バイス
Vice
2018 · 伝記/コメディ/ドラマ · アメリカ
132分 · R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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酒癖の悪い青年チェイニーは、1960年代半ば頃、才女であり後に結婚する恋人リンに尻を叩かれ、政界を目指した。後に国防長官となるドナルド・ラムズフェルドのもとで政治の表と裏を学び、次第に権力の虜に。大統領主席補佐官、国務長官を経て、2001年ジョージ・W・ブッシュ政権の副大統領に就任。大統領の影に隠れる地位を逆手に取り、入念な下準備をし大統領を操って強大な権力をふるうように。2001年9月11日に同時多発テロ事件が起こると、ジョージ・W・ブッシュ大統領を差し置いて危機対応にあたり、イラク戦争へと導く。幽霊のように自らの存在感を消したまま、意のままに法をねじ曲げ国民への情報操作をし、チェイニーはその後のアメリカと世界情勢に多大な影響を与えてい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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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평론가
3.5
권력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신랄한 야유와 풍자 끝의 장탄식.
영화고독발버둥치며본다
3.5
반세기 넘게 고군분투해왔던 보수의 심장은 거뭇거뭇한 속살이 드러난 채 적출당했지만, 심장을 감싼 혈관에는 여전히 붉은 피가 돌고 있었다. 그 피의 정체는 무엇일까? 어떻게 그토록 많은 피를 흘려야만 하는 선택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올수 있었을까? . 결국 이 영화또한 '신념'에 관한 영화다. . . . ps. 중요! 쿠키 있습니다. 없을 것 같은데 있어서 많은 분들이 놓치고 가시더라구요 ㅠㅡㅠ 꼭 챙겨보고가세요! 영화감독 스스로의 자기비판과 조롱이 담겨 있어 꽤나 재미있습니다. . ps. 전반부는 참 매력없는 영홥니다. '아이토냐'의 인터뷰를 통한 회상씬과 유사한데, 이게 영화 중후반부에도 특별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그렇다고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만드는데 하등 도움을 못줘서 덜어내고 싶다고 생각될 정도로 별로 였습니다. . ps. 그러나 전체적으로 유지되어온 '태도'가, 영화속 편집과 나레이션등을 통해서 일관되게 유지 됐었던 마이클무어식 '비꼬기'가 중후반부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만듭니다. 마치, 고깃집에서 테이블에 내놓기전 물뿌린 상추처럼 생기가 나 파릇파릇해집니다. 아마 높은 점수를 주신분들은 이 점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 ps.'태도' 때문에 관람객의 정치성향과 맞지 않으면 얼굴을 찌푸릴 수도 있지만요. 그런데 자세히 뜯어보면 단순 진보 감독의 보수정치인 비꼬기 영화로만 보기에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영화가 시작되기전 감독의 코멘터리처럼 보수와 진보를 떠나 딕체니란 인물상과 '신념'을 이해하기 위해서 정말 FUCK소리 나도록 노력한 티가 납니다. 그래선지 여러 불필요한 씬을 붙이기도 한게 아닌가 생각들더군요.(그래서 초반부가 쓸데 없이 늘어난 것 같기도...) . ps. 개인적으론, 크리스찬 베일보다 스티브 카렐이 자꾸만 눈에 들어오네요 (오피스 지점장님 넘좋아요 *,,*)
JY
3.5
