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혜원
읽는 중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
평균 3.4
1 정치인에 이런저런 장점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지지하는 정치인이기 때문에 여러 장점의 존재가 증명된다는 것이다. 이런 세계관이 전제하는 것은 역시 '모두가 똑같다'라는 현실 인식이다.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이 정치적 이득을 위해 스스로가 주장했던 가치를 배신해도 '팬덤'이 용인하는 것은 애초에 정치인이 자기가 공언한 가치를 끝까지 지키는 정치란 불가능하고, 남는 것은 그 정치인이 얼마나 세속적으로 성공했는가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팬덤'의 첫 번째 결단, 즉 누구를 지지할지는 어떻게 결정되는 것일까? (중략) 어떤 정치인에 대한 '팬덤'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나'를 절대로 속일 수 없는 확정된 기준, 즉 부정할 수 없는 지지 요소가 있어야 한다. 대개 그것은 어떤 '피해'나 '손해'를 동반하는 물리적 차원의 것이다. 예컨대 '문재인 팬덤'에서 이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었다. 검찰과 결탁한 보수-기득권 정치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사망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검찰 및 보수-기득권 정치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대해야겠다는 결의가 '문재인 팬덤'을 구성하는 의미망의 중심이라고 볼 수 있다.(중략) 이러한 '팬덤 정치'의 반대편에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앞서 가치의 추구가 지지 대상의 유불리에 종속되는 게 '팬덤 정치'라고 했으므로, 그 반대편에는 유불리에 얽매이지 않고 타협 없이 가치를 추구하는 정치가 존재해야 할 것이다. 현실의 사례를 놓고 보면 영국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이나 미국의 버니 샌더스같은 류의 정치인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은 정치적으로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고집스럽게 원칙적 주장을 고수한 끝에 비주류로 전락했고, 말년에 가서야 잠시 빛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 정치 담론의 구도는 오히려 이런 원칙주의자들과 '팬덤 정치'를 똑같은 '극단주의'로 분류한다. 이 '극단주의'의 대척점에 있는 것은 정치적 실증주의를 신봉하는 '정치 기술자'들이다. 여기서 '정치 기술자'란 정치의 본질이 어떤 신념이나 열정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이런저런 조작에 있다고 믿는 부류의 사람들이다. 2 반면 트럼프는 후보 시절은 물론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도 온갖 거짓말과 협작을 아무렇지도 않게 동원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품격 있는 엘리트와 속물적 상인의 대립구도다. 정치에도 나름대로 지켜야 할 도가 있다는 매케인의 원칙주의적 태도에, <거래의 기술>이라는 책을 내기도 한 트럼프는 정치적 대회가 아닌 승리를 위한 '기술'만이 가치를 갖는다는 세계관으로 대항한 셈이다. 즉 트럼프가 2016년 실제로 대통령이 된 비결은 엘리트적 고상함을 사익을 추구하기 위한 '위선'으로 규정하고 이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로 일관한 데 있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런 점에서 트럼프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음모론자들은 '미국의 드루킹'쯤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실로 2016년부터 2020년까지의 미국 사회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트럼프식 세계관의 완벽한 승리였다.(중략) 그가 하류 계층에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지지자들이 계급적 위치가 아니라 이미지를 소비하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대중매체를 통해 보여준 자기중심적 화끈함이나 자기 잘못에 대한 기만적 정당화 등은 잘난 척하는 엘리트의 위선적 모습과는 다르게 느껴진다. 대중이 보기에 이것은 '꾸밈없는' 솔직함이다. 또한 트럼프는 특유의 과격성을 이유로 기성 정치로부터 조롱과 멸시, 배척을 당하면서 스스로 '피해자'를 자처한다. 비주류 정치에 포섭된 대중 역시 스스로 엘리트로부터 기만 당한 '피해자'로 믿는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이런 대목에서 트럼프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반엘리트주의가 피해자 서사를 통해 극우 포퓰리즘으로 수렴하는 것이다. 이 맥락 때문에 전통적인 인종주의 비판이나 성인지적 감수성을 향한 호소 등은 이들에게 별 효과가 없다. 효과가 있으려면 일단 자신들이 '다수'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데, 이들은 오히려 '핍박받는 소수'를 자처하며 '역차별'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중략) 21세기의 초입을 장식하는 극우 포퓰리즘은 대게 비슷한 모습이다. 이런 현실을 한탄하는 사람들은 극우 포퓰리스트를 지도자의 반열에 올려놓은 대중을 탓하기도 하고, 사람들의 피해 의식을 활용해 자기 목적을 달성한 포퓰리스트 지도자의 악마성을 공격하기도 한다. (중략) 정치를 통사적으로 파악한다면 결국 어떤 지도자를 만드는 것은 사회적 조건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트럼프가 아니었더라도 오늘날과 같은 시대였다면 비슷한 지도자가 탄생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리버럴' 평론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극우 포퓰리스트 지도자와 그 지지자들의 양식 없음을 탓하기만 해서는 문제의 핵심에 도달할 수 없다. 3 문재인 정권은 사회주의 계열 활동 이력은 별개로 놓더라도 김원봉이 독립운동에 기여했다는 사실 자체는 기릴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서훈 추서를 추진했다. (중략) 이에 대하여 정치권을 중심으로 반발이 커지자 국가보훈처가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했던 인물은 서훈 추서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재확인하면서 논란은 종결되었다. 그렇다면 정권이 애초에 쉽지 않고 정치적으로도 득이 되지 못할 일을 이렇게 추진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떠올릴 수 있는 것이 한일국교 정상화 이후 '반독재-반일', 즉 박정희에 대한 반대로 정체성을 확립하면서 좌익을 용인하게 된 장준하의 전례다. 문재인 정권은 자유주의 정치의 계승자로서 이 같은 움직임을 현재 이르러서도 이어나가려 했던 것이다. (중략) 한국 주류 정치는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반공'과 '반일'이라는 양대 축을 중심으로 한 의미망의 대결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작 자신들이 하겠다는 정치의 핵심을 적극적 방식으로는 설명하지 못하면서, 더 나아가서는 서로 모순되는 가치를 하나의 정치 세력 안에서 각자 주장하는 행태를 보이면서도 보수 정치의 지지자들이 '빨갱이' 서사를 거리낌 없이 쓰고 자율주의 정치의 지지자들이 보수 정치를 향해 '친일파'라는 딱지를 붙이는 현상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