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라 색 후드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평균 4.3
잃어버렸던 시간을 창조적인 시간으로 바꾸는 대서사시 먼 훗날 내가 80대쯤 되었을 때, 내 인생이 별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갑자기 확 들 때, 그리고 그게 너무나 후회스럽고 그러지 않기 위해서 뭘 해야 될지 고민할 때, 마침 내가 소설을 쓰고 있을 때, 밋밋하고 흐릿한 나의 과거를 뚜렷한 이야기로 만들고 싶을 때, 나는 프루스트를 떠올리고 소설을 쓰기 시작할 것 같다. 시간이 붕괴되어 있다. 프루스트의 소설은 과거-현재-미래가 일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 미래에서 내가 과거를 회상하고, 그렇게 과거를 창조하며 현재에 영향을 주고, 미래는 과거를 창조한 과거가 된다. 미래는 과거가 되고 과거는 현재가 되며 현재는 다시 미래로 나아간다. 마들렌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다. 마들렌을 먹고 과거를 회상한다고 알고 있었다. 그게 아니었다. 엄마가 준 마들렌을 먹고 강렬한 기억이 떠오른다. 그것은 무의지적 기억이다. 내가 뚜렷한 장면 한 개를 떠올리는 의지적 기억과는 다르다. 냄새, 시각 등이 나를 강렬하게 붙잡고 흔들며 기억의 강에 던져버린다. 내가 기억하는 게 아니라, 기억이 나를 어딘가로 데려간다. 엄마가 준 마들렌은 나를 박살내버린다. 그리고 생각한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강렬하게 뒤흔드는 것일까? 무엇일까. 기억의 꼬리를 찾아가다가 또다른 기억이 떠오른다. 레오니 아주머니가 준 마들렌. 그때도 이랬다. 더 어린시절이어서 정확히 알 순 없었다. 이후로도 알 수 없었다. 지금도 알 수 없다. 아는 게 아니라 내가 기억을 만드는 것이다. 만들어가는 것이다. 어떤 마들렌이 나를 부르는 걸까? 현재 시점의 내가 마들렌을 먹고 있는 게 아니다. 마들렌 자체가 나를 수많은 갈래의 기억의 강으로 던져버리는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기억을 창조 중이다. 그러니 이 소설의 전체가, 잃어버린 기억을, 즉 새로운 기억을 찾아가는, 창조하는 과정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