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지하실

지하실

2 months ago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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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밤

영화 ・ 1982

평균 3.7

지하실 (jihasil.com) | OTT | 2026년 1월 5일 - 1월 31일 브뤼셀의 하룻밤 동안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남녀의 만남을 파편적으로 엮어낸 작품이다. 에피소드들은 완결된 서사를 이루지 않으며, 키스와 망설임, 작별 인사 같은 몸의 제스처만이 반복된다. 샹탈 아커만은 심리 묘사를 최소화한 채로 밤이라는 시간대가 허용하는 연애의 리듬을 조직하여, 독특한 로맨스 영화를 만든다. 인물들은 서로 스쳐 지나갈 뿐, 관계는 정착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사랑을 이야기하면서도, 깊은 관계가 형성되기 직전의 불확실한 상태를 집요하게 붙잡는다. • 나는 이 영화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그 경계선에 있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더 긍정 쪽으로 기우는 것은 일부 단편들의 빛나는 순간들 덕분이다. 가령 밤 산책에 나선 노부부가 그 길로 시내에 놀러가자고 하는 장면이나, 위로가 필요해보이는 여자에게 술집 남자가 춤을 춰주는 장면. 또는 권태기의 커플이 침대에 누워서 함께 불면증에 시달리는 장면. 어딘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이토록 아무렇게나 나열하는 방식은 샹탈 아커만 영화에서 양날의 검인데, 본작에서는 그게 상상의 지평을 아주 절묘한 선까지만 열어젖힌다는 점에서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연애라는 소재를 아커만이 나름대로 해부하려고 시도한 것 같다. 내가 짐작하기로 그 실험의 가설은, 이 정도로 연애를 분자화시켜놓은 상태에서도 관객들이 모종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느냐, 이다. 나는 결론적으로 그랬다. 영화의 설계 자체가 훌륭했다기 보다는, 이를 통해 찾아낸 사실이 의미있다고 느낀다. 그러니까, 발명이 아닌 '발견의 영화'인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