단도직입적으로 빅쇼트보다는 아쉽다 시종일관 빠른 템포로 몰아치던 빅쇼트에 비해 중간중간 흐름이 늘어지는 부분이 있고 몰입도가 떨어지는 부분도 존재한다 위트있는 부분도 조준점이 산만한듯 하기도 한것이 전체적으로 예리함이 다소 부족해보이는데 이는 제작진이 개고생(했다고 자기변론) 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 딕체니의 비밀스러움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다 그렇다. 주인공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거다 이미 나온 결과물을 다각적으로 씹고 뜯어본 빅쇼트에 비해서 이 영화의 인간 딕체니는 아직까지도 비밀스러운 구석이 많아 캐릭터 조형에 허점을보인다 성격과 능력면에서 타당한 설득없이 이미 나온 결과들을 보여주니 그가 실제 계획하고 실행한것들 임에도 불구하고 이사람이 어쩌다 그정도의 위인이 되었을까 하는 껄끄러운 의문을 남겨둔채로 뒷이야기를 소화해가야한다 (아내와의 그 약속만으로 환골탈태 했다하면 딕체니를 너무 졸(卒)로 보는것 아닌가) 앞부분이 그러하니 그 뒤로 영화내내 불편함을 깔고봐야 하는것이다. 시간도 앞에서 꽤나 투자했는데도말이다 그래서 영화는 대내외적으로 알려진 사실들과 불러온 파장들에 다각적으로 집중하는데 그러면 이 영화의 맛이 단조로워진다 인물과 그의 행동에 따른 시너지와 파장이 함께 힘을 내야하는데 인물조형이 약해지면 균형이 틀어지기 때문이다 인간 딕체니의 기초가 부실하면 이영화는 빅쇼트처럼 그당시 정치 현상과 파장을 다룬 영화가 될 뿐이다 그순간 VICE의 의미가 약해진다 딕체니가 단지 많이 등장했을 뿐이지 그 시간만큼 부시에게 투자했거나 럼스펠드에 투자했어도 현상과 결과와 파장은 동일하니까 영화의 방향성에 영향이 가지 않았을거라는거다 (제목만 바꾸면 된다) 그래서 인물에 소모한 시간 만큼 계속 끓였던 빅쇼트가 맛이 진할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를 택한 제작진의 심정을 이해한다 중심에 있었으나 비밀스런 인생 자체가 극적이니까 하지만 결과물을 보는 우리가 기대하는건 그의 내면과 비밀을 해소해주길 바라는것이지 비밀스럽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려는게 아니기에 빅쇼트 처럼 현상을 중심으로 다루는걸로 만들었거나 아니면 조금더 인물을 뜯어볼 시간이 필요하지않았나 싶다 이렇게 아쉬움만 말하는데 세개반인 이유는 전작과 비교한 감상이기 때문이다 절대평가치는 그렇게 안나쁘거든 . 덧) 맨 앞과 쿠키영상 쿨해서 맘에듬
chan
3.0
-권력을 악이라는 형태로 빚어내는 시스템. 그 시스템의 원리를 체득한 괴물- . . (스포일러) 다른 영화들과 비교해 영화<바이스>의 가장 특이한 점을 하나만 꼽자면 바로 시작과 끝 장면이 가진 함의를 유사 오프닝과 유사 엔딩(쿠키영상)을 통해 모두 두 번이나 거듭 강조하여 설파한다는 것이다. 굳이 세세하게 따지자면 <바이스>의 첫 장면은 술에 잔뜩 찌들은 과거의 딕 체니(크리스찬 베일)의 모습과 권력의 최상단에 위치한 미래의 딕 체니를 연결하는 장면이겠지만 <바이스>는 신원불명의 내레이터가 개입함으로서 비로소 시작된다.(심지어 내레이터 스스로가 특정 지점에서 “이제부터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바이스>는 (당연히도) 딕 체니에 관한 영화지만 내레이터가 이야기의 시작을 선언하는 부분은 그의 아내인 린 체니(에이미 아담스)와 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내레이터에 따르면 <바이스>의 이야기는 린 체니가 본인의 모교에서 고학점을 취득하면서 시작한다고 한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린 체니는 구제불능의 처지인 딕 체니에게 본인의 젠더적 한계를 토로하며 자신을 위해서라도 앞으로 다른 모습을 보여 달라고 강하게 내쏜다. 누군지는 모르겠다만, 왜 화자는 이 지점을 영화의 시작이라고 해석한 것일까. . 해당 지점에서 약 40~5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영화는 이전까지의 분위기와 정 반대되는 느낌을 자아내는 훈훈한 자막을 삽입하며 영화의 막을 내리는 일종의 페이크 엔딩을 선보인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여기서 중요한 건 엔딩이 아니다. 