진적으로 주도권을 포기한다. 이 때 주도권은 여성 인물들에게 이양된다. 최소한, 명시적으로라도 외할머니의 죽음 앞에 ‘바쳐진다’.いいね15コメント0
르네상스형뮤지션3.5작은 시골 동네 안에서도 이념으로 갈라져 서로 싸웠던 동존 상잔의 비극. 양반이 살던 상동, 중동, 낮은 사람들이 살던 하동(풍동)의 계급과 정치성으로 나뉘는 범주화는 우리네 위태롭던 현대사를 오롯이 담고 있다. 알면 알수록 역사는 슬픔과 부정의로 얼룩져 있어 담담해 질 법도 하지만, 여전히 맞딱뜨릴 때마다 공감에 마음 아파. '아직은 일러, 안돼. 또 어떻게 될 줄 알아. 한나라당이 대통령이라도 돼 봐라. 숨도 못 쉬고 살재.' 연좌제의 두려움은 여전히 남아 할머니는 입을 닫는다. 반공이 강력한 사회 유지 장치이자 단독 장치였던 세상에 자유는 존재하는가. 역시 비극적 현대사를 다룬 <타인의 침묵>, <침묵의 시선>, <액트 오브 킬링> 등과 함께 보면 좋다. 동일하게 극우의 잔혹한 양민 학살과 (여전히 단죄 받기는커녕)기득권을 유지하며 잊히기를 바라는 현실까지 우리네와 흡사. '국가보안법이 있는 한 절대 민주적인 사회가 될 수 없다. 어떻게 제도가 개인의 양심과 사상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건가.'いいね3コメント0
토매토3.5오랜시간 깊게 뿌리 박혀 버린 신념과 이념, 그 시대를 직접 목도하고 겪어낸 이들에게 요 하는 변화는 심리적인 죽음과 아주 가까이에 맞닿아 있기도 하다. 할머니가 내어 왔을 수십년의 숨소리를, 조용히 내리는 눈송이를 진심을 다 해 마음으로 애도하는 일 밖엔 할 수 없었다.いいね1コメント0
이승빈
4.0
역사 과목 교과서는 해방 전후의 상황을 ‘이념 대립이 극심했다’는 식으로 담담하게 기술한다. 여기서 주로 다뤄지는 것은 이승만, 김구, 김일성, 여운형, 김규식 등과 같은 ‘중앙’의 ‘굵직’한 인물들이다. 이름있는 자들에 대한 기억은 ─ ‘영웅’ 혹은 ‘악마’로 ─ 선거나 정당, 공식조직, 전쟁 지휘권 등을 경유해 공식 기억으로 남는다. 이는 교과서 혹은 <백범일지>와 같은 이른바 ‘베스트셀러’를 경유해 대중기억으로 재생산 ─ 푸코의 표현을 빌리자면 “재프로그램화” ─ 된다. 지역적으로 중앙, 그리고 스케일 차원에서 국토는 공식 역사와 대중기억의 장소가 된다. (몇몇 예외를 제한다면) 해방전후 민간인 학살이 공식적으로 다뤄진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이 작품에서도 다뤄지는 것처럼 반공 이데올로기와 국가보안법은 (이 영화가 나온 2000년대, 그리고 이후 박정근 씨 사건처럼 2010년대에도 그 영향력이 상당부분 유지될 정도로) ‘대한민국사’에 있어 강력한 기제였기 때문이다. 민간인 학살의 90퍼센트 정도가 우익에 의해 행해졌다는 지점에서 가해자는 국가권력을 매개로 숨겨왔음은 물론이고, 연좌제 등에 의해 피해자조차도 “쉬쉬”해야 하는 문제였다. 그리고 그 장소는 대부분 지방-로컬이었다. 한국의 로컬은 (지역으로서의 서울, 인천, 부산 정도를 제외한다면) 역사에서 ‘찢겨나가기’ 이전에 채 기록되지 못했던 장소에 가깝다. 한국에서 ‘지방’은 인문지리적 변두리로 인식된다. 그런데 <할매꽃>은 로컬, 특히 남한 사회에서 ‘지방’ 중 ‘지방’이었던 호남 농촌을 작품 전개의 주 장소로 한다. 양반-지식인-좌익과 상민-기독교-우익의 대립. 영화에서 이 ‘지난 시대’ 대립의 ‘중심’이 되는 곳은 전근대적 계급과 해방전후의 이념 대립이 교차하던 장소는 상대/중대/풍동 마을이다. 그리고 이 대립은 오늘날까지 암암리에(사실은 공공연하게) 지속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 “여느 시골”처럼 평화로워 보이는 나주의 ‘마을’에서 지역 주민들은 여전히 반목한다. 인터뷰, 이미지 활용을 비롯 <할매꽃>은 자기 로컬을 ‘여느 시골’처럼 다룬다. 덕분에 영화가 제기하는 논의의 스케일은 미시에서 다시 거시로, 특수성에서 보편성으로 향한다. 이를테면 이 영화는 옆 마을 당숙의 동네에도 민간인 학살이 이루어졌음을 언급한다. 이는 ‘여느 시골’들로 이루어진 한국의 ‘국토’ 단위의 감추어진 기억에 대한 의문을 표한다. 그러나 그 질문의 장소는 여전히 미시 영역으로서의 로컬이다. 그렇다면 <할매꽃>의 시선은 다중 스케일multiscalar적이다. 로컬은 단독지가 아니다. 한반도 근현대사가 거시적으로 국제관계와 지정학의 영향에 놓여있다면 미시사 역시 예외가 아니다. 함께 본 영화 <비념>(임흥순, 2012)의 시선이 오사카로 향했던 것처럼, <할매꽃>의 감독은 외할머니 남동생의 아들, 자신의 ‘삼촌들’이 살고 있는 도쿄로 향한다. 그런데 영화 촬영을 위해 비교적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던 감독의 모틸리티motility와 달리,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여전히’ 모틸리티는 확보되지 않는다. 