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예린

예린

6 years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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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백

책 ・ 2011

평균 3.7

입이 썼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랬다. IMF이후의 날것의 한국 사회를 겪은 경험밖에 없는 90년대생이라 그랬다. 글이 내 이야기 같아서 울컥하기도 했다. 감정이입을 안하려고 해도 왜이리 내 이야기 같은지 뭔가 자존심도 상했다. 글에게 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너 뭔데 나를 이리 속속들이 아니. 기자 출신 작가들이 그러하듯 문장이 간결하고 짧다. 그런데 그 간결함이 비수가 되어 내 가슴에 툭툭 날아와 꽂혔다. 문장들의 명중률이 아주 높았다. 이야기가 진행되어 캐릭터들이 죽을 때마다 나도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인양 충격받았다. 주인공 '나'의 7급 공무원 시험 준비기는 나의 지옥 임고시절을 자연스레 회상하게 하였고, 휘영이 잡지사 기자로 취업한 일화는 내 친구들의 취업 분투기가 절로 그려졌다. 그냥 이 책이 내 경험과 너무 닮아서, 소름 끼치도록 닮아서, 미디어에서 그려지는 낭만적인 20대 초와 정반대의 삶을 살았던 나에게는 한편으로는 이제서야 건네는 위로로, 한편으로는 힘든 재경험으로 다가왔다. . 가장 인상적이었던 글이 있었는데 바로 <'자살 선언'은 언제 하는 것이 좋은가>였다. 기가 막혔다. 세연을 비롯한 이 발칙한 혁명가 또는 철 없는 것들의 자살 선언 시기가 구체적으로 써져 있는 이 글은 너무 그럴듯하게 써져 있어 등골이 서늘했다. . '절대 생활이 곤궁하거나 좌절했을 때 자살하지 마라. 그럴 때 자살하면 세상은 당신의 선언을 그저 패배자의 개인적인 도피로 여길 것이다.' . '사실 우리가 어떻게 자살하든 세상은 뭔가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붙여 "겉으로는 괜찮아 보였지만 심적 갈등이 심했고 도피처를 찾던 중이었다"라고 우겨댈 것이다. 그러므로 기다리고 참았다가 당신 삶의 중요한 성취를 이뤘을 때 실행하라.' . 마치 사이비 집단의 십계명처럼 쓰여있는 이 글은 책 읽는 내내, 책을 덮고 난 지금까지도 계속 나를 따라다닌다.ㅡ이 자살 소동에서의 규칙은, 절대 삶이 찌들대로 찌들어 실패한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남들은 '성공했다'고 축하해마지 않아할 상태에서 죽어야 한다는 점. 즉, 사회에서의 성공이라는 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시시한 것에 불과하다고 죽음으로서 역설하는 셈인 것이다-대단한 지점이다. 죽을 이유가 하등없는 상태에서 사회에 저항하기 위해 이런 조건까지 생각해내야 한다니. . 씁쓸했다. 그리고 공감한다. 결국 나도 나의 삶이, 원하지 않았는데도, 소소한 투쟁과 소소한 입신의 연속이었기에, 이 사이비 집단 같은 글에 완전히 고개를 저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도 이 지긋지긋한 표백과정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나도 모르는 새에 세연같은 지도자의 극단성을 꿈꿨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무도 더 나은 시스템을 떠올리지 못한 거대한 무의 세계에서 나는 표백된 채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었던 것일수도 있다. 그들의 무모함을 결국은 나도 꿈꿨던 것이 아니었나 하는 합리적 의심을 거둘 수 없었기에 입이 무척이나 썼다. . 가능성이 고갈된 사회를 살아간다는 것은 고된 일이다. 내가 꿈꾸던 성공이라는 단어가 결국 집, 차 있는 표준 4인가구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면 많은 청춘들은 허무해진다.(이것도 어렵다) 평균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이라니. 평생을 러닝머신 위에서 뛰는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이 이루어져있는 세상 속에서 아주 적은 양의 파이를 차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한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치열함인지는 각자 판단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 과도한 노력지상주의 세상에서, 치킨게임만 계속하다 모두가 패배자가 되는 세상에서, 누가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있단 말인가. 지금의 청춘은 남을 태우거나, 이미 타버린 청춘으로 양분된다. 분노할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몇 남아있지 않다. 이미 타버려 재가 된 나는 이 표백사회를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