더 중요한 건 이러한 페이크 엔딩에 이어 영화가 재차 시작되는 맥락이다. (페이크 엔딩은 말 그대로 ‘가짜’이며 새로운 시작을 위한 끝으로 보인다.) 영화는 부시(샘 록웰)의 전화로부터 다시 새롭게 시작된다. 여기서 영화는 전화를 받는 딕 체니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해당 장면에서 보이는 건 얼굴을 제외한 체니의 상반신과 하반신이다.) 저 멀리서 걸어오는 린 체니의 얼굴을 아웃 포커싱하며 오로지 통화가 온 그 순간만을 강조한다. 50분 전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그때 역시 영화는 달라지겠냐고 묻는 린 과 대답을 하는 체니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은 채 대답을 하는 체니의 사운드만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두 씬이 서로 병치가 되도록 만드는 오프닝 씬과 유사 오프닝 씬 사이의 연결고리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욕망의 부축임이다. 전자의 상황에서, 체니는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겠냐는 린의 질문에 “앞으로 달라질 게.” 라는 답 대신에 “실망시키지 않을 게.” 라는 답을 내놓는다. 린을 실망시키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린은 체니 이상으로 야망이 강한 인물이다. 자녀들이 세상의 구조를 이해하기에 턱없이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녀들에게 세상사는 힘과 권력으로 돌아가는 것임을 가르치고 체니가 자녀들과 백악관에서 장난을 치자 단호하게 이를 막아선다. 그녀는 권력 그 자체에 매혹된 사람이다. 하지만 사회적 젠더적 한계로 인해 그녀는 본인의 욕망의 실현이 불가능하고 남편의 성공을 통해서야만 비로소 대리 충족이 가능하다. 그런 린을 실망시키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권력에 대한 린의 욕망을 대신 실현시켜야 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위의 질문에서 만약 체니가 달라질 것이라 답했다면 아마도 그것은 인격적으로 보다 나은 사람이 되리라는 의미였겠지만 오히려 체니가 택한 답은 그 반대의 것이었다. 그렇게 린의 욕망은 체니에게로 전이되었고, 극중 내레이터는 이것이 <바이스>의 시작이라 해석했다. 말하자면 이 모든 이야기를 린이 일으킨 나비효과로 봐도 무방하다는 시각이다. . 그렇게 아내의 욕망을 전달받은 딕은 쉴 새 없이 점점 타락해간다. 내면의 타락과 외적 상승이 결부되어있다는 것이 체니라는 인물의 가장 큰 아이러니이다. 점점 망가져가는 체니에게 관객의 입장에서 마음 두기가 힘들어져가고 있을 무렵에, 체니는 의외의 선택을 감행한다. 그는 본인의 앞날과 딸의 안위 사이에서, 지체 없이 딸의 안위를 선택한다. 인물이 인격적으로 가장 높이 위치한 상태에서, 영화는 이야기를 일시 중단한다. 하지만 부시의 전화로 잠재되어 있던 체니의 욕망이 다시금 자극받는 순간, <바이스>의 이야기는 재차 시작될 수밖에 없어진다. (따라서 영화의 페이크 엔딩은 순간의 웃음을 위한 장난질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바이스>의 훈훈한 페이크 엔딩에는 그때 만약 부시가 체니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면 이라는 가정의 쓸쓸함이 배어있다. 영화가 두 번째로 시작되는 지점에서 체니는 순전히 린의 욕망을 대신 실현하는 대리인이 아니다. 그는 권력의 중심부에서 본인이 겪은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본인만이 추구하는 욕망의 형태를 학습한 무서운 인물이 되어있다. 아내의 꼭두각시에서 반대로 누군가를 부려먹는 위치가 된 그는, 인격적인 측면에서는 점점 더 파국으로 치닫고 권력의 측면에서는 점점 더 하늘로 치솟는다. . 