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emoon

귀신들의 땅
평균 3.8
2024년 03월 13일에 봄
“The past is never dead. It’s not even past.”_William Faulkner 귀신에 대해 쓰고 싶었고 울음에 대해 쓰고 싶었고 하마가 등장하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는 작가는 자신이 줄곧 용징과 관련된 소설을 써왔음을 고백한다. 귀신과 울음, 하마를 쓰기 위해서 결국 돌아 돌아 용징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이야기할 수 없는 진실을 한가득 안고 죽은 자들. 톈홍의 가족은 실제로 죽었거나 정신적 죽음 상태에 처해 있다. 죽음의 끝은 망각이라는 점에서 잊히지 않은 자들의 이야기는 나쁜 소문으로, 남은 자들의 비밀로 남는다. 잊기엔 너무 강렬하고 밤이면 어김없이 죄책감이 찾아들고 핏줄로 혹은 사회적 약속 혹은 기억으로 질기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야기되어지기를 바라는 이들이 완전히 떠나지 못하고 귀신으로 남는 데에는 남은 자들의 몫도 있다는 말이다. 독일에서 자신의 연인을 죽이고 몇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톈홍의 서사는 그 자신의 이야기로 직결되는 대신, 다섯 누나와 큰형, 엄마와 아빠, 빨간 반바지와 옛 친구의 이야기를 차례로 우회한다. 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비현실적일 정도로 잔혹한 삶 앞에서 톈홍이 인과와 순서, 과거를 가늠할 때 어느 한 순간 불쑥 타인의 얼굴이 등장하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묻기도 전에 그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화자가 바뀌고 이야기가 터져나온다. 개인의 생은 물론이거니와 먼 시대까지 함께 소환된다. 누군가는 귀신을 믿지 않는다. 과거는 죽었고 죽는다는 것은 이곳에서 없어지는 것이고 그렇기에 다 지나간 이야기라고 한다. 또 누군가는 하마를 믿지 않는다. “저기, 밭 가장자리에 죽은 하마가 한 마리 있어”라고 할 때, 정말 그곳에서 하마를 본 적 있는 이는 스스로의 기억을 의심하고, 본 적 없는 이는 거짓을 확신한다. 하마가 있다고, 그땐 그 하마가 살아 있었다고 말하는 이는 ‘미치광이’로 불린다. 그래서 <귀신들의 땅>은 그 땅에서 자라 그 땅을 기억하는 미치광이 천쓰홍의 기록이다. 분명 존재하나 드러나 보이지 않고, 흔적은 소문이 된 사람들. 미치광이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진실에 슬픔이 사무친다. 남아선호사상, 가정 폭력, 퀴어 혐오, 배금주의, 사상 검열까지. 이 땅이든 저 땅이든 어느 곳에서 온 누구라도 금세 이입하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소재로 가득하다. 결국 귀신과 하마, 용징을 모르는 이들까지도 불러 모을 수 있는 힘은 ‘슬픔’에 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