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딘날
4.0

디지몬 어드벤처 라스트 에볼루션 : 인연
영화 ・ 2020
평균 4.4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은 상실의 연속이고, 잃어가기에 그립고 애틋해진다. 나이가 먹어갈수록 그리움의 농도가 짙어가는 것은 그러한 끊임없는 상실이 쌓여가고, 앞으로도 잃어갈 것을 알기 때문일 거다. 디지몬을 잃는다는 것은 곧 어린 시절의 수많은 가능성들을 잃어가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수많은 가능성을 잃는다는 말은 곧 우리가 그 얽힌 실타래들 중 하나씩을 선택해왔다는 증거이다. 때를 놓치고 계속 품는 가능성들은 태어날 시기가 지난 알과 같이 썩어버리고 만다. 우리는 자신을 썩히지 않기 위해 부단한 상실의 노력을 아픔과 동반하면서도 해온 것이다. 즉, 지나가도 폐부를 쑤시는 그리움이란 이름의 애증의 상처는 상실의 증거이면서도 상실하지 않은 가능성을 꽃피워 온 삶의 증거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 작품을 디지몬을 통해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그 개화한 가능성은 우리가 상실해 온 것들로부터 오는 아픔들을 치유해나가는 방법을 모색해주기도 한가는 것도. 이 작품의 한가지 아쉬운 점은 과거 디지몬을 봐온 사람들의 그리움을 자극하는 호루라기 연출마저도 파묻히게 하는 유치하고 단조로운 대사다. 쓸데없는 훈수질 대사를 치라는 건 아니지만, 계속 단순하게 '나아가야 해 나아가야 해' 하는 그 대사가 초반부터 앞길을 헤매이던 태일와 매튜 두 사람이 왜 나아가야만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해소해주지 못했다. 디지몬의 싸우자는 말에 그저 동조하여 자기 스스로의 고찰 없이 너무나도 간편하게 '나아가야만 함'을 필연으로 그려낸 점이 감동을 흐린다. 호루라기 장면에서 눈물이 날 뻔 하다가 말아서 카타르시스가 덜 온 사람의 하소연이다. 그 두 사람이 작중에 한 것은 오로지 디지몬과 헤어지겠다는 각오 뿐인데, 그걸로 충분하기 위해서는 주변인들이 번듯하게 살고있지만서도 자신이 '어른'으로서 어떻게 나아가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이 매튜나 태일이보다 부족함을 보여줬어야 했다. 아무 묘사도 없으니 가장 어리숙한 건 태일이랑 매튜인데 어른이 되기 위한 과정은 두 사람이 제일 먼저 겪는 모순된 상황으로 밖에는 안 보이게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