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챠보안관^^74.0아카이브 필름측면에서 도전적인 작품이란 생각. 편집 리듬이 특히 뛰어난 영화였고 나레이션에 삽입된 정여름 감독의 문장 하나 하나 사려깊고 뛰어난 사유가 담겼음에 감탄했다. 무엇도 찍지 않았지만 영화가 지시하는 모든 것을 건드리는 영화. 아찔하다.いいね21コメント0
ygh_光顯3.0영화의 이미지는 대체제로의 다양성은 총족 시키나, 그 이미지의 현존이 가지는 다층적인 의미의 가능성으로 넓게 뻗어나가기엔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주제를 이 정도 러닝타임으로, 일관된 태도의 암묵적이면서도 노골적인 내레이션으로 탐구하는 것은 이미지와 언어 간 간극의 복잡성을 은근히 제한시킬 뿐만 아니라 안일하고 얄팍한 선전물임을 전면적으로 드러내는 형상이 된다. 오히려 영화는 더 직접적이고 강한 추진력으로 현존 너머의 무형의 이미지를 찾아 떠났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いいね12コメント0
율은사랑4.5온라인에서 찾을 수 있는 실제 푸티지 영상과 가상 이미지를 혼합하면서 역사와 이념을 폭넓게 가로지르는 몽타주를 다루는 감각이 가히 놀랍다. 감독이 직접 카메라를 들지 않고도 온라인을 세상의 거울로서 다루는 점이 새롭다.いいね5コメント1
상맹3.5사실 메세지는 그렇다치고 사유와 맥락의 깊이가 그렇게 다층적으로 가지는 않아서 다 끄덕여지지는 않지만 맥락을 쫓기 위해 차용한 증강현실, 구글맵, 푸티지 등의 방법론들과 은유적인 내레이터들이 빛을 발한다. 너무 많이 언급이 되어서 기대한만큼 기회가 되어서 봤지만 영화계라기보다는 미술관에서 보는 미술계의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느낌. 물론 이런 경계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いいね4コメント0
gegenlicht4.0a) 신축과 산출의 영화. 연약한 것들은 우리에게 구원의 감각을 일깨운다. 영화는 이미지들을 잡아 늘리고 또 구부려서 경화(물화)된 이미지들을 한껏 부드럽게 만든다. 때로는 거의 파괴에 다다를 때까지 이미지의 응력을 실험하는데, 거기에는 스스로를 산출하는 코나투스의 자기증명이 아니라 자기-비움을 통한 산출인 케노시스의 실천이 있다. b) 들뢰즈는 린네식 종 분류법을 따를 것이 아니라 개체의 실존력(응력)을 보여주는 (아펙티오의 함수를 미분한 것인) 정동의 일람카드를 만들 것을 제안하는데, 이를 이어받아 이미지 역시 그에 따른 정동의 일람카드를 만들어야 한다. c) ‘그리스어로 ‘희다’라는 뜻을 가진 ‘그라이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백발에 주름 투성이인 여자의 모습이라고 한다. 즉 아이도 노인도 아닌 것,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비결정지대에 해당한다. 늘 새로움을 가장하지만 사이비 새로움인 상품과도 같이 용산 미군기지의 이미지는 홈타운 테마파크라는 시뮬라크르의 ‘낡은 새로운 것’에 다름 아니며, 과거의 아카이브인 푸티지 이미지가 지금 영화에서 인용과 사용 속에 놓일 때 그것은 아이가 태어날 때와 같은 탄생성을 얻는다.いいね3コメント0
CHA4.0한반도의 심장부는 지난 한 세기를 넘어 지지난 세기부터 외래의 神에 점령되고 있다. '이주자'의 정체성을 가지면서도 신격에 가까운 모양을 가진 주둔자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いいね1コメント0
왓챠보안관^^7
4.0
아카이브 필름측면에서 도전적인 작품이란 생각. 편집 리듬이 특히 뛰어난 영화였고 나레이션에 삽입된 정여름 감독의 문장 하나 하나 사려깊고 뛰어난 사유가 담겼음에 감탄했다. 무엇도 찍지 않았지만 영화가 지시하는 모든 것을 건드리는 영화. 아찔하다.
