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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인 일기> 고골은 욕망이라는 화두를 다루면서 근대성을 획득한 작가다. 욕망은 질서가 잡혀 있는 체계에 대한 도전이다. 중세는 사회적 신분이 고정되어 있지만, 근대는 유동적이기에 상승에 대한 욕망이 등장한다.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인물이 포프리신이다. “나는 9급 관리다. 왜 9급 관리가 되었을까? 어쩌면 나는 백작이나 장군인데, 다만 9급 관리처럼 보이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보니 내가 스페인 왕이다!’” 사회적 호명을 거부하고 전복적 광기를 발동하는 포프리신은 관등사회의 러시아에서 광인이 된다. 고골은 자기 욕망을 끝까지 밀고 나갔을 때 봉착하게 되는 파국을 「광인일기」에 담았다. - <코> 러시아 근대문학의 토대를 닦은 고골의 흥미로운 이야기. 8등관 신분의 코발료프는 어느 날 갑자기 코가 사라진다. 그리고 거리에서 5등관 제복을 입은 코를 만나는데, 고놈은 스스로 자신임을 주장한다. 코를 쫓는 일은 꿈이 되고, 꿈이었기에 다시 찾은 일상에서 상승의 욕망은 멈춘다. 우리 역시 광인이 되지 않기 위해 꿈은 꿈에서 꾸고, 매번 일상으로 깨어난다. - <외투> 카프카의 <변신>,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와 함께 세계 3대 단편으로도 꼽히는 고골의 <외투>는 만년 9등관(도시소시민)인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의 특별하지만 흔한 사연을 다룬다. 하급관리인 아카키는 문서를 깨끗하게 정리해서 쓰는 정서일을 하는데, 그에게 이것은 직무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는 애정을 갖고 근무했다. 정서하는 일에서 그는 다양하고 즐거운 자신만의 어떤 세계를 발견한 것이다. 그가 특별히 좋아하는 글자도 있었다. 일을 하다가 그 글자를 대하면 너무나 기뻐서 미소를 짓고 윙크를 하면서 입으로 글자들을 불러보곤 했다." 하지만 그 작업은 사회적으로도, 동료들에게도 그리 인정받지 못한다. "일에 대한 열정만 가지고 본다면, 자신도 놀랄 일이겠지만, 5급 직책을 하사할 만도 했다. 그러나 그가 얻은 것은, 동료들의 독설을 빌린다면, 허름한 제복 단추와 치질뿐이었다." 아카키는 성실히 일하지만 "젊은 관리들은 그를 조롱했고, 그의 면전에서 그에 대해 꾸며낸 여러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의 집주인인 일흔 살 먹은 노파까지 등장시켜, 그가 노파에게 맞고 산다고 말하거나 언제 노파하고 결혼하느냐고 묻기도 하고, 눈이 내린다며 종이 부스러기를 그의 머리 위에 흩뿌리기도 했다. '날 좀 내버려 둬요. 왜 이렇게 나를 못살게 구는 거요. 나도 당신의 형제요.'" 그런 아카키는 페테르부르크의 혹독한 추위를 견디기 위해 새 외투가 필요했다. 궁핍했던 아카키는 이를 구하기 위해 그가 누리던 소소하지만 확실했던 모든 즐거움을 유보하거나 포기한다. 그렇게 어렵게 새 외투를 구했건만, 얼마 가지 않아 강도에게 강탈당한다. 추위 보다 심각한 건 그에게 새 외투는 외투 그 이상이 되었다는 점이다. 새 외투를 얻고 난 이후 "그 자신의 존재는 보다 완전해진 것 같았고, 마치 결혼한 것 같기도 했고,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것 같았으며, 혼자가 아니라 일생을 함께하기로 한 마음에 맞는 유쾌한 삶의 동반자를 만난 것 같았다." 아카키는 외투를 이상화하고 그것에 잠식되었다. 다시 동반자를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경찰서와 유력 인사들을 찾아다니지만 헛된 걸음이었다. 빼앗긴 사물에 자아가 먹혀버린 그에게 남은 길은 죽음뿐이었다. 고골은 <외투>를 통해 가난한 소시민에 연민을 보내면서도 물질 중심적인 삶에 경종을 울린다. 아카키가 죽은 이후 페테르부르크에는 유령이 나타나 사람들의 외투를 훔쳐 간다는 소문이 돈다. 그 유령은 아카키인가, 아카키의 외투를 훔쳤던 범인인가? 아니면 그 무엇도 아닌 무엇인가? "유령이 뒤를 홱 돌아보며 우뚝 서서, '넌 뭐야?'라고 물으며 살아 있는 사람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주먹을 내밀었다. 유령은 전보다 키도 훨씬 큰 데다 위엄 있어 보이는 콧수염까지 기르고 있었다." 우리에게 온 유령의 얼굴이 무엇이냐에 따라 각자의 사정은 달라질 것이고, 그렇기에 "우리는 모두 <외투>로부터 나왔"(도스토옙스키)는 줄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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