그런데 이야기를 이렇게 나눠서 본다면 오해의 소지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 그렇다면 영화의 감독 아담 멕케이는 특정 인물들이 딕 체니에게 권력을 부축인 순간을 강조함으로서 결정적 잘못을 부시와 린의 몫으로 돌리는 것인가? 당연히도 그렇지는 않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논조를 고려하였을 시에 얼토당토않은 의문은 아니다. <바이스>는 시종 딕 체니를 조롱하고 비판하지만 동시에 <바이스>는 딕 체니를 이해하려 열심히 노력한다.(영화를 다 보고나면 결국 영화의 내레이터는 딕의 심장이 된 인물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화는, 딕 체니라는 인물에 대한 비판 이전에 딕 체니라는 괴물을 낳은 시스템에 대한 비판을 선행한다. 딕이 예일대학에서 퇴학당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막일을 하고 있을 때, 동료 작업자 한명이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난다. 체니는 다친 동료를 걱정하는 눈으로 바라보지만 작업 관리자는 체니를 포함한 다른 작업자들에게 다시 본인의 자리로 돌아가 작업을 계속하라고 지시한다. 결국 체니는 일의 전체적인 능률을 위해서는 소수의 희생은 눈여겨 볼 틈이 없다는 것을 노동자 계급에서부터 학습한 셈이다. 후에 체니는 럼즈펠드(스티브 카렐)의 밑에 와서도 대의라는 명분하에 무고한 소수가 아무렇지도 않게 희생되는 광경을 목도한다. 캄보디아에 폭격이 떨어져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장면을 혼자 상상할 때, 그는 윤리적 차원에서 진지하게 본인의 직업에 대해 숙고했을 것이다. 허나 시스템을 갈아엎을 독창적인 패러다임을 제시할 창의적인 인물이 아니라면 성공을 위해선 시스템 아래 복종하는 수밖에 없고 그 역시 마찬가지의 노선을 밟는다. . 영화 <바이스>가 다루고 있는 권력부라는 시스템은 여러모로 감독의 전작인 <빅쇼트>의 시스템을 상기시킨다. 두 영화 모두에서, 극중 인물들의 성공이나 성취에는 국민들의 막심한 손해가 필요하다. 또한 두 영화의 시스템은 시스템 내에 속한 인물들의 탐욕을 자극한다. 시스템이 인물들의 욕망을 부축일 때, 그 인물들의 욕망이 시스템 외의 인물들의 실패를 가중시킬 때, 아담 멕케이는 진정 그 시스템이 부패한 것이라 말한다.(물론 영화는 시스템 내에 속한 인물들의 과실 또한 간과하지 않는다. 영화 속 시스템은 소수가 흥하고 다수가 망하는 구조지만 극중 인물들은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라고 본인들의 악행을 재차 합리화한다.) . <바이스>는 권력에 대한 욕구가 시스템 안에 들어가면 악이라는 형태로 빚어지는 메커니즘에 대해 칼을 겨눈다. 사실 21세기에 들어서 ‘권력’이라는 단어는 자동적으로 우리에게 부정적 인상을 안겨주지만 사실 권력의 본래 뜻을 고려해보면 이를 마냥 부정적이라 보기는 힘들다. 결국 권력을 악으로 만드는 것은 권력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시스템이다. 따라서 인물 이전에 시스템을 비판하는 영화의 방식은 상당히 합당하다. 그런데 여기서 앞서 우려한 경우가 재차 발생한다. 딕 체니는 분명 악인이다. 허나 시작부터 인물을 악인이라 낙인찍어버리면 비난의 화살이 오로지 인물에게 날아감으로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불가하다. 그렇다고 시스템의 비판을 위해 절대적 악인으로 인식되는 인물에게 선한 인상을 부여하면 인물에 대한 옹호라는 관객의 비난이 가능해진다. (영화의 소재가 소재인지라 <바이스>는 이러한 측면에서 위험한 부분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양자사이의 딜레마에서 영화는 하는 수 없이 처음에는 인물을 나름대로 선한, 정확히 말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인물로 설정했다.