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태준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
평균 3.7
2024년 12월 14일에 봄
역사가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대의 몫이자 미래의 방향이며, 우리도 거기에 연루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18편의 이야기. 하나의 인물이나 사건조차도 그 당시 전세계적인 문화나 사건과 두루두루 얽혀 있다는 게 이 책에서 낱낱이 밝혀진다. 일본의 희생자 의식, 자기 연민의 같은 이야기는 우리나라도 예사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외부로부터 수많은 침략을 받은 피해자 국가로 알려져 있지만 베트남 전쟁과 같은 참상의 가해자이기도 하다. 포로 감시원으로 아시아 등지에서 연합군 포로들을 무참히 괴롭히기도 했다. 일본 위안부를 끊임없이 비판하면서도 한국전쟁기에 정부는 미군을 상대로 양공주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서구에 대한 판타지는 전후 일본의 만주국 등에 남은 아시아 여성의 그리움으로 변모하고 그 감성은 당시 조선에 닿아 여전히 우리에게 잔재로 남아있기도 하다. 우리나라 또한 역사의 피해자이자 가해자라는 이런 인식이 나에게는 역사에 연루되어 있다는 의식의 출발점인 것 같다. 이미륵, 리샹란, 세계일주를 했던 나혜석, 조선을 혐오했던 잭 런던과 나치 친위대임을 후에 고백한 귄터 그라스, 레니 리펜슈탈 등 수많은 인물들, 파리코뮌과 상하이사변, 사할린에서 일어났던 학살들, 발칸반도에서 일어난 사건, 세계대전의 전후 맥락들,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인 독일이 얼마나 오랜 뒤에 반성을 했는지를 새롭게 알았다. 무자비한 역사의 흐름에서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고 대담한 선택을 했다는 것도 보았다. 제국주의의 마수에 강자들이 떵떵거리며 살아갔던 시절, 살아가는 것도 쉽지 않았을텐데 그렇게 목소리를 내고 투쟁하고 악착 같이 살아갔던 그들의 역사, 유명한 몇몇 인물 말고는 지워져버린 그들의 이야기도 담겨 있어서 흥미로웠다. 어쩌면 그들이 더 강한 게 아닐까 싶었다. 학교에서 배운 역사는 선인과 악인을 명백히 구분지었던 듯한데 한편 그게 구분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은 나는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 반대로 나는 그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하는 책이다. 우리가 그런 것처럼 이 책에 등장한 그들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런 조건과 환경과 상황과 정체성 속에서 나는 그들과 같은 선택을 했을까? 다른 선택을 했을까? 고민하게 한다. 그 질문은 빠져나갈 수 없는 미로가 아닌 더 나은 선택의 길로 이어진다. 연루되었다는 말이 처음에는 부담으로 느껴졌지만 후에 가선 이 치욕과 폭력의 역사를 끝낼 수 있는 게 우리 손에 달려있다는 걸 여실히 느끼게 만들어주었다. 세상을 다르게 보게 된다. 역사는 저 아래 지하에 있는 게 아니라 이 공기 중에 섞여있다고. 공부라는 건 세상에 대한 해상도를 높이는 일이라는데 이 책이 나에게 그런 해상도를 높이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김현아 작가님의 대화(촛불혁명의 토대가 동학농민운동에서 뿌리내린다는 흥미로운 관점을 알았다)나 안보윤 작가님과의 북토크(한 사람에게도 전수미와 전수영이 모두 있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계엄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던 현 시국이나, 한강 작가님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모든 일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일어나서, 책이 너무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모든 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도 든다. 과거의 잘잘못과 잊혀진 이야기들은 놀랍게도 여전히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세월호 피해자들을 괴롭히던 정권이나, 위안부를 묵인하는 정권의 이야기들. 계속해서 일어나는 부조리한 일들에 저항하기 위해서 우리는 기억하고 기억해야 한다. 기억이 우리의 능력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