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규현

트라스-우스-몽트스
평균 3.9
“이 말 안 듣는 양들아!” 이 말은 예언처럼 들려온다 ..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스가랴 9:9) ‘예언대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십니다’ (마태복음 21장) 영화에는 계속해서 나귀가 나온다. 이 구약과 신약을 잇는 가장 큰 예언. 그리고 예언과 예언 사이에는 말 안 듣는 양들이 있다. 이처럼 양의 존재는 역의 역을 통해서만 증명된다. 양은 온전하다. 아무 것도 아니라서 온전하다. 검은 양도 온전하고. 흰 양도 온전하다. 백 마리의 양들이 온전하듯이 .. 한 마리의 재물로 바쳐진 양 또한 온전하다. 마치 재물처럼 오고가는 검은 양과 흰 양처럼, 더해지고 빠지는 것들. 끝없이 오고가는 것들 사이에서 내 위치는 어디인가. 나는 어디에 있나 .. 아이들의 말은 알지 못한다고 하는데. 아이는 말하지 않고 운다. 끝인 동시에 시작인 것. 나무를 위부터 찍어 아래로 내려온다. 마치 과거로 보내는 미래 나의 기억인 편지처럼. 과거를 말하지만 아이를 찍는 카메라처럼. 이야기를 하지만 보여지지 않거나, 말하지 않지만 드러나는 것들. 태어남은 무엇일까. 흐르지만 멈춰있는 것. 반은 타고 반은 푸른. 타고있지만 타지 않는 떨기나무처럼. 돌아가는 레코드와 돌아가는 팽이. 흐르는 강물 사이에 얼어있는 얼음 조각. 아이의 울음소리에 맞춰 흔들리는 구유는 .. 모두의 구원인 예수의 필연적 탄생인 동시에. 잃어버린 양을 찾아 호렙산을 오른 모세가 본, 타고있지만 타지 않는 떨기나무와. 그 때 들린, 모세의 이스라엘 구원을 예언한 음성. 그리고 이것들 사이에 오고가는 모든 예언적 흐름이다. 결국에. 어머니는 아기를 낳고. 양은 양털을 낳는다. 둘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강은 언제나 흐른다. 우리는 그 흐름을 주도할 것인지, 흐르는 강물 사이의 얼음이 될 것인지 결정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흐르는 강물은 수면 위에 비치는 빛으로만 드러날 뿐이다. 기차는 달린다 .. 염소는 목적의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