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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 소개
“세상은 흰색이라고 생각해. 너무 완벽해서 내가 더 보탤 것이 없는 흰색. 어떤 문제점을 지적해도 그에 대한 답이 이미 있는, 그런 끝없는 흰 그림! 그러니 우리도 세상의 획기적인 발전에 보탤 수 있는 게 없지. 참 완벽하고 시시한 세상이지 않니.” -본문 중에서
이 소설은 파격인가, 도발인가, 아니면 고발인가
1996년 한국 문학의 미래를 힘차게 열어나가기 위해 제정된 한겨레문학상이 올해로 제16회를 맞았다. 2회 김연의《나도 한때는 자작나무를 탔다》, 3회 한창훈의《홍합》, 4회 김곰치의 《엄마와 함께 칼국수를》, 6회 박정애의 《물의 말》, 7회 심윤경의《나의 아름다운 정원》, 8회 박민규의《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9회 권리의《싸이코가 뜬다》, 10회 조두진의《도모유키》, 11회 조영아의《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 12회 서진의 《웰컴 투 언더그라운드》, 13회 윤고은의 《무중력증후군》, 14회 주원규의 《열외인종 잔혹사》, 15회 최진영의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1회, 5회 당선작 없음)까지 10년이 넘는 기존의 당선작들은 한국 문단의 주목을 받고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2011년 제1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표백》은 240여 편의 경쟁작을 물리치고, 예심 심사위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본심 심사위원들의 추천을 통해 당선되었다. ‘한국 문학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될 뛰어난 작품’ ‘몇 년 사이 읽은 소설 중 가장 문제적인 작품’ ‘이 시대 텅 빈 청춘의 초상, 섬찟하면서 슬프다’라는 평을 받으며 문학상 심사 내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표백》에서 작가는 모든 틀이 다 짜여 있는 세상에서 옴짝달싹 할 수밖에 없게 된 젊은 세대를 ‘표백 세대’라고 칭한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어떤 것을 보탤 수도 보탤 것도 없는 흰 그림인 ‘완전한 사회’에서 청년 세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사회에 표백되어 가는 일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자기의 위치에서 가장 성공했을 때 사회에 자신을 표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살밖에 없다며, 와이두유리브닷컴 사이트에 자살 선언을 올리고 24시간 후에 자살한다. 현실세계에서 자신이 원하는 꿈이나 노력해서 무엇인가를 얻을 수 없다는 생각에 좌절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청년 세대들의 고달픈 일상과 정해진 채 다가올 미래와 표백되는 사회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을 보여주면서 면밀하고 명확하게 우리 사회를 그려낸다.
절망의 기록, 그러나 동시에 절박한 희망의 구조 요청
싸늘히 표백된 우리 시대 청춘들의 잔인한 자화상
주인공은 7급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나서 상위 10개 대학의 뒤쪽에 위치한 A대학에 입학해서 군대를 갔다 온 복학생이다. 그는 대학입시를 다시 준비하든 편입시험을 보든 더 상위권으로 진입해야 하는데, 어떤 것을 시작해도 이미 늦어버린 나이라고 생각하며, 미래의 암울한 현실을 깨닫지만 딱히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 ‘취업 선배들과의 대화’ 행사 뒤풀이 후에 전교적으로 유명한 ‘21세기 지도자 장학생’인 세연, 경영학과 동기인 휘영, 후배 병권, 세연의 친구 추윤영 등과 어울리게 된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자살을 준비해온 세연은 친구들을 설득하며 5년 후에 자살할 것을 강요하며, 자신이 가장 주목받는 선구자가 되기 위해서 죽는다. 5년 후 각자의 자리에서 일하며 표백되고 있던 주인공과 친구들은 우연찮게 한 사이트(와이두유리브닷컴whydoyoulive)를 통해 서로의 소식을 알게 된다. 그러나 친구들은 5년 전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24시간 후에 자살을 한다고 선언하는데……. 젊은 세대들이 자살하는 세태를 정확하게 그려내며 현실을 담고 있는 이 소설은 우리 사회 청년들의 삶과 일상을 가감 없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표백》은, IMF 이후 변화된 사회의 문제들을 혼자의 몸으로 뚫고 온 혹은 뚫고 가고 있는 청년 세대에 바치는 소설이다. 성공한 삶이라고 주변에 얘기할 수 있는 그때, 그리고 그 성공을 위해 노력했던 스스로에게 자살이라는 방법으로 자유의지를 보여주는 청년들은 부조리한 세계에서 부조리한 방식으로 그들의 삶에 대해 최선의 길을 추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들은 어떻게 이 세계를 헤쳐 나갈 것인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젊은 세대들이 그리는 슬픈 비망록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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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식
