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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현

이의현

8 years ago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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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청춘이다

책 ・ 2010

평균 2.2

<힐링 담론의 이면> 몇 년 전 한 프로그램에서 “나쁜 기억 지우개”라는 방송을 한 적이 있다. 일상적으로 겪었던 피해와 피압에 대한 기억을 지워 ‘힐링’한다는 것이다. 근데 잠깐, 나쁜 기억은 피해자가 잘못해서 생긴 게 아닌데 왜 피해자만 일방적으로 겪고 그쳐야 하는 거지? 당연히, 가해 주체인 세상과 사회와 남성이 바뀌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것이야 말로 나쁜 기억을 지울래야 지울 수 없는 피해자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나는 그래서 힐링 담론이 역겹고 무섭다. 바뀌어야할 것은 세상이고 사회인데, 힐링 담론은 사회와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한다. “너만 잊고 참으면 끝나. 세상은 어차피 안 바뀌어. 어쩔 수 없어.” “어쩔 수 없어”라는 말은 의문과 저항을 적응과 타협으로 바꾼다. 즉, 폭력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피해자와 공감하고 싶다면, 힐링을 외칠 게 아니라 가해자를 법정에 세우는 데 동참하면 된다. 가해자가 법정에 서서 잘못이 드러나지 않는 한, “피해자의 힐링”은 공범자의 자기도피와 자기변명을 위한 언설에 불과하다. 또는 일종의 집단적 스톡홀름 신드롬과도 같은 것이다. 혹자는 이를 가리켜 “종속적 주체”라고 이름했다. 누가 봐도 그 스스로도 피해자인데, 가해자의 편에 서서 가해자를 응원하고 피해자를 입막음 하는 행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