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eorm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
평균 3.5
피노체트의 쿠데타. ================ It's Raining on Santiago는 Helvio Soto가 감독한 1975년 프랑스-불가리아 드라마 영화로, 1973년 칠레 쿠데타를 자세히 설명합니다. 제목은 칠레군이 쿠데타의 시작을 알리기 위해 방송했던 암호어다. 칠레를 배경으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쿠데타로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을 실각시키고 군사 독재자로 등판하는 과정을 다룬 영화이다. 피노체트가 집권한 해가 1973년이고 이 영화가 나온 게 1975년이니 프랑스가 진짜 빠르게 피노체트를 비난하며 나선 것이다. 물론 그 당시 프랑스의 진보적 좌파운동의 강세와 사실상 살해당한 거나 다름없는 아옌데가 진보 성향이었던 것과도 관련이 있을 듯. 이 영화의 감독 엘비오 소토는 이후 딱히 유명한 영화를 찍지 못했다. 참고로 엘비오 소토는 칠레에서 프랑스로 망명한 칠레인 감독. 음악은 포스터에도 나와있듯이 <오블리비언>으로 유명한 "아스토르 피아졸라"가 맡았다. 이 영화의 제목은 쿠데타 당시 라디오에서 송출하던 '오늘 산티아고에 비가 내립니다'에서 따왔다. 대한민국의 화려한 휴가랑 비슷한 경우. 1973년 9월 11일 칠레 군사 쿠테타, 그 날 칠레 수도 산티아고의 라디오에서는 계속해서 "오늘은 산티아고에 비가 내립니다"라는 방송을 하였다. 그것은 군부가 보낸 쿠테타 신호의 암호였다. 그리고 문민 정치를 부르짖던 아엔데의 신사회주의 정권은 미국의 지원을 받는 피노체트 장군에 의해서 무너진다. 이 날의 상황을 다큐멘타리 터치로 찍은 영화가 칠레에서 망명한 엘비오 소토 감독이 그날의 쿠테타 암호를 제목으로 했었던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라는 영화였다. 대통령 관저로 쳐들어가는 군대와 이에 맞서 싸우는 아옌데 대통령과 지지자들, 그리고 옆 구내에서 총살되는 노동자의 모습이 이어지고 영화 <실종>에 등장했던 그 운동장에서 포크송 가수 빅토르 하라가 "우리 승리하리라"라는 합창을 유도하다가 손목을 잘린 뒤 매맞고 죽임을 당하는 모습들이 다시 재현되었다. 그날 운동장에 울러퍼지던 "우리는 승리하리라"라는 뜻인 템 세레무스의 합창은 허공에 메아리로 그냥 사라지지않고 마침내 3년 뒤 피노체트 정권은 국민들의 투표로 권좌에서 물려난다. ------------------- 1.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은 자국의 구리 광산 국유화를 추진했다. 칠레의 자원인 구리로 이득을 보는 것은 칠레 국민이 아니라 초국적 기업이었기 때문이다. 엄청난 이윤을 제공하는 구리 광산의 독점적 운영권을 잃고 싶지 않았던 초국적 기업 케네코트, 아나콘다, ITT, 포드 자동차, BOA, 시티은행 등은 월리엄 로저스 국무장관을 찾아갔다. 우리의 세계 경찰 미국은 이들 기업과 함께 칠레에 대한 경제 봉쇄를 하기로 한다. 이에 칠레의 아옌데 대통령은 미국계 초국적 기업이 15년간 칠레에서 빼내간 초과 이윤이 무려 7억 7천 4백만 달러에 달한다는 것을 지적했다(초과 이윤: 1955년 해외 기업들이 칠레 정부에 약속한 연간 12%의 적정 수익률을 초과한 이윤). 그는 성명을 통해 이 7억 7천 4백만 달러를 앞으로 구리 광산 인수 보상금에서 공제하겠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칠레 정부는 구리 광산 국유화를 위해 추가로 지불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 칠레 내부의 신자유주의자를 신봉하는 극우 정당들도 이러한 정부의 정책에 반대할 수 없었다. (속으로는 칼을 갈며, 후일을 도모했겠지만) 충분히 합법적이었고, 국민은 이미 정부의 편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옌데 정부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칠레 경제는 수요만큼 공급할 수 없는 구조를 지녔다. 아옌데 대통령 취임 후 소득은 급격하게 늘었고, 이러한 소득은 소비로 이어졌는데 그 소비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칠레 내부에서는 없었던 것이다. 즉, 칠레 사람들은 각자 돈은 많은데 살 물건이 없었다는 것. 더구나 칠레는 식량 등 필수 소비재를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어 수입에 의존해야 했다(식량을 수입에 의존해야 했던 것은 농지 개혁의 지연으로 농업 생산성이 떨어져서였다). 