4.5
어려서부터 막연하게 글쓰는 것을 업으로 삼기로 다짐했다. 어린 나이에 하나하나 모은 작고 큰 상패들이 내 수줍은 오만에 불을 지폈고 친구들과 선생님의, '반 이상은 빈' 가벼운 칭찬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중학생 때 한 친구에게 나는 이문열이나 김승옥같은 작가가 되겠다고 고백했다. 부족하지만 수많은 단편들을 써왔고 친구들에게 보여주며 꿈을 키웠다. 한 친구는 나를 비웃었지만 보다 많은 친구들은 응원해주었다. 시간이 흘러 대학에 갈 나이에 접어들자 나는 문창과를 지원할 용기를 잃어버렸다. 타협으로 사회과학을 전공으로 삼으며, 존 그리샴이나 스티븐 킹 같은 작가를 롤모델로 삼았다. 박민규나 천명관의 책을 보며 소름돋았고 각종 인문서를 탐독하며 부끄러웠다. 토마 피케티나 칼 포퍼, 얼마 전엔 뒤늦게 안 지젝의 책을 읽으며 놀라기도 했다. - 오래전 우연히 읽게 된 장강명의 한 글귀에서 나는 쉽사리 작가가 될 수 없음과 동시에 어쩌면 영원히 책 한 권 내지 못할거라는 가위에 눌려버렸다. 하지만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계속쓰다보면 끝까지 쓸 수 있으며 계속 쓰면 점점 나아진다.'는 당연한 격려에 위로받고 말았다.
에이프릴
4.0
"나는 패배자가 되는 게 너무 무서웠고, 지금도 두려워. 내가 받은 교육이라고는 어떻게 하면 패배하지 않느냐에 대한 것뿐이었지. 그래서 승리도 하지 않고 패배도 하지 않는 안전한 방법을 익히고 그대로 살고 있어" . 요즘 젊은 세대가 느끼는 박탈감과 좌절감, 비겁함, 찌질함 그리고 이 들을 그렇게 만든 이 사회, 어른들에 대한 반항. 심정에 공감은 하면서도 자살선언이 너무 과하고 철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는데 다 읽고나 니 퍼득 "신념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나는 한번이라도 무언가 목숨까지 바칠정도의 열정을 보인 적이 있는가?"라는 물음이 떠오르며 자괴감이 들고 그래서 이렇게 이도저도 아니게 살고있나 싶어서 서글퍼지기도 하면서 그제야 저자의 의도는 누가 옳고 그르고를 떠나 스스로의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어떤 과업을 찾으라는 말이었구나 깨닫게 됐다.
soo_
0.5
남작가가 묘사하는 여성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정말 상투적이고 지루하다.
김세중
5.0
'자살 선언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책을 읽으며 끊임없이 책에 반박했다. 그 자체로 자살선언이 성공적이라는 것을 책을 다 읽을 때 쯤 깨달았다.
예린
4.0
입이 썼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랬다. IMF이후의 날것의 한국 사회를 겪은 경험밖에 없는 90년대생이라 그랬다. 글이 내 이야기 같아서 울컥하기도 했다. 감정이입을 안하려고 해도 왜이리 내 이야기 같은지 뭔가 자존심도 상했다. 글에게 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너 뭔데 나를 이리 속속들이 아니. 기자 출신 작가들이 그러하듯 문장이 간결하고 짧다. 그런데 그 간결함이 비수가 되어 내 가슴에 툭툭 날아와 꽂혔다. 문장들의 명중률이 아주 높았다. 이야기가 진행되어 캐릭터들이 죽을 때마다 나도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인양 충격받았다. 주인공 '나'의 7급 공무원 시험 준비기는 나의 지옥 임고시절을 자연스레 회상하게 하였고, 휘영이 잡지사 기자로 취업한 일화는 내 친구들의 취업 분투기가 절로 그려졌다. 그냥 이 책이 내 경험과 너무 닮아서, 소름 끼치도록 닮아서, 미디어에서 그려지는 낭만적인 20대 초와 정반대의 삶을 살았던 나에게는 한편으로는 이제서야 건네는 위로로, 한편으로는 힘든 재경험으로 다가왔다. . 가장 인상적이었던 글이 있었는데 바로 <'자살 선언'은 언제 하는 것이 좋은가>였다. 기가 막혔다. 세연을 비롯한 이 발칙한 혁명가 또는 철 없는 것들의 자살 선언 시기가 구체적으로 써져 있는 이 글은 너무 그럴듯하게 써져 있어 등골이 서늘했다. . '절대 생활이 곤궁하거나 좌절했을 때 자살하지 마라. 그럴 때 자살하면 세상은 당신의 선언을 그저 패배자의 개인적인 도피로 여길 것이다.' . '사실 우리가 어떻게 자살하든 세상은 뭔가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붙여 "겉으로는 괜찮아 보였지만 심적 갈등이 심했고 도피처를 찾던 중이었다"라고 우겨댈 것이다. 그러므로 기다리고 참았다가 당신 삶의 중요한 성취를 이뤘을 때 실행하라.' . 마치 사이비 집단의 십계명처럼 쓰여있는 이 글은 책 읽는 내내, 책을 덮고 난 지금까지도 계속 나를 따라다닌다.ㅡ이 자살 소동에서의 규칙은, 절대 삶이 찌들대로 찌들어 실패한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남들은 '성공했다'고 축하해마지 않아할 상태에서 죽어야 한다는 점. 