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무수한 백과사전과 학문과 담론들이 한 사람을 어떤 카테고리에 넣어 규정하든 그 사람이 스스로를 어떻게 규정하는 지가 분명히 더 중요한 상황들, 나아가 어떤 것들은 규정에 드는 시간과 에너지를 아껴서 그저 한 사람의 눈빛에 몰입하는 게 낫다는 걸 보여주는 순간들. "이름 붙일 수 없어. 설명할 수 없어. 말하고 싶지 않아. 그냥 너가 부끄럽지 않다고만 말해줘." 극중 다같이 노래방에서 부르는 노래의 가사다. 이 영화는 누군가가 트랜스젠더인지 아닌지 꼭 알아야만 하는 태도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울 수 있는 지 보여준다. 그러니까 내가 너무나 사랑에 빠져서 키스도 하고 섹스도 하고 싶은 상대가 알고보니 트렌스젠더였다면, 크나큰 도시에서 내가 가장 친한 친구로 여기며 매일 연애 상담을 하는 사람이 알고보니 트렌스젠더였다면, 무엇이 달라지나. 무엇이 달라질 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 "누나는 왜 부치 여자애들을 좋아해?" "그냥. 걔네가 지구상에서 제일 섹시한 것 같아." 어떤 종류의 사람을 더 섹시하게 여기라고 누군가에게 강요하는 건 평생 먹을 아이스크림의 맛을 한 가지 정해주는 것만큼이나 터무니없는 일이다. 젠더만큼이나 사랑도 규정하기가 어렵다는 걸 함께 엮었기에 재미있는 영화. 주인공이 실연을 당했을 때 그를 위로해주는 건 그가 여태 가장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 자기 누나를 심각하게 짝사랑해서 누나의 데이트에까지 껴가면서 비참하게 쫓아다니는 여자다. 그리고 위로 받은 그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던졌던 찰나의 눈빛과 침묵에 대해 사과하기 위해 지하철을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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