이들의 모빌리티는 자의적인 것처럼 보일 때조차도 타의적이(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일본으로, 해방후 일본에서 한국으로 향했던/향하려했던 이들은 ─ 그리고 “3세대”인 후손들도 ─ 결국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그리고 이 미시사는 조총련 간부를 지냈던 ─ 그로 인해 남과 북의 체제선전의 ‘희생양’이자, 동시에 그 극복을 위한 가정 내에서의 ‘가해자’로 중첩되었던 ─ 외할머니 동생의 삶을 통해 거시사와도 다중스케일적으로 전개된다. 그런데 상대적 모틸리티를 갖춘 것처럼 보이던 감독의 카메라 역시 ‘희미 이모’가 살고 있는 북한을 카메라로 담지는 못한다. 이미 와있던 사진과 편지로 담을 수 있을 뿐이다. 이 모빌리티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워 ‘보이는’ 지금의 체제에 대한 비판이 전개된다. “자유민주주의”를 명분으로 반공 이데올로기를 국시로 삼았던 체제의 당위성일 ‘자유’마저 실은 허울뿐이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자유’가 외부자로 여겨지는 이들은 물론 내부자에조차 온전하지 못하다는 문제의식은 ─ (여전히 지속되는) 국가보안법이나 연좌제 등에 대한 비판과 함께 ─ 지금-여기를 향한다. 로컬이 미시사라면, 로컬에서의 여성사는 미시사 중에서도 미시사다. 역사의 이름을 달지 못한 ─ 많은 경우 기록되지도 못한 ─ 기억이다. 외할머니로부터 로컬기억에 대한 접근을 시작한 이 영화는 여성사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최종심급은 어머니-외할머니-이모(들) 등의 여성 인물들이다. 물론 남성 인물들 역시 중요하게 다루어기는 한다. 가족사의 비극은 아버지, 외할아버지, 그리고 외할머니의 남자형제들로부터 ─ 정확하게는 이들을 둘러싸고 거시로부터 미시로 들이닥친 한국 현대사의 비극으로부터 ─ 시작된다. 구조와 갈등은 현재까지도 상당부분 지속된다.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중요한 것은 단독작품으로서 <할매꽃>이 종결되는 지점이다. 이 영화는 북한에 ‘살게 된’ 먼 이모의 편지로, 외할머니의 죽음과 장례로, 그리고 고민 끝에 ‘숙자 아주머니’를 만나러 간 어머니의 엘리베이터를 따라 오르지 않음으로 끝맺는다. 영화의 전반에 걸쳐 남성 감독은 (가령 어머니가 숙자 아주머니를 만나는 것 자체에도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는 내레이션과 함께) 점진적으로 주도권을 포기한다. 이 때 주도권은 여성 인물들에게 이양된다. 최소한, 명시적으로라도 외할머니의 죽음 앞에 ‘바쳐진다’.
jww
4.0
알지 못했던 우리나라의 역사 //옳고 그름을 인간이 판단할수 있을까 인간이 옳은지 그른지 모르는데 //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최훈
4.0
"다음 세상에는 맘 편히 사세요"
르네상스형뮤지션
3.5
작은 시골 동네 안에서도 이념으로 갈라져 서로 싸웠던 동존 상잔의 비극. 양반이 살던 상동, 중동, 낮은 사람들이 살던 하동(풍동)의 계급과 정치성으로 나뉘는 범주화는 우리네 위태롭던 현대사를 오롯이 담고 있다. 알면 알수록 역사는 슬픔과 부정의로 얼룩져 있어 담담해 질 법도 하지만, 여전히 맞딱뜨릴 때마다 공감에 마음 아파. '아직은 일러, 안돼. 또 어떻게 될 줄 알아. 한나라당이 대통령이라도 돼 봐라. 숨도 못 쉬고 살재.' 연좌제의 두려움은 여전히 남아 할머니는 입을 닫는다. 반공이 강력한 사회 유지 장치이자 단독 장치였던 세상에 자유는 존재하는가. 역시 비극적 현대사를 다룬 <타인의 침묵>, <침묵의 시선>, <액트 오브 킬링> 등과 함께 보면 좋다. 동일하게 극우의 잔혹한 양민 학살과 (여전히 단죄 받기는커녕)기득권을 유지하며 잊히기를 바라는 현실까지 우리네와 흡사. '국가보안법이 있는 한 절대 민주적인 사회가 될 수 없다. 어떻게 제도가 개인의 양심과 사상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건가.'
joeun
4.0
들어야 한다. 할머니의 숨소리를.
박현우
4.0
한 가족을 다루면서도 아픈 한국 역사를 관통하는 좋은 다큐멘터리 중의 하나.
토매토
3.5
오랜시간 깊게 뿌리 박혀 버린 신념과 이념, 그 시대를 직접 목도하고 겪어낸 이들에게 요 하는 변화는 심리적인 죽음과 아주 가까이에 맞닿아 있기도 하다. 할머니가 내어 왔을 수십년의 숨소리를, 조용히 내리는 눈송이를 진심을 다 해 마음으로 애도하는 일 밖엔 할 수 없었다.
소예🎗
5.0
서투르고 투박한데 빛이 난다. 보면서 감정을 추스르기가 힘들어 죽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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