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Liemoon

Liemoon

2 years ago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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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책 ・ 2024

평균 3.6

2024년 04월 16일에 봄

<이응이응> 인간은 기계 앞에서 가장 솔직해진다지만 가장 솔직한 꿈 속에서 간절히 바란 것은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을 밟는 소리, 머리를 헝클이는 거센 바람, 발목을 할퀴는 나뭇가지, 진흙투성이가 된 발. 나와 비슷한 소망을 가진 존재와의 만남, 하고 싶은 것과 받고 싶은 것에서 오는 쾌락이 아닌 간직한 것, 그리운 것에서 오는 온기, 위안, 벅차오름, 사랑. 그리고 마침내 카타르시스. 첫 단편집에서부터 퀴어, 젠더, 섹슈얼리티를 가장 전위적인 방식으로 그려온 작가답게 이번 작품 역시 섹슈얼리티와 젠더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이 빛난다. 별것 아닌 것과 별것 사이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플롯과 별것이 별것이 되는 이유를 기어코 찾아내는 메시지가 마음에 꼭 든다. 테크닉적 진보가 확실히 느껴지는 작가가 초창기의 패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마음을 울리는 법까지 익혔을 때 오는 감동.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주호와 희주, 두 캐릭터가 상징하는 바가 너무 또렷한데 둘 사이의 대비 역시 너무 극명하다. 한 줄로 요약하면 완전히 다른 성질의 두 사람이 자신의 인간성에 상처가 나는 일련의 사건을 겪은 뒤, 엉망이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서사인데 두 인물의 서사가 균등하게 펼쳐지다 보니 어느 하나에도 깊게 이입이 안 되고, 인물은 납작하게 느껴지며, 그러다 보니 등장인물이 하나같이 가짜처럼 느껴진다. 몰입하거나 공감하기 어려웠던 단편. 부고 옆에 쓰인 이름을 난생처음 보는 듯한, 생경함에서 비롯되는 공포, 삶이 통째로 뒤흔들리는 서슬퍼런 인식에 휩싸이는 희주의 장면은 좋았다. <보편교양> 그 모든 배반 중 가장 뼈아픈 배반은 자기배반일 것이다. 좀 나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좀 다른 사람인 줄 알았는데, 막상 까고 보니 생각보다 후질 때 별 볼 일 없을 때 사람은 ‘파괴된다’. 그런 의미에서 곽은 파괴되지만 패배하지 않는, 헤밍웨이의 인간론에 부합하는 인간이다. 내 수업의 유일한 빛인 은재가(수업에 열심히 참여하고 훌륭히 기능하며 결과적으로 뛰어난 성취를 거두었고 곽의 내면적 욕구를 충족시키기까지 했으니), 마르크스를 제대로 이해했다고도 할 수 있는 은재가 실은 자본주의 사회가 허락하는 혜택을 아낌없이 누리는 수혜자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의 화살은 은재에 대한 배신감이나 가르침의 무쓸모로 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모순을 먼저 겨누는 이가 행하는 교육은 언젠가 세상에 두루 미치고 통하게 될까. 소설의 결말이 담지하는 희망 정도로 충분한 듯싶다. <파주> 현철은 아주 살아 있는 것 같다가도 아주 어색한데 이는 초점화자인 윤정의 시선에 따른다. 정확히 말해 윤정이 눈앞에 있는 현철을 묘사할 때 그의 눈에 비친 현철은 좀 더 살아 있는 인간 같고, 윤정의 사념 속 현철-윤정이 궁금해하고 생각하는-은 도무지 잘 섞이지 않는 요소가 뒤엉켜 만들다 만 콜라주 같다. 윤정이 현철을 통과해 마침내 스스로의 ‘시시함’, 허무를 발견한다는 점에서 현철은 윤정에게 매개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윤정-현철의 관계에서 현철이 겪은 피해 사실에 대한 연민이 최소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초점화자인 윤정의 서술과 감정을 그대로 따라가기에는 분명 어려움이 있다. 결과적으로 두 인물이 가진 감정의 결이 비슷하다 할지라도 과정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철이 매개에 불과한 설정까지 작가의 의도일까? 결국 사람은 자기가 아는 마음만 알고 헤아리고 응원할 수 있다는. 씁쓰름한 소설 분위기와 어울리는 플롯이다 싶다가도 찝찝한 기운이 남는다. 봐야 할 장면은 너무 적게 보고, 보지 않아도 될 장면은 너무 많이 본 느낌이랄까. <반려빚> 크게 과한 지점 없이 재밌고 웃기다. 김지연 작가가 이런 쪽에도 재능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장류진 작가의 소설과 비슷한 느낌인데 그보다는 조금 더 사랑 쪽에 애가 닳아 하는 그런 작품이었다. 서일이라는 캐릭터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나 정현과 선주가 제 역할을 톡톡이 해내 설정적 결함을 상쇄한다. 툭툭 던지는 문장으로 완성한 장면장면들이 제법 귀여운 단편. <혼모노> 어느 하나 생생하지 않은 장면이 없다. 어떻게 이렇게 꽉 차게 매혹적일 수 있지? 신이 들어오면 들어온 대로 가짜이며(주체의 능력이 아니니) 신이 없으면 없는 대로 가짜인(선무당) 판에서 나로서 진짜이겠다는 이의 결기가 무섭게 번뜩인다. 왠지 그 피를 본 기분이라 섬짓했다. <언캐니 밸리> 불쾌한 분위기가 눈처럼 소복이 쌓인다. 휘몰아치지 않고 은은하게 공기를 메운다. 이인칭으로 시작하는 문장이 주는 거리감, 해침의 주체를 알 수 없는 잔혹한 사건, 해쳤다 말하기에는 좀 뭐한 그렇지만 그래서 더 기괴한 사연. 잔혹한 사건과 기괴한 사연 중 더 커다란 불쾌감을 자아내는 건 의외로 기괴한 사연 쪽이다. 물리적인 폭력을 동반하는 잔혹한 사건은 직접적인 고통을 안기지만 비가시적 폭력은 보이지 않는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다(인간성과 존엄성을 해치는 방식으로).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이 사람으로서 입는 가장 큰 해는 돈에서 비롯된다는 것. 독특한 설정과 지형적 요소를 잘 활용한 영리한 작품이었다. * <이응이응> <혼모노> <언캐니 밸리> <반려빚> <보편교양> <파주>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순으로 좋았고 뒤의 두 편은 좀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