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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범

상범

4 years ago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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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백

책 ・ 2011

평균 3.7

천문학자는 광활한 우주를 연구하면 할수록 존재의 하찮음을 느껴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은 직종이라는 루머가 한때 돈 적 있다. 지금 내 또래 세대가 느끼는 허탈감과 하찮음이란 이런 느낌일까. 마치 갓 지구의 중력을 벗어나 태양계를 탐사하는 보이저호처럼. 태양계의 끝에 도달하고 싶은 이상과는 달리, 우주의 팽창속도가 더욱 빨라 그 격차는 기하급수적으로 벌어지는 것만 같다. <불안>의 저자 알랭 드 보통은 역설적이게도 자본주의 사회 속 개인들의 불안과 고통의 상한치가 계급사회에 비해 높다고 주장한다. 계급사회에서의 개인은 기확정된 계층 내 준거집단과 본인을 비교하지만, 명목상 계급의 사다리가 사라진 자본주의에서는 '표준'집단 혹은 그 이상을 스스로와 비교하기 때문이다(SNS의 영향도 크지 않나 싶다). 결국 자본주의 사회 속 성공 외 실패는 철저히 개인의 무능력 탓으로 귀결된다. <표백>에서 바라보는 현대사회는 사회를 결속시키는 사상, 체계가 너무나도 완벽하여 더 이상 보탤 것이 없는 흰, 표백의 상태이다. 이러한 표백사회에서 청년들의 발상은 기성세대가 이미 해왔던 답습한 지적질에 불과하며, 획기적인 진보를 꿈꾸지 못한다. 비슷하게나마 나는 세상을 혁신적으로 변혁하는 사람은 각 분야의 상위 0.000001% 내 극소수의 천재들이라고 생각해왔다.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노벨과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그러했고,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와 테슬라의 창업자 일론 머스크가 그러하듯. 그렇다면 과연 모든 사람들이 '위대한 일'을 해야 할 필요와 의무가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표백사회에서의 위대한 업적(목표)은 점차 원자화되고 개인화 되어야 한다. "위대함의 본질은 결과가 아닌 과정에 있어야 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生의 의미는 결과가 아닌 과정 속에서 발견해야하는, 흙 속의 진주와 다름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