(딕의 첫 모습을 술에 잔뜩 취한 만신창이 상태로 등장시킨 건 영화가 조롱에 대한 욕구를 참고 참다 그 와중에 선택한 나름의 임시방편이라 보인다.) 그렇게 시스템의 여러 문제점들을 확립한 영화는 딕 체니를 비판할 나름대로의 명분이 생겼다. 시스템이 악을 종용하는 건 사실이지만 어찌됐든 딕 체니가 그 안에서 악행을 행한 건 사실이니 시스템의 추악함이 드러난 이제부터는 딕 체니를 마음껏 조롱해도 시스템과 딕 체니에 대한 비판의 균형이 잡힐 것이고 또 시스템에 대한 비판에 집중하다 되려 인물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냐. 라는 질문에 대응해야할 경우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애초에 중립을 지키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소재이긴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바이스>가 나름의 중립을 지키는 방법은 딕 체니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중반부를 지나면 영화는 각종 방법을 동원해 딕 체니를 잔인할 정도로 조롱하고 조소한다. (최종적으론 삭제되긴 했지만 심지어 뮤지컬의 방식도 풍자에 동원되었다고 한다.) . 영화가 점차 진행될수록, 악한 시스템과 악인의 경계는 점차 희미해진다. 체니의 심장에 관련된 에피소드는 그 희미한 경계에 대한 단적인 예시가 된다. 그가 조금씩 타락해 나갈 때마다 일종의 불운한 징조처럼 보였던 그의 심장 통증은 마침내 문제를 일으킨다. 허나 그의 심장은 제 생명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본 영화의 내레이터의 심장을 이식받음으로서 다시금 되살아난다. 본 영화의 내레이터는 노동자 계급의 평범한 소시민이며 체니와 부시의 정책으로 인해 파병까지 다녀온, 지극히 보통의 미국시민이다. 한 국민의 죽음이 본인의 생을 연명케 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순간 그의 운명은 권력부와 노동자 계급사이에 자행되는 착취의 메커니즘과 정확히 겹쳐지고 마침내 체니는 시스템의 악한 논리체계를 그대로 체득한 괴물로 거듭난다. 그리고 영화는 그 순간을 더더욱 잔인하게 끌고나가려한다. 체니가 심장을 이식받을 때, 우리가 보는 심장은 체니가 이식받는 내레이터의 심장이 아닌 부패할 대로 부패한 체니의 심장이다. 그리고 그 심장과 교차로 편집되는 것은 딸의 명예와 본인의 권력을 바꿔치기 하는 체니의 치졸한 낯짝이다. 당신이 인간이긴 한 것이냐고 일갈하는 듯한 해당 장면은 <바이스>의 가장 처연한 순간이다. 사실 그가 시스템에 점차 동화되고 있었음을 영화는 편집을 통해 초반부터 이미 보여준 바가 있다. 영화의 초반부, 장인이 장모를 살해한 것만 같은 물증은 없고 심증만 있는 상황에서, 체니는 본인의 가족을 위해 심증만으로 장인을 거칠게 몰아낸다. 이처럼 심증만을 가지고 행동했던 것은 가정이란 환경에서는 꽤나 의로운 행동으로 남았다. 허나 유사한 태도와 행실이 권력이라는 시스템에 들어갔을 시에는 예기가 꽤나 달라진다. 체니가 장인을 몰아내는 장면에 이어 영화는 곧바로 수십년이 점프한 배경인 체니의 노인시절로 넘어간다. 해당 시점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이전과 유사한 체니의 태도다. 테러에 대한 확실한 물증은 없고 심증만 있는 상황에서 체니는 건강식과 관련된 가벼운 농을 하며 본인의 심증만을 믿은 채 무시무시한 결단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린다. 같은 신념을 가지고 행했던 일이 가정이라는 시스템에서 가장이라는 직책을 통해서는 정의롭게 구현되었지만 권력이라는 시스템아래 정치인이라는 직책에선 적국과의 갈등을 가속화한, 정반대의 형식으로 구현됐던 것이다. 이처럼 영화는 권력이라는 시스템이 체니의 개인적 성향을 부정적인 방향으로 부추기는 방식으로 작동했음을 영화의 초반부터 보여줌으로서 인물이 시스템과 만나는 순간, 딕 체니라는 괴물의 탄생은 필연이었음을 방증했던 것이다. . 