즉, 사회에서의 성공이라는 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시시한 것에 불과하다고 죽음으로서 역설하는 셈인 것이다-대단한 지점이다. 죽을 이유가 하등없는 상태에서 사회에 저항하기 위해 이런 조건까지 생각해내야 한다니. . 씁쓸했다. 그리고 공감한다. 결국 나도 나의 삶이, 원하지 않았는데도, 소소한 투쟁과 소소한 입신의 연속이었기에, 이 사이비 집단 같은 글에 완전히 고개를 저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도 이 지긋지긋한 표백과정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나도 모르는 새에 세연같은 지도자의 극단성을 꿈꿨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무도 더 나은 시스템을 떠올리지 못한 거대한 무의 세계에서 나는 표백된 채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었던 것일수도 있다. 그들의 무모함을 결국은 나도 꿈꿨던 것이 아니었나 하는 합리적 의심을 거둘 수 없었기에 입이 무척이나 썼다. . 가능성이 고갈된 사회를 살아간다는 것은 고된 일이다. 내가 꿈꾸던 성공이라는 단어가 결국 집, 차 있는 표준 4인가구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면 많은 청춘들은 허무해진다.(이것도 어렵다) 평균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이라니. 평생을 러닝머신 위에서 뛰는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이 이루어져있는 세상 속에서 아주 적은 양의 파이를 차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한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치열함인지는 각자 판단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 과도한 노력지상주의 세상에서, 치킨게임만 계속하다 모두가 패배자가 되는 세상에서, 누가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있단 말인가. 지금의 청춘은 남을 태우거나, 이미 타버린 청춘으로 양분된다. 분노할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몇 남아있지 않다. 이미 타버려 재가 된 나는 이 표백사회를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는 것인가.
이준호
4.0
소설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시대를 처절하게 들춰본다
상범
4.5
천문학자는 광활한 우주를 연구하면 할수록 존재의 하찮음을 느껴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은 직종이라는 루머가 한때 돈 적 있다. 지금 내 또래 세대가 느끼는 허탈감과 하찮음이란 이런 느낌일까. 마치 갓 지구의 중력을 벗어나 태양계를 탐사하는 보이저호처럼. 태양계의 끝에 도달하고 싶은 이상과는 달리, 우주의 팽창속도가 더욱 빨라 그 격차는 기하급수적으로 벌어지는 것만 같다. <불안>의 저자 알랭 드 보통은 역설적이게도 자본주의 사회 속 개인들의 불안과 고통의 상한치가 계급사회에 비해 높다고 주장한다. 계급사회에서의 개인은 기확정된 계층 내 준거집단과 본인을 비교하지만, 명목상 계급의 사다리가 사라진 자본주의에서는 '표준'집단 혹은 그 이상을 스스로와 비교하기 때문이다(SNS의 영향도 크지 않나 싶다). 결국 자본주의 사회 속 성공 외 실패는 철저히 개인의 무능력 탓으로 귀결된다. <표백>에서 바라보는 현대사회는 사회를 결속시키는 사상, 체계가 너무나도 완벽하여 더 이상 보탤 것이 없는 흰, 표백의 상태이다. 이러한 표백사회에서 청년들의 발상은 기성세대가 이미 해왔던 답습한 지적질에 불과하며, 획기적인 진보를 꿈꾸지 못한다. 비슷하게나마 나는 세상을 혁신적으로 변혁하는 사람은 각 분야의 상위 0.000001% 내 극소수의 천재들이라고 생각해왔다.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노벨과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그러했고,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와 테슬라의 창업자 일론 머스크가 그러하듯. 그렇다면 과연 모든 사람들이 '위대한 일'을 해야 할 필요와 의무가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표백사회에서의 위대한 업적(목표)은 점차 원자화되고 개인화 되어야 한다. "위대함의 본질은 결과가 아닌 과정에 있어야 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生의 의미는 결과가 아닌 과정 속에서 발견해야하는, 흙 속의 진주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초밥학살자
3.5
나를 깎고 잘라 스스로 작아지려 했던 민물장어들에게, 그럴 바에 몸을 부숴 추어탕이 되라는 섬뜩한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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