저소득층의 생필품 수요가 증가하자, 아니나다를까 가격이 올랐고, 수입이 증가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제 구리 가격이 떨어져 1972년엔 무역수지 적자가 2억 5천만 달러에 이르렀고, 국제수지불균형으로 보유 외화는 바닥을 드러냈다. 세계의 경찰 미국은 비축해둔 구리를 풀었지만 기대했던 결과는 이루어내지 못했다. 국제 여론도 미국의 편은 아니었다. 그러자 미국은 칠레 내부에서 칠레를 무너뜨리려 했다. 2. 칠레는 철도가 발달해 있지 않아 도로를 통한 물자 수송이 대부분이었다. 이에 칠레 정부는 교통 여건 개선을 위해 국영 운송회사 설립을 발표했고, 트럭차주총연맹에 속해 있던 5만여 명의 트럭 운전사들이 반발했다. 당시 트럭차주총연맹의 신임 의장 레온 빌라린은 원래 사회당 활동가였지만, 이땐 CIA와 연결돼 있었다. 트럭차주총연맹은 파업을 했다. 물자 수송은 정지되었다. 잠깐 몸을 사리던 국민당과 기독교민주당이 트럭운전사들과의 연대를 선언했다. 트럭차주총연맹이 긴 기간 동안 파업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CIA가 준 검은 돈이 있었다. 이어서 상점이 파업을 시작했고, 기독교민주당의 영향권 내였던 의사, 변호사, 기술자 은행원 등 전문직종의 단체들이 잇따라 파업을 했다. 이들은 "사회 소유 부문 확대 중단"을 요구했다. 칠레 정부가 통제할 수 없었던 그 상황에서 민중 권력 기구들이 나섰다. 공장주와 사무직, 기술직 사원들이 나간 작업장에서 노동자들은 "산업 조정 위원회"(산업 코르돈)을 조직해 자주적으로 일을 해 나가기 시작했다. 경영진 없이 노동자들끼리 공장을 재가동했고, 며칠 후 90%이상의 작업장과 농장이 생산 활동을 했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지역별 코르돈이 결성되었고 공장 간 생산 연계를 조정했다. 각 지역의 코르돈은 기존의 JAP 조직들에 다양한 주민 조직들을 포함시켜 "자치 지도부"를 결성했다. 자치 지도부는 공장 내 트럭 등을 이용해 물자 수송을 하기 시작했고, 파업 중인 상점들 대신 "인민 시장"을 운영했다. 노동자들은 공장 생산물, 농민들은 농산물을 가져 와 인민 시장에서 팔거나 교환했다. 가가멜을 몰아낸 업그레이드판 스머프 마을처럼. 3. 1973년, 미국은 간과할 수 없는 흐름 속에서 무리수를 둔다. 이는 칠레의 이런 모습이 다른 나라에 미칠 영향까지 고려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미국은 6월에 칠레의 참모청장 프라츠 장군을 통해 쿠데타를 도모하려 했지만 장군은 이를 거절했다. 이후 장군 회의에서 갑자기 밀려난 프라츠 장군 대신 피노체트가 새 참모청장이 되었다(미국이 프라츠 대신 피노체트와 손을 잡은 것). 1973년 9월 11일, 새 참모청장 피노체트는 육군, 공군, 해군을 총동원한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다. 작전명은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 피노체트 측이 망명을 권유(물론 탑승 후 격추 계획 있었다고)하며, 헬기를 준비했지만 아옌데 대통령은 이를 거절, 마지막 라디오 대국민 연설을 남기고, 쿠바의 카스트로가 건네 준 소총으로 싸우다 죽음을 맞이했다. "확실히 이번이 제가 여러분들께 연설하는 마지막 기회일 겁니다. 공군이 마가야네스 라디오의 안테나들을 폭격했습니다. 제 말들은 쓰라림이 아니라 실망을 담고 있습니다. 아마 자신들의 맹세를 배반한 이들에게는 도덕적 처벌이 있을 겁니다. 칠레의 군인들, 이름뿐인 총사령관들, 스스로를 해군 사령관이라고 칭한 메리노 장군, 그리고 바로 어제 정부에 대한 충성을 서약했고 스스로를 (준군사 경찰) 카라비네로스의 총장으로 임명한 비열한 장군 멘도사씨. 이런 상황에서 저에게 남은 건 오직 노동자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제가 사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역사적 변천 과정에 처해서 저는 일생 동안 인민들에게 충성한 대가를 치를 겁니다. 그리고 여러분들께 말씀 드립니다. 제가 수많은 칠레인들의 양심에 뿌린 씨앗이 영원히 시들어버리지는 않을 것임을 확신한다고 말입니다. 그들은 무력이 있고 우리를 지배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사회의 진행은 범죄로도, 무력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의 것이고, 인민들이 역사를 만듭니다. 내 조국의 노동자들이여, 여러분이 언제나 보여줬던 충실함 그리고 헌법과 법률을 존중하겠다고 했고 실제로 그것만 했으며 정의에 대한 위대한 갈망의 해석자에 불과한 이에게 주셨던 신임에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바로 이 결정적인 순간, 제가 여러분께 연설할 수 있는 이 마지막 순간, 저는 여러분이 교훈을 잘 활용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외국 자본, 제국주의가, 반동세력과 함께, 군부로 하여금 자신들의 전통을 깨뜨리게 만드는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사실에서 말입니다. 