앞서 유사한 함의를 지닌 시작이 두 번 반복되었던 것처럼, 마무리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반복된다. 영화의 엔딩에서, 영화의 제목 그대로인 vice(악) 그 자체가 되어버린 체니는 인터뷰 도중에 관객을 향해 자리를 고쳐 앉으며 궤변에 가까운 본인의 주장을 강력하게 피력한다. “당신들을 모실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 난 당신들이 앉혀준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라고 악이 교묘하게 책임을 우리 쪽으로 돌려버릴 때, 그리고 관객은 그 책임을 온전히 악인의 몫으로 떠넘기는 순간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며 모두가 방기하는 이 상황은 섬뜩하게 다가온다. 영화는 재치 있는 쿠키영상을 유사 엔딩으로 삼음으로서 본인의 주장을 공고히 하려한다. 영화의 쿠키영상은 어딘가 이상하다. 분명 부시 시절에 여론조작을 위해 모인 구성원들 인줄로만 알았던 이들이 힐러리와 트럼프, 그리고 분노의 질주에 대해 논한다는 것은 분명 타임라인을 진지하게 따져본다면 이치에 어긋나는 장면이다. <바이스>가 타임라인을 어기면서 까지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영화 속 참극이 비단 과거의 일만이 아니라는 영화의 시의성이며 더더욱 힘주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소수의 정신 나간 엘리트들이 나라를 말아먹고 있는데도 분노의 질주나 논하고 있는 대중들의 우매함이다. 차라리 트럼프에 관해 토론하며 추하게 쌈박질을 하는 노인네들이 더 낫다고 말하는 듯한 해당 장면에는 애덤 맥케이 특유의 주제의식이 엿보인다. 전작인 <빅쇼트>에서, 어떻게 그렇게 많은 국민들이 일자리를 잃고 집을 잃었던 것일까. <바이스>에서, 어떻게 그런 비열하고 줏대 없는 인물들이 전 세계를 쥐락펴락할 수 있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대부분이 금융에 관심이 없어 본인이 사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옆집 이웃 따라 주식을 매매했고 대부분이 정치에 관심이 없어 그냥 주변의 흐름에 편승하였고 그 타락한 인물들을 그 자리에 앉혔으니까. 시종 시스템과 시스템 내부를 겨냥하던 영화가 그 시스템의 존재 자체를 가능케한 이들을 강하게 노려보는 대목이다. 비단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미국의 역사일 뿐 이라고 손쉽게 단정지으며 그 비판의 잣대에서 벗어나오기엔, 한국의 관객 또한 윤리적인 측면에서 부끄러움을 느낄만한 여지가 상당하다.(<빅쇼트>와 <바이스>는 묘하게도 한국의 역사와 겹쳐지는 부분이 많다.) . “진실은 시와 같다. 많은 사람들은 시를 혐오한다.” <빅쇼트>의 인상적인 한 대사다. 속뜻을 곱씹고 활자 뒤에 숨겨진 의미를 사유하는데 시의 진정한 의미가 있듯이, 겉치레에 현혹되지 말고 속뜻을 헤아리는 과정을 귀찮아하지 말라고 애덤 맥케이는 두 작품을 통해 간곡히 부탁한다.
윤제아빠
3.5
미국 이라는 나라의 권력자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이따위 방식들. . . #미국뿐이겠어 #대한민국이나 #도긴개긴이지 #얘들스케일이 #큰거빼고나면 #권력이뭐라고
이건영(everyhuman)
3.5
바이스의 바이스, 조용히 있는 사람을 조심하라.
메뚜리언
3.5
이 영화의 베스트는 중간 엔딩 크레딧과 쿠키 영상 # 그래서요? # 에라 모르겠다. 오렌지나 까먹자.
김병우
4.0
추하디 추한 미국의 흑역사를 배짱있게 까발린 베일과 맥케이에게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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