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eona

몽소 빵집
평균 3.6
작년 가을이었나, 파리의 한 바에서 술을 마시다 어떤 할아버지와 오래 대화를 하게 됐는데, 내가 영화를 공부한다고 하니까 프랑스 영화 중엔 뭘 좋아하냐고 물었다. 나는 이런 저런 감독들 얘기를 하다 에릭 로메르의 영화도 좋다고 했다. 한국의 내 방 벽에는 “여름이야기”의 스틸 사진이 붙어있었다고. 그랬더니 할아버지가 이 단편 영화를 추천했다. 파리에서 찍은 영화인데 재밌다고 꼭 보라며 내용도 열심히 설명해주셨다. 그러면서 나중에 파리를 배경으로 어떤 영화를 찍고 싶은지, 어디서 찍고 싶은지도 물었다. 예전 필름 시대 때 영상을 찍고 필름을 직접 잘라서 편집했던 얘기도 해주셨다. 나도 아시아 영화들을 추천했고, 점점 긴장이 풀려서인지 앞으로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막 떠들어댔다. 할아버지는 느리고 어설픈 내 프랑스어에도 답답한 기색 한 번 없이 귀 기울여 들어주었고, ‘너 말 참 잘 하는구나. 너와 대화를 나누는 게 정말 즐겁다’ 하며 웃으셨다. 부족한 언어 실력에 자신감은 떨어지고, 조바심과 불안감의 연속인 유학 생활에 그 작은 말이 참 위로가 됐었다. 그 날 집으로 돌아가던 길, 사람이 거의 없는 밤거리를 걸으면서 파리는 참 아름다운 도시라고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바쁘게 살다가 문득 생각나 이제서야 이 영화를 봤는데 그 때 나눈 대화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이런 식으로 한 영화와 내 삶이 연결되는 지점이 생기면 그 영화는 잊을 수 없게 된다. 영화가 이렇게 내 삶에 파고들어 오는 순간이 하나씩 늘어갈수록 영화를 더 사랑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