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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d___nats

drad___nats

5 months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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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영화 ・ 2025

차이밍량의 필모그래피를 돌아본다면 그것은 서부극의 흐름과 매우 유사하다고 느낀다. 서부극의 남성들에게 집은 떠난 곳이거나 떠날 곳이기 때문이다. 그의 필모그래피 초반 <하류>와 <구멍>에서 아파트로 대표되는 집은 그의 영화를 구성하는 뼈대로 기능했다. 그러다 차이밍량은 떠날 수 밖에 없어서 스스로 영화의 집을 허물고 떠난다.(<안녕, 용문객잔>) 그러고는 전 세계를 걷기 시작한다. 아주 천천히. (<행자>) 라오스를 떠나 일을 하고 있는 아농이 잠시 라오스에 방문한다. 그러니까 아농에게 집은 필연적으로 다시 떠나야하는 곳이다. <집으로>의 초반부 차이밍량은 우리에게 묻는다. 떠날 수 없는 곳이 정말 집이냐고. 그걸 계속 돌고 있는 놀이기구 속에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개의 모습을 통해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는 여러 집의 외관을 보여주는 쇼트들을 나열할 뿐이다. 더이상 집은 고정된 장소가 아니다. 나열되는 집의 이미지는 떠나 있어서 상상되는 것이면서 동시에 이미 도달한 장소인, 두가지를 모두 긍정할 수 있는 장소인 것이다. 이것은 양자택일을 해야한다거나 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가 아니다. 두가지 문이 있다고 해서 들어오고 나가는 문이 정해져있는건 아니듯 말이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은 장난이 아니다. 정말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둘 중 하나에 강하게 끌린다면 그렇게 믿어도 좋지만 그렇다고 다른 하나를 부정해서는 안될 일이다. 영화의 마지막 쇼트, 영화가 진행해오던 톤과는 전혀 다른 곳에서 쇼트가 깨어난다. 한 여관의 방. 커튼 틈으로 들어온 햇살이 이불이 펼쳐져 있는 침대 위에 놓여있고 침대 앞에는 정리된 캐리어가 놓여있다. 더 이상 차이밍량의 시선에서 극장은 집이 아니다. 이제 그곳은 여관이다. 그렇기에 차이밍량은 또 다시 행자를 찍으러 떠날 것이다.