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땐 의문뿐이었다. 명작의 반열에서 내려간 적이 결코 없었던 그 명성이 초라해질 만큼 별 볼일 없었기 때문이다. . 제목은 철학서 마냥 무게감 있던 것에 비해 몰입감 있는 에피소드 하나 없이 밋밋했던 로맨스 소설. 지금 당장 서점으로 뛰쳐나가 아무 로맨스 소설을 골라 그 자리에서 대충 읽었을지언정 이것 보다는 스펙타클하고, 깊이 있으며, 감동적인 책을 읽었을 것 같았다. . 맞다. 난 무척 실망했다. . 시간이 꽤 흐른 후, 손에 집힌 아무 책이나 읽다보니 오만과 편견을 다시 읽게 되었을 땐 아무생각 없이 가볍게 읽기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작품성에 관한 평가는 수정되지 않았다. . 얼떨결에 네번째 읽게 되었을 때,-필자는 읽었던 책을 그 때와는 다른 나이에, 다른 공간에서 보는 것을 즐기긴 하지만, 좋아하는 책 한정이었다. 이것은 정녕 데스티니...- 인정했다. '이것의 명성은 괜한 것이 아니었구나.' 깨달았다. '가히 한 획이긴 했구나.' . 명작 과대평가의 가장 큰 수혜자는 오만과 편견이라는 처음의 생각은 사실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안일한 소설이었고 내가 보기엔 지나치게 평면적이었다. . 하지만 그것조차 무無로 돌리는 오만과 편견의 매력은 부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소위 말해 '정석'이었다. 마치 수학의 정석 같이 모범답안이 있는, 언제나 옳고 좋은 답이 있는. . 답정너 마냥 리지와 그녀의 소중한 사람들의 happily ever after는 정해진 수순이었고, 리지는 다아시에게로 닦아놓은 길만 여유롭게 걸어가면 되었다. . 하지만 그 단순한 프레임 안에서 오스틴은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그 결정적인 예가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밋밋하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점과 점으로 이루어진 선이 아닌 애초에 선밖에 없었던 구조 같다. 물 흐르는 듯한 전개도 그 나름의 강약과 오르내림이 있을텐데, 오만과 편견은 잔잔한 물결도 아닌 직선이었다. 시점과 시점을 일정하게 연결하는 데 막힘이 없다. . 그러니 책을 읽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아주 많이 읽어버린다. 하지만 휘몰아치듯 읽히는 것이 아니다. 분명 내가 당장 읽고 있는 이 전개가 어느 부분의 뿌리로 이어져 왔는지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 스토리텔링의 정석을 가진 정석적 답안이 있는 소설이다. . 무난해 보이지만 그 누구도 근간을 헤집어 놓지 못할 강인한 뿌리의 나무. 그 나무 같은 모범소설이 내가 가진 오만과 편견의 향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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