이 전통은 '슈나이더 장군'이 가르친 것이고 '아라야 사령관'이 재확인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두사람은, 오늘날 자신들의 이익과 특권을 계속 지키려고 외국의 도움으로 권력을 다시 정복하려 하는 바로 그 사회 세력들의 희생자들이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이 땅의 품위 있는 여성, 우리를 믿는 농부, 아이들에 대한 우리의 염려를 아는 어머니, 바로 당신에게 말합니다. 저는 칠레의 전문직들 (다시 말해), 자본주의 사회의 이점을 옹호하는 직능 결사체들, 최고급 결사체들이 지지하는 반란에 맞서 계속 애써온 애국적 전문직들에게 말합니다. 저는 젊은이들, 노래 부르고 우리에게 자신들의 기쁨과 투쟁 정신을 보여준 그들에게 말합니다. 저는 칠레의 남성, 노동자, 농부, 지식인, 이미 이 나라에 파시즘이 나타나 여러 시간 지속되고 있는 탓에 학대당하게 될 그들에게 말합니다. 행동할 의무가 있는 이들의 침묵 속에서 테러 공격, 다리 폭파, 철로 절단, 기름과 가스 수송관 파괴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결심이 굳습니다. 역사가 그들을 심판할 겁니다. 확실히, 마가야네스 라디오는 침묵할 것이고, 제 목소리를 전하는 차분한 금속 기계는 더 이상 여러분에게 도달하지 못할 겁니다. 이건 대단치 않습니다. 여러분은 앞으로도 계속 듣게 될 겁니다. 저는 언제나 여러분 곁에 있을 겁니다. 적어도 제 기억이, 조국에 충성한 위엄 있는 사람의 기억이 될 겁니다. 인민들은 스스로 방어해야 합니다만, 제 스스로를 희생해서는 안됩니다. 인민은 자신이 파괴되도록, 총알 세례를 받도록 놔둬서도 안됩니다만, 인민이 굴욕을 당할 수도 없습니다. 내 조국의 노동자들이여, 저는 칠레와 칠레의 운명을 믿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반역이 지배하려고 하는 이 어둡고 모진 순간을 극복할 것입니다. 머지않아 위대한 길이 다시 열리고 이 길로 자유인들이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걸어갈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칠레 만세! 인민 만세! 노동자 만세!" 4. 쿠데타 이후, 칠레는 여전히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물가 상승)에 시달렸고, 1974년엔 국제 구리 가격까지 떨어져 무역 수지 적자는 더욱 증가했다.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나타난 경제학자들은 밀턴 프리드먼의 통화주의를 신봉하는 시카고 보이스(Chicago Boys)였다. 케인스주의 대신 프리드먼의 통화주의가 채택된 것이었다. 시카고 보이스는 통화 가치를 절상하고, 정부 예산을 삭감했고, 금융 이동과 무역의 모든 장벽들을 철폐하고,(오! 데자뷰?!!) 남아있던 다수의 우량 공기업들을 죄다 팔아 치웠다(아, 정말 어디서 많이 봤다 싶지 않나요?). 시카고 보이스는 이를 충격요법(shock therapy)이라 불렀다. 그리고 1980년대 칠레는 시카고 보이스의 충격요법으로 다시 한번 경제 위기에 빠지게 된다. 통화주의는 말 그대로 화폐의 가치를 올리는 것이 목적이므로 화폐를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유리하다. 그런데 어떻게 이것이 경제를 살리는 방법이 될 거라고 믿을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정말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는 걸 새삼 확인하게 된다. 정말 궁금하다. 대체 누구의 경제를 살린다는 말일까? 5. 경제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만 이른바 "복지국가"에 갈 수 있다. 구조를 바꾸지 않은 상황에서 복지를 한다는 것은 우는 아이에게 사탕 하나 던져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경제구조를 바꾸는 그 기간에 신자유주의, 혹은 미국이 치고 들어온다. 지금의 상황이 웃긴 건 대한민국은 국민 국가면서, 경제 혜택은 오롯이 초국적 기업, 거대 자본에만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대자본과 정부가 벌여놓은 일 때문에 경제 위기가 오면 국민국가는 국민에게 국민의 의무를 다하라고 쇼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