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석미인

석미인

5 years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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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

영화 ・ 1996

평균 3.9

만삭의 수사관은 동창생인 한 사내를 만난다. 어처구니없는 거짓말만 늘어놓던 그는 그녀에게 수작을 걸다 제지당하고... 실질적으로 영화와 아무런 관련 없던 내용이라 역사상 가장 쓸모없는 씬이라 불리우는 이 장면 말이다. 왜 이 사내는 편집되지 않았던 걸까. 그리고 왜 그녀는 출산휴가를 떠나지 않았던걸까. 파고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대게 사소한 거짓말이 눈덩이처럼 커지거나 그것을 덮으려던 더 어처구니 없는 계획이 끔찍한 결말을 맞게 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이 좁아터진 시야의 임기응변들이 어딘가 모르게 낯설지 않다. 여섯 살 때의 일이다. 내 손엔 어쩌다 라이터가 쥐어졌는데 불장난 끝에 결국 거실 장판에 빵꾸를 내고 만다. 마침 그때 내게도 아주 탁월한 계획이 있었다. 일단 옆에 있던 탁자를 밀쳐내고 그 자리서 빵꾸가 난 격자무늬와 꼭 맞는 패턴을 찾아낸다. 칼로 그 부분을 살살 오려낸 다음 빵꾸가 난 부분에 오려온 장판을 그대로 이식. 수술 자국은 스카치테이프로 봉합. 탁자는 원래 위치를 깜빡하고 말았는데 그대로 엄마가 거실로 들어오셨다. 엄마는 정확히 두 발자국 뗀 다음 발바닥에 이물감을 느끼셨는지 장판을 유심히 바라보셨는데, 그때 엄마의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바로 그 표정을 이 영화에서 본다. 곧 들통날 거짓말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만삭의 수사관. 코엔 형제의 영화들을 흔히 부조리와 난센스로 해석하지만 내가 본 이 영화는 사실상 재연극에 가깝다. 내 어린 날의 어리석은 실수와 그것을 만회해보려던 더 어리석은 계획들의 재연 말이다. 우리가 엇비슷하게 공유하는 엄마 손바닥 아래의 일화들에서도 수사관이었던 엄마는 휴가를 얻어내지 못했던 거 같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