ygh_光顯
3.0
영화의 이미지는 대체제로의 다양성은 총족 시키나, 그 이미지의 현존이 가지는 다층적인 의미의 가능성으로 넓게 뻗어나가기엔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주제를 이 정도 러닝타임으로, 일관된 태도의 암묵적이면서도 노골적인 내레이션으로 탐구하는 것은 이미지와 언어 간 간극의 복잡성을 은근히 제한시킬 뿐만 아니라 안일하고 얄팍한 선전물임을 전면적으로 드러내는 형상이 된다. 오히려 영화는 더 직접적이고 강한 추진력으로 현존 너머의 무형의 이미지를 찾아 떠났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줄리의 선택
4.5
조용히 은신해있던 조각들이 그녀의 손 아래 하나하나 맞춰져갔다.
율은사랑
4.5
온라인에서 찾을 수 있는 실제 푸티지 영상과 가상 이미지를 혼합하면서 역사와 이념을 폭넓게 가로지르는 몽타주를 다루는 감각이 가히 놀랍다. 감독이 직접 카메라를 들지 않고도 온라인을 세상의 거울로서 다루는 점이 새롭다.
상맹
3.5
사실 메세지는 그렇다치고 사유와 맥락의 깊이가 그렇게 다층적으로 가지는 않아서 다 끄덕여지지는 않지만 맥락을 쫓기 위해 차용한 증강현실, 구글맵, 푸티지 등의 방법론들과 은유적인 내레이터들이 빛을 발한다. 너무 많이 언급이 되어서 기대한만큼 기회가 되어서 봤지만 영화계라기보다는 미술관에서 보는 미술계의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느낌. 물론 이런 경계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gegenlicht
4.0
a) 신축과 산출의 영화. 연약한 것들은 우리에게 구원의 감각을 일깨운다. 영화는 이미지들을 잡아 늘리고 또 구부려서 경화(물화)된 이미지들을 한껏 부드럽게 만든다. 때로는 거의 파괴에 다다를 때까지 이미지의 응력을 실험하는데, 거기에는 스스로를 산출하는 코나투스의 자기증명이 아니라 자기-비움을 통한 산출인 케노시스의 실천이 있다. b) 들뢰즈는 린네식 종 분류법을 따를 것이 아니라 개체의 실존력(응력)을 보여주는 (아펙티오의 함수를 미분한 것인) 정동의 일람카드를 만들 것을 제안하는데, 이를 이어받아 이미지 역시 그에 따른 정동의 일람카드를 만들어야 한다. c) ‘그리스어로 ‘희다’라는 뜻을 가진 ‘그라이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백발에 주름 투성이인 여자의 모습이라고 한다. 즉 아이도 노인도 아닌 것,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비결정지대에 해당한다. 늘 새로움을 가장하지만 사이비 새로움인 상품과도 같이 용산 미군기지의 이미지는 홈타운 테마파크라는 시뮬라크르의 ‘낡은 새로운 것’에 다름 아니며, 과거의 아카이브인 푸티지 이미지가 지금 영화에서 인용과 사용 속에 놓일 때 그것은 아이가 태어날 때와 같은 탄생성을 얻는다.
조성호
3.5
흥미롭고 재밌는 짧은 다큐멘터리. 편집도 좋았고, 기승전결의 미덕! siff2020 단편경쟁7
CHA
4.0
한반도의 심장부는 지난 한 세기를 넘어 지지난 세기부터 외래의 神에 점령되고 있다. '이주자'의 정체성을 가지면서도 신격에 가까운 모양을 가진 주둔자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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