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원

발레리나
평균 2.5
도대체 이 영화의 존재 이유를 모르겠다. 발레리나는 영화 내내 트렌디한 척만 한다. 말 그대로 “척”만 한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척”하는 예술인데 이 영화가 그러하다. 초반부부터 도대체 이게 한국이 맞을까 싶은 비현실적인 질감이 화면을 장악한다. 하이퍼 리얼리즘 또한 싫어하는 나에게는 한국 영화를 볼 때 이게 한국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거나 굳이 한국일 필요가 없는 이야기더라도 그 질감의 만듬새가 훌륭하거나 영화적으로 잘 어우러진다면 높게 평가한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가 특히 그러하다. 하지만 <발레리나> 속 질감은 멀리 보면 왕가위, 짧게 보면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극심한 열화판에 불과하며, 이러한 질감이 작품의 오리지널리티를 표방하는 것이 아닌 단순히 특정 스타일을 따라하며 있어보이기 위함이라면 분명 비판할 수 밖에 없다. 그 와중에도 이게 “한국” 영화라는 걸 드러내려고 기를 쓰는 모먼트들이 많은 게 더 역겹다. 오프닝 씬에서 강도에게 시달리는 마트 점원의 ”요즘 다 카드만 써요...“ 같은 장면이나 (마트부터 무슨 뉴욕이나 홍콩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모습인데 퍽 우습다), 전종서의 디키즈 874 팬츠, 스티커 사진, 민초파(아오 쫌!!!), 갑자기 정겹게 등장하는 고추 말리는 할머니 등...정말 기를 쓴다. 여기서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가 드러난다. 쿨한 영화를 만든답시고 쿨한 척을 하는데 전혀 쿨하지 못하다. 취향을 많이 타는 부분이겠지만 난 영화의 쇼트 구성 방식에 대해 비판할 수 밖에 없다. 일단 음악의 사용이 너무 과하다. 극영화는 누가 뭐래도 내러티브가 가장 중요하다. 실험영화라면 내러티브가 아닌 다른 것들에 초점을 맞출 수 있지만 적어도 극영화라면 항상 영화의 모든 구성 요소는 내러티브를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장치로 기능한다. (로저 디킨스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자신은 커버리지를 촬영하는 과정에서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샷을 찍더라도 영화의 내러티브에 어긋난다면 과감하게 버린다고...) 하지만 <발레리나>에서 음악은 내러티브를 위한 장치가 아닌 눈속임용으로 기능한다. 인물의 감정과 서사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 노력조차 하지 않은 채 트렌디한 척하는 음악만 마구 틀어대며 영화의 정서를 뒤틀어버린다. 내러티브보다 음악이 더 앞서 있는, 흡사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만 같은 인상이다. 실제로 영화의 음악 감독이 유명한 힙합 프로듀서인 GRAY라는 걸 생각하면 더욱 뭐가 문제인지 알 것만 같다. (물론 이것도 편견보단 역량 차이로 봐야 할 수도 있다. 프라이머리가 영화 음악에 발을 디뎠을 때 그의 사운드 프로듀싱은 꽤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뮤비처럼 느껴지게끔 만드는 쇼트의 문제점 하나 더, 쓸데 없는 커버리지를 너무 많이 쓴다. 액션에서 눈속임을 위해 많은 컷을 사용하는 건 그럴 수 있다 생각한다. <존 윅> 시리즈의 액션 연출이 현재 가장 현대적인 액션 연출이라고는 하지만 꼭 그렇게 찍어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 말이다. 문제는 단순한 대화 장면에서도 앵글과 샷사이즈가 확확 바뀐다. 쇼트로 인물들의 심리를 드러내려는 목적이 거의 안느껴지고 편집을 통해 오로지 불필요한 리듬감만을 자아내려 한다. 여기에 대사도 거의 없고 있는 대사들마저 굉장히 형식적이고 소모적인 대사들 뿐이니 마치 최신 힙합 뮤비에 2000년대에나 유행했던 드라마타이즈 뮤비를 적절히 혼합한 괴랄한 형태의 영화가 나와버렸다. 제목은 도대체 왜 <발레리나>인건가? 시놉시스와 예고편, 그리고 제목을 봤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느껴졌던 건 마블의 “블랙 위도우” 캐릭터였다. 러시아에서 킬러로 길러지기 위해 발레를 하는 플래시백 장면이 기억나서 그랬던 것 같다. 아무튼 그 감흥에 이어서 내가 생각했던 시나리오는 “킬러들을 육성하기 위해 발레단을 위장해 비밀리에 훈련을 하던 어떤 조직에서 킬러의 길을 걷지 않고 도망친 전종서의 동료가 타겟이 되어 위험에 처하고, 이를 같은 조직의 일원이었던 전종서가 복수한다”는 뻔한 내용에 불과했다. 차라리 이렇게만 나왔어도 그럭저럭 무난한 액션 영화라 생각했을텐데 훨씬 심각하고 저열하다. 무엇보다 불쾌하게 느껴졌던 건 남성 캐릭터의 활용 방식이었다. 전종서가 복수를 위해 남성의 집에 잠입하는 장면에서 친구의 죽음에 얽힌 모든 음모가 드러나는데, 알고보니 이 남성은 여성을 유인해 약을 먹여 재운 다음 강간 SM 비디오를 찍어 이를 빌미로 끊임없이 협박하며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만드는 악랄한 범죄조직의 일원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범죄를 소재로 복수액션극을 찍는다는 건 분명 세련되진 못하지만 꽤 재미있고 통쾌하겠다는 생각도 잠시 했다. 문제는 그 이후,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남성들이 죄다 이러한 범죄조직의 멤버들로 나온다. 모든 남성을 악역으로 그려낸다. 여성-선역, 남성-악역의 이분법적 구도가 정말 불쾌하기 짝이 없다. 이정도로 시대착오적인 시나리오를 가지고 어떻게 이 영화를 트렌디하다고 착각하며 만든 걸까? 심지어 이 선역의 여성들과 연대하는 남성이 딱 한 번, 그것도 단역 느낌으로 한 번 나오는데, 바로 마트에서 일하는 “외국인”이다. 의도가 너무 다분하지 않은가? 여성혐오적인 영화만큼 남성혐오적인 영화도 비판받아야 한다. 이 영화는 타란티노의 <데쓰프루프>, 혹은 류승완의 <밀수>처럼 여성들의 쿨한 복수 서사를 담아내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두 영화도 마찬가지로 여성들이 연대하여 남성 빌런을 응징하는 서사를 지니고 있지만, <발레리나>와는 격이 다르다. 타란티노의 <데쓰프루프>는 영화가 의도하는 화끈한 액션으로 이어지기 위한 내러티브에 이와 같은 서사를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만들며, <밀수>는 애초에 피카레스크 장르처럼 느껴지게끔 인물들의 서사를 충실하게 쌓아나가려 했다. 하지만 <발레리나>는 그러한 느낌이 전혀 들지 않고 불쾌함만 가중시키는 장면만을 끊임없이 전시해나간다. 이런 점에서 다시 한국 장르 영화 특유의 정서적 문제가 드러난다. 영화가 자극적이고 논쟁적인 소재를 다룬다면, 예컨데 이 영화처럼 성착취 영상 범죄를 다룬다면 윤리적으로 그 소재에 대해 심도있게 파고들거나 아예 대놓고 쿨하게 소재를 차용하면서 영화가 보여주려는 의도를 확실하게 전달해야 한다. 근데 자극적인 전시는 그대로 하면서 이에 대한 고찰은 전혀 없다는 것 또한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액션에 대해서도 일말의 고민이 없었는지, 초반에는 정말 편하게 커버리지만 덕지덕지 이어붙이더니 후반부 클라이맥스에서는 할리우드에선 줘도 안쓰는 슬로우모션만 남발한다. 트렌디한 척하면서 정작 연출은 촌스러운게 영화의 특징이라면 특징이겠다. 난 이충현 감독이 정말 한국의 데이빗 핀처처럼 성장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을 가졌지만, 영화를 보면서 니콜라스 윈딩 레픈이 계속 떠올랐다. 헌데 보다 보니 둘 다 언급하기에 실례일 정도로 촌스럽고 저열한 영화가 나와버렸다. 잠시 이충현 감독의 출세작인 단편 <몸값>을 언급하고 넘어가자면, <몸값>이 뛰어났던 이유는 후반부에서 드러나는 반전을 통해 피카레스크적 카타르시스를 보여주는 것 때문이다. 여고생의 성을 사려는 남성은 윤리적으로나 법적으로나, 그리고 느껴지는 변태적인 뉘앙스로나 명백한 악인이지만, 사실 이를 이용하는 여고생은 더한 악인이다. 불법 장기 매매 조직에서 일한다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구조를 영화적인 어법을 활용해 마치 여고생이 통쾌한 복수를 해낸 것처럼 보이도록 설계했다. 참으로 묘하고 센스 있는 구성 방식이다. <발레리나> 또한 <몸값>에서 느껴지는 피카레스크적인 뉘앙스가 느껴졌고, 심지어 “성범죄”라는 코드까지 동일했기에 과연 감독이 어떤 식으로 자신의 영화 세계를 확장시켜냈을까 나름의 기대가 있었지만, 되려 <몸값>보다 훨씬 못한 결과물이 나와버렸다. 때깔만 좋다고 능사가 아닌데, 심지어 때깔도 구리다. *전종서의 연기는 가끔은 놀라우면서도 전반적으로 아쉬움이 남는다. 화장실에서 자살한 친구가 죽은 걸 목격했을 때의 그 연기 디테일, 이해가 안되는 감정선과 유치한 대사들을 기어이 표현해내는 전달력. 하지만 그럼에도 시나리오의 한계 때문에 아쉬운 부분도 많았다. 확실히 시나리오를 많이 타는 배우인 것 같다. 미칠 듯이 좋은 연기를 펼칠 때도 있지만 종이의 집은 클립만 봐도 최악인 걸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