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상훈남
4.5

괴물
영화 ・ 2023
평균 4.3
2023년 11월 23일에 봄
요리는 새롭게 태어나고 싶어 했다. 자신을 태어난 시점부터 스스로를 이미 돼지의 뇌를 가진 불쌍한 인간으로 여겼기에. 사실은 아무 죄도 없는데 말이다. '다르다'는 이유로 멸시와 고통을 받는다. 그럼에도 잠시나마 헷갈린다. 함께 있어주는 미나토가 있어서. 하지만 서로는 '함께 있어주기만 할뿐' 어떠한 '위로'나 삶을 계속 나아가겠다는 '의지'가 되어주지 못 한다. 미나토는 요리에게 동화될 뿐이다. 그는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요리를 동경하고 있었다. 죽은 아빠에게조차 '왜 태어났냐'고 묻는 어린아이였으니까. "내가 문제라니까. 내가 엄마 역할을 해주지 못 하는 거 같아서 너가 불쌍하게 느껴져." "엄마. 나는 불쌍하지 않아." 이 영화는 세 시점으로 진행이 되는데, 첫 번째 어머니의 시선은, 사회비판적임과 동시에 미나토에게 벌어지는 일들이 굉장히 미스터리하게 그려져 앞으로의 내용이 기대되기도 하고 공포스럽기도 했다. 어머니는 미나토를 진심으로 사랑했으나, 상처가 점점 하나둘씩 늘어나는 그를 보며 죄책감을 품게 된다. 부모 역할을 잘 해주지 못 한 것만 같아서. 아무 죄 없는 아이가 이렇게 된 게 모두 자기 탓인 것만 같아서. "꽃 이름을 어떻게 알아?" "좋아하니까." 요리는 그저 '좋아하는 것을 찾아 나서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그 아이는 '괴물'도, '돼지의 뇌를 가진 인간'도 아니었다. 아무 계산 없이 순수하게 좋아하는 것들로부터 강제로 억압당하고, 가장 사랑받아야 하는 아버지로부터 '사랑하는 것'을 부정하게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우리도 마찬가지인 것처럼, 무언가를 좋고 싫어한다는 건 우리 의지대로 흘러 가는 것이 아니었다. 자연스레 좋아지게 되는 것들을 멋대로 좋아하지도 못 하는 삶을 살게 된 요리의 선택지는 바로 하나밖에 없었다. 새로 태어나는 것 말이다. "그대로 두면 새로 태어나지 못 한다." 요리는 자신의 삶을 그대로 둘 생각이 없었다. 그대로 두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새로 태어나지도 못 하니까. "우주가 한계까지 부풀고 펑하고 터져. 소고기 덮밥은 소로 돌아가고 똥은 엉덩이로 들어가. 인간은 원숭이가 되고 우주가 생기기 전으로 돌아가는 거야." "새로 태어나는 거네." 둘은 따스한 햇빛 아래에서 멈추지 않고 넓은 풀밭을 달린다. 호리 선생님을 피해 겁을 내며 달렸을 때와는 다르게 아주 홀가분한 표정을 지으며 자유롭게 달린다. 적어도 그 풀밭에서는 둘을 가두고 있는 건 없었다. 미나토는 이제 좋아한다는 말을 숨기지 않아도 되고, 요리도 스스로를 괴물로 여기지 않아도 된다. '괴물'의 껍데기로부터 탈피하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눈을 감고 희망하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둘은 웃을 수 있게 된다. 앞으로 계속 미소지으며, 그 동안 달리지 못 했던 만큼 한참을 달릴 것이다. 그런 바람은 아마 처음 맞아보는 것이겠지. "저는 뭔지 잘 모르겠지만요. 좋아하는 애가 있어요. 남한테 말할 수 없어서 거짓말하는 거예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게 들통날 테니까요." "누구에게도 말 못 할 일이라면 후- 불어."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음에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마음. 말을 하지 못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말한다고 행복해질 리가 없으니까. 적어도 미나토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말을 꺼내놓는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곳이 아니었다. 그는 불어본 적도 없는 트럼본을 후- 하고 불어본다. 밀어내면서, 입을 갖다대면서, 음을 변화시킨다. 현실에서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마음이, 트럼본을 통해 그가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의지가 암시된다. 미나토는 이제 준비가 되었다. 영원히 말하지 못 한 채로. [이 영화의 명장면] 1. 산사태 폭풍우가 몰아치는데, 흘러나오는 음악은 잔잔하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다가도 물속에서 느껴지는 고요함이 나도 모르게 평화를 느끼고 있는 것만 같았다. 흙이 묻어있는 창을 닦아본다. 그들이 보고 있던 아이들의 모습은 어땠을까. 아이들이 어떤 표정을 지으며, 어떤 행동을 하고 있었을까. 서로의 손을 꼭 부여잡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 그게 아니라면, 꿈꾸는 채로 멈춰 있었을까. 계속해서 떨어지는 빗물과 그것을 닦아내는 손길, 그 손길을 방해하는 또다시 빗물. 촬영 구도, 음향, 분위기 모든 것이 어둡게 아름다웠다. 역시, 히로카즈 다웠다. 2. 탄생 어쩌면, 요리와 미나토는 '이런다고' 새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새로 태어났냐는 요리의 물음에 미나토는 그대로라고 말한다. 둘에게 있어 탄생하지 않고 '그대로에 머문다는 것'은 재앙과도 같았다. 계속 괴물인 채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요리는 '다행'이라고 말한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삶을 내려놓을 정도의 고통을 감수하는 현실 앞에서 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을까. 아마, 자신 의 곁을 지켜주는 미나토가 보였을 것이다. 서로는, 유일하게 괴물로 바라봐주지 않는 하나의 '안식'과도 같았으니까. "우린 새로 태어난 걸까." "그런 일은 없는 거 같아. 우린 그대로야." "그래? 다행이네." 괴물이 된 것도 괴물로부터 탈피하고자 한 것도 전부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괴물이 되었음에도, 새로 태어날 거라는 '희망'과 함께 있어주는 '서로'의 존재라는 것들은 몇몇 사람만 가질 수 없는 특별한 행복이었다 이 영화는 해피엔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슬프게도. 고맙게도. "그런 생각 다 쓸데없어. 몇몇 사람만 가질 수 있는 건 행복이라 부르지 않아.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걸 행복이라 부르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