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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꽃
평균 3.3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되어도 그 속에서 피어나고자 하는 꽃. (※ 이하 스포주의) 전작 <스틸 플라워>는 끊임없이 거칠게 흔들렸다. 제대로 서있을 수조차 없는, 차마 서있기만 해도 역겨운, 그런 불안정하고 사악한 세계 속에서 하담은 꿋꿋이 버틴다. 카메라는 그런 하담을 마치 놓칠 새라 쫓아가다시피 잡아내려고 했다. 반면, <재꽃>은 완전히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픽스된 카메라로 한치의 흔들림 없는 세계를 담는다. 인물을 격렬히 쫓기보다는 롱숏와 풀숏을 통해 조용하고 평화로운 풍경 속에 인물을 그대로 담아낸다. 그러나 지극히 평화로운 그 세계가 뒤틀렸을 때, 비로소 카메라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들꽃>을 보지 못해 뭐라 단언할 순 없지만) 말하자면 그의 카메라는 그가 그려내고자 하는 세계와 오롯이 조응한다. 다르덴 형제의 카메라처럼도 느껴지는 몇몇 지점이 있지만, 적절한 위치에서 적합하게 움직이는 카메라는 분명 그가 원하고 이해하는 세계를 위해 헌신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캐릭터 가학을 통해 얻어내는 희망이 불만이었던 <스틸 플라워>처럼 <재꽃> 역시 투정을 부리고 싶어진다. 말도 안 될 정도로, (다만 불완전한) 선의지로 가득한 세계를 낙원마냥 그려놓고는, 그에 간신히 의지하고자 하는 11살 소녀의 세계를 굳이 잿더미로 만들어야만 했을까. 갈 곳을 잃은 채 어쩌면 <스틸 플라워> 속 하담으로 자라날지도 모르는, 엔딩 속 해별의 발걸음은 괜히 더 안타깝기만 하다. 한편 너무도 강력하고 악한 현실에서 존재의 문제로 신음하던 하담은 이제 선하지만 위태로운 낙원에서 타자를 향한 윤리로 나아간다. 물론 해별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아서일 테지만, 그 어떤 설명이나 이유보다 "걔는 열한 살이에요"라는 말로 일축하는 그녀의 무한한 윤리는 함께 캐리어를 끌고 함께 걸음